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23:34:19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



이 문서는 학교 관련 문서이며, 로그인 후 수정 가능합니다. 다음과 같은 서술은 작성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
  • 현황과 역사를 불문하고 학교 간 우열이나 서열을 확정·조장하는 서술과 학교 수준을 비하하는 서술
  • 학교 내 특정 임의 단체(급식, 매점 등)와 교내 학생 단체(동아리, 학생회 등)에 관한 서술
  •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학교 관련 사건 사고에 관한 서술
  • 학교 밖에서 알려지지 않은 교사나 학생에 관한 서술
  • 템플릿:학교에 존재하지 않는 문단에 관한 서술
  • 편집지침에 어긋나는 서술

파일:sLM4KAf.png[1]
파일:SamhwaSchool.jpg[2]
(교표)
교명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
한자 三和女子商業高等學校
로마자 Samhwa Girls' Commercial High School
개교 1978년 3월 7일
폐교 1993년 2월 27일
유형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
성별 여자고등학교
운영형태 사립
학교법인 삼화고무
소재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대로214번길 33 (거제동)

1. 개요 및 역사2. 시설3. 여담

1. 개요 및 역사

부산광역시 연제구[3] 거제동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있었던 고등학교로 1977년 12월 3일에 당초는 삼화고무[4] 부설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동구 범일동)와 조선견직 부설 조견여자상업고등학교(연제구 거제동) 2개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는 부산 최초의 산업체 부설학교였으며, 과거 신발산업과 원단산업의 중심지 중에 하나였던 부산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산업체 부설학교라는 의의가 있었다. 설립자는 부산일보를 경영하였고 한국생사, 부일장학회와 문화방송의 창립자였던 김지태 삼화고무 회장.

이들 학교는 1978년 3월 7일에 개교하면서 첫번째 졸업생을 받아들이면서 부산에도 산업체 부설학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근로청소년들의 학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1982년에 설립자가 사망하면서 이들 학교에는 먹구름이 슬슬 드리우게 되었는데, 이듬해인 1983년에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와 조견여자상업고등학교가 통합하여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라는 단일 교명으로 기존 거제동 조견여자상업고등학교로 통합 이전하게 되었으며, 최고 전성기때는 전교생이 1000명을 넘기도 했다.

하지만 1992년 10월 7일에 삼화고무의 갑작스러운 부도로 인하여 운영 주체가 사라지면서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도 갑작스럽게 폐교라는 날벼락이 떨어지게 되었고 운영주체가 없다보니 교직원 월급 지급도 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나, 기존 학생들 처리 문제로 인하여 삼화여상은 3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는 1993년 2월 까지 폐교가 연기 되었으며, 200~220여명의 3학년 학생들이 1993년 2월 10일에 졸업하면서 13회 졸업생을 끝으로 삼화여상은 1993년 2월 27일에 최종 폐교되었고 이 학교가 존재한 기간 동안 3,88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다만 기존의 1,2학년 학생 250여명은 다른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태창여자상업고등학교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고, 교사들도 부산 교육청에 특별 채용 되면서 공립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

2. 시설

1983년 통합 이후에 사용하게 된 거제동 시설은 구 조견여자상업고등학교의 시설로 1973년 즈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가 1983년경에 추가 증축 되었다. 본래는 조선견직공장에 부속되어 있었던 시설이었다. (옆에 있는 거제 경남아파트가 과거 조선견직 공장이었음) 원래는 학교 시설이 아니었던 것을 산업체 부설학교로 사용하였기에 일반적인 학교 보다 교실 구격이 작은 편.

건물은 3층 규모에 복도 양쪽으로 교실이 있는 형태였으며, 이는 연산동 시절의 브니엘고등학교 교사와 비슷한 형태였고, 교지 면적은 2,034㎡로 일반적인 산업체 부설학교의 교지 규모에 해당한다.

3. 여담


[1] 1988년 전성기 시절 대한뉴스에 나온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 모습[2] 폐교 이후에 현존하는 구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 건물의 모습.[3] 이 학교가 존재했을 당시에는 동래구였다.[4] 범표 신발이나 타이거 운동화로 유명했으며 부산의 5대 신발업체 중에 하나였다. 타이거 상표 문제로 아식스오니츠카타이거와 상표권 분쟁이 생긴 적도 있었는데 삼화고무가 국내에 먼저 타이거 상표를 등록 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