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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00:36:40

삼풍건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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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navy><colcolor=#ffffff> 삼풍건설산업주식회사
三豐建設産業株式會社 | Sampoong Engineering & Construction Co. Ltd.
파일:삼풍건설산업.png
정식 명칭 삼풍건설산업주식회사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 1963년 2월 5일(동경산업)
1967년(삼풍건설산업으로 사명 변경)
해체 1997년 12월 31일(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한 도산)
업종명 건설업, 종합 소매업
기업 규모 중소기업
상장 여부 비상장 기업
본사 (등기상)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334 (신당동, 청평화시장)
(실질적)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산 192-4 (삼풍백화점 B동 3층)[1]
대표이사 회장 이준
대표이사 사장 이한상
자회사 계우개발(주)
학교법인 숭의학원

1. 개요2. 역사3. 로고4. 완공 건축물5. 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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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3년부터 1997년까지 존속했던 대한민국의 건설업 및 유통업체로 한때 삼풍상가, 삼풍아파트로 유명했으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주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등기상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334 (신당동, 평화시장) 내에 있었다.[2]

2. 역사


1963년 중앙정보부 출신이던 이준 창업주가 동경산업을 세워 주로 주한미군 군납건설 및 전기공사를 했다가 1967년 삼풍건설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는 1970년대 들어 군과 중정 때 인맥을 이용해 청계천 평화상가[3]와 을지로 삼풍상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수주했다. 이후 중동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1975년 해외건설업 면허를 따고 요르단에 진출하여 건설 사업을 펼쳤으나 원활하지 않았고 동시에 여러 문제들이 겹치는 바람에 1979년 무렵 요르단에서 철수하였으며 1983년는 해외 건설 면허도 반납하였다. 이후 주택건설사업으로 전환하여 서울 서초구 외인주택단지 자리에 서초 삼풍아파트를 건설했고[4] 그 옆에는 악명 높은 삼풍백화점 건설도 추진하면서 1986년 분양 당시 최고 1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한국 최대 분양가를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뒤이어 같은 시기 삼풍백화점을 지으면서 운영사인 유통사업본부도 신설했다. 이 외에 1985년 자회사 계우개발을 세우고 1989년 제주 여미지식물원도 조성했다.

하지만 삼풍백화점은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답게 개장 초기부터 안전성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었으며, 그럼에도 경영진이 무리하게 시설을 변경하거나 개조를 하도록 해 건물의 수명을 단축시켰고 삼풍백화점이 성공적으로 업계에 안착하면서 본업인 건축사업보다 유통사업에 치중하면서[5] 도급순위가 800위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오너가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관련 업계인들 사이에서 '미지의 기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6] 결국 1995년 6월 말 대참사로 이어져 이준 회장 등 주요 경영진이 구속되었다. 뒤이어 법인 역시 청산절차를 거쳐 1997년 12월에 폐업됐다.

3. 로고

파일:삼풍초창기로고.png 파일:삼풍건설산업.png
<rowcolor=#ffffff> 197? ~ 1989[7] 1989 ~ 1997[8]

4. 완공 건축물

5. 자회사



[1]아크로비스타 B동 위치[2] 하지만 실질적인 본사는 삼풍백화점 B동 3층에 있었고 이곳에서 삼풍 임원진이 붕괴 직전까지 대책 회의를 했다.[3] 그래서 초기 본사가 평화시장에 있었고 법인 청산 때까지 등기상 본사는 평화시장 내부였다.[4] 삼풍이 직접 짓지 않고 시행만 맡았다. 시공은 현대건설우성이 했다. 그래서 완전히 무너졌던 삼풍백화점과는 달리 40년 가까이된 지금도 무사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5] 이준이 삼풍백화점의 붕괴위험을 지적 받고도 영업을 강행한 이유가 설마 진짜로 붕괴하겠어라는 안일함도 있었지만 보강공사를 위해 영업을 중단하면 하루에 5~6억원의 매출액을 놓치기 때문이었다. 결국 붕괴 당일에 와서 건물에 보수 공사가 급히 필요하다는 게 인정되어 당일 밤에 영업 종료시부터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낮에 영업을 멈추지 않고 밤에 공사를 시작하려 했던 이유는 붕괴 위험으로 인해 영업을 갑자기 중지하고 공사에 들어간다고 소문이 날 경우 명품을 판매하는 고급 백화점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도 있었다. 결국 어떻게 공사를 할지 계획을 회의하고 있던 당일 오후에 백화점은 붕괴하고 말았다.[6] 백화점 붕괴 이전의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서울시내에 대형백화점을 운영하는 나름 손꼽히는 기업체였음에도 이준 회장이나 이한상 사장과 관련한 기사는 고작 한두 개의 단신이 전부다. 대부분의 기사는 삼풍 참사 이후에 나온 것.[7] 초창기인 1960년대 후반에는 별도의 로고 및 서체가 없었다.[8] 삼풍백화점 로고를 회사의 로고로 사용했다.[9] 뇌물은 한보건설도 마찬가지였다.[10] 그래서 제주도에 있는 식물원을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