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멕시코주의 주도 | |||
Santa Fe 산타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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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市旗) | 시장(市章) | ||
<colbgcolor=#003278><colcolor=#fff> 국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주 | 뉴멕시코 | ||
카운티 | 산타페 카운티 | ||
면적 | 52.34 sq mi (135.57 km2) | ||
좌표 | 북위 35° 40′ 2″ 서경 105° 57′ 52″ | ||
해발 | 6,998 ft (2,133m) | ||
설립 | 1610년 | ||
인구 | 도시 | 87,505명(2020) | |
광역 | 154,823명 | ||
시간대 | UTC-7 (서머타임 준수) / CT | ||
시장 | | 앨런 웨버(Alan Webber) | |
링크 |
1610년 건설된 산 미구엘 예배당[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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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멕시코주의 주도. 미국의 지명이지만 스페인어 유래 지명이라 표기 논란이 발생하는데, 영어식 발음 기준으로 하면 '샌타페이'로 정도로 적어야 맞겠지만 스페인어식 표기인 '산타페'라는 이름도 널리 쓰인다. 아메리칸 원주민, 스페인, 미국의 영향이 혼합된 산타페는 미국 남서부의 문화 수도로 여겨지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예술 도시로 알려졌다.2. 역사
산타페는 원래 리오그란데 강에 살고 있던 푸에블로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탐험가 돈 후안 데 오냐테 살라자가 1598년 오늘날의 콜로라도 동부,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북부 지역 및 콜로라도강 하류를 탐험하였고 이 일대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스페인인들의 통치는 매우 폭압적이었고 결국 1680년 푸에블로족이 총 봉기하였고 스페인인들을 추방하였다. 하지만 12년 뒤 돈 디에고 데 바르가스가 다시 복속시켰다. 그 후 식민지 판사인 토마스 카추핀이 푸에블로족에 유화 정책을 펼쳤고 결국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1810년 멕시코 독립 전쟁이 발발하였고 산타페는 산타페데누에보메히코 준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1820년 산타페는 미주리의 세인트루이스와 멕시코시티를 연결하는 산타페 트레일의 중심지가 되었고 토착민과 유럽계 미국인 무역상인들을 끌여들였다.
1836년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분리되었을 때, 산타페를 장악하기 위해 소규모 군사 및 무역 원정대가 출발해 이 일대를 정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멕시코 군대에 잡혔고 결국 이 일대를 복속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이로 부터 10년 뒤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발발했고 스티븐 W.카니 준장이 이끄는 1,700명의 미군에 정복되었다. 그 이후 산타페는 뉴멕시코 준주의 주도가 되었고 1912년 뉴멕시코가 미국의 47번째 주로 편입되었을 때에 주도가 되었다.
주도가 되자 산타페 시의회는 도시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벌어졌고, 전통적인 기술과 스타일에 따라 새로운 건물을 세웠으며, 이로서 산타페 스타일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한편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전쟁을 하자 많은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뉴멕시코는 일본계 미국인을 수용하는 데 반대해서 수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일본계 미국인을 수용하는 수용소가 있었다. 그 당시 수용소에는 2,100여명이 수용되었는데 이들의 대우는 좋지 않았다. 결국 이에 분노한 수용자들은 1945년 3월 12일 폭동을 일으켜서 4명이 중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용소는 전쟁이 끝나고도 없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지 1년 뒤인 1946년 마지막 수감자가 풀려난 뒤 폐쇄되었다.
3. 경제
산타페는 관광도시로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와 야외활동이 적합한 자연 환경(겨울에는 스키, 나머지 계절에는 트래킹)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또한 산타페 북쪽에는 기적과 치유의 장소로 유명한 치마요 교회(El Santuario de Chimayó)가 있는데 매년 약 300,000명의 방문객이 이 곳으로 순례를 떠나기도 한다.또한 산타페에서 차로 45분 거리에는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가 위치해있다. 이 곳은 미국의 핵실험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산타페 연구소가 있어서 물리학, 생물학, 경제 및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다.
4.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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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2] | 라 폰다 호텔[3] |
해발 2,133m에 위치한 고산도시이며, 진흙으로 만든 건축물인 '어도비'가 유명하다. 스페인이 건설한 도시이기에 중남미 식민도시풍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고, 20세기 들어서도 '산타페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푸에블로 리바이벌 건축물들이 지어져서 미국 내에서도 관광도시로서 명성이 높다. 근교에 위치한 소도시 타오스는 아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또한 산타페 피에스타스(Fiestas de Santa Fe)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매년 9월 둘째 주에 돈 디에고 데 바르가스가 뉴멕시코를 재정복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이 축제의 시작은 1912년 뉴멕시코가 미국의 주로 편입이 되자 미국의 고고학자였던 에드거 리 휴잇은 뉴멕시코의 역사를 기념하는 행사를 하기를 원했고 이에 따라 이 축제가 기획되었다. 그러나 푸에블로족은 이 것을 기념하는데 못마땅하였고 보이콧하기도 하였다. 축제 기간 동안 산타페 플라자는 예술 및 공예품, 음식 부스로 가득차고 도시 전역에서 마리아치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들린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산 프란시스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순교자의 십자가로 향하는 촛불 행렬을 한다.
- 총독 궁전 (Palacio de los Gobernadores) : 1610년에 지어진 어도비 건물로 뉴멕시코 일대를 다스리는 총독이 살던 곳이다.
- 로레토 예배당 (Loretto Chapel) : 1878년에 지어진 가톨릭 성당으로 현재는 개인 소유의 박물관이자 결혼식장이다. 기적의 계단으로 불리는 성가대석과 연결된 나선 모양의 계단이 유명하다. 이 계단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무로만 만들어졌다.
- 산타페 광장 (Plaza de Santa Fe) : 전형적인 스페인계 아메리카 식민지 도시 스타일로 지어진 광장으로 잔디, 나무, 벤치가 늘어선 중앙 공원으로 구성되어있다.
- 뉴멕시코주 미술관 (New Mexico Museum of Art) : 1917년 지어진 미술관으로 산타페 스타일로 지어졌다.
-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대성당 (Catedral basílica de San Francisco de Asís) : 1887년에 지어진 대성당으로 푸에블로 봉기 당시 파괴된 성당 부지 위에 세워졌다.
- 아메리칸 원주민 예술 연구소 (Institute of American Indian Arts) : 7,000개 이상의 인디언 예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원주민들을 위한 교육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Georgia O'Keeffe Museum) : 미국을 대표하는 여류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