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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05 14:11:26

사사키 켄스케

파워 워리어에서 넘어옴
파일:사사키켄스케.png
<マッスルボルケーノ / Muscle Volcano>
[ruby(佐々木, ruby=ささき)] [ruby(健介, ruby=けんすけ)] / Kensuke Sasaki
파일:사사키켄스케프로필.jpg
링네임 Benkei Sasaki[1]
파워 워리어 (パワー・ウォリアー)[2]
사사키 켄스케
본명 [ruby(佐々木, ruby=さ さ き)] [ruby(健介, ruby=けんすけ)]
사사키 켄스케
생년월일 1966년 8월 4일 ([age(1966-08-04)]세)
신장 180cm
체중 115kg
혈액형 B형
출생지
[[일본|]][[틀:국기|]][[틀:국기|]]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미나미구
가족 관계 배우자 호쿠토 아키라(1967년생)
장남 사사키 켄노스케([ruby(佐々木, ruby=ささき)] [ruby(健之介, ruby=けん の すけ)])(1998년생)[3]
며느리 카도쿠라 린(1993년생)[4]
학력 히가시([ruby(東, ruby=ひがし)])후쿠오카고교 (졸업)[5]
경기 스타일 브롤러
시그니쳐 무브 보스턴 크랩
한판 업어치기([ruby(一本背負, ruby=いっぽん ぜ おい)])
{{{#!folding [스트랭글 홀드 시리즈]
스트랭글 홀드α[6]
스트랭글 홀드β[7]
스트랭글 홀드 Ζ[8]
}}} ||
피니쉬 무브 노던 라이츠 밤[9]
래리어트
스트랭글 홀드 γ
별명 머슬 볼케이노 (マッスルボルケーノ)
테마곡 POWER - 스즈키 오사무 (1990년대 전반)
テイク・ザ・ドリーム 〜[ruby(閃光, ruby=せんこう)]〜[10]
- BLUE STEALER
TAKE THE DREAM ∞ - " (2000.1 - 2002.4)[11]
THE WORLD - BLOOD STAIN CHILD[12]
(2001.10 - 2014.2)
데뷔 1986년 2월 16일 (19세)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재팬[13] 입춘 3대 스페셜 매치
vs 사사자키 신지
은퇴 2014년 2월 11일 (47세, 커리어 27년)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DIAMOND RING
vs 나카지마 카츠히코
SNS 파일:Ameba 아이콘.svg

1. 개요2. 커리어
2.1. 신인 시절2.2. 해외 원정2.3. 신일본 프로레슬링
2.3.1. 하세 히로시와의 하세켄 태그(1990-1992)2.3.2. 헬 레이져스(1992–1996)2.3.3.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7–2001)
2.4. Fighting World of Japan Pro Wrestling (2003–2004)2.5. 프리랜서(2004–2014)
2.5.1. 신일본 프로레슬링 (2004–2005)2.5.2. 전일본 프로레슬링 (2005–2008)2.5.3. 프로레슬링 NOAH (2008–2013)2.5.4. 다이아몬드 링 (2005–2014)
3. 논란
3.1. 일본 프로레슬링 똥군기의 끝판왕
4. 여담5.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전 프로레슬러.

2. 커리어

2.1. 신인 시절

하나하타 중학교 시절부터 유도를 해온 사사키 켄스케는 히가시후쿠오카고교를 졸업하고 1985년 6월에 동경하던 초슈 리키가 운영하던 재팬 프로레슬링에 입단했고, 반년 뒤인 1986년 2월 16일 코라쿠엔 홀에서 사사자키 신지를 상대로 데뷔한다.

이후 1987년 1월 재팬 프로레슬링이 내부 불화로 분열되고, 신일본에 마음이 흔들린 초슈 리키의 갑작스러운 흥행 불참 선언으로 인해 3월 30일에 초슈가 추방되자 초슈 리키는 신일본에 복귀하였고, 사사키 켄스케도 초슈 리키의 신일본 복귀파와 같이 6월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였다.

신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마츠다 오사무, 오오야 히사카츠 등과 팀을 이뤄 활동을 하였다.

2.2. 해외 원정

1989년 1월, 해외원정을 시작하여 푸에르토리코에서 월드 레슬링 평의회(WWC)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두 차례 WWC 캐리비안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한다

또한 캐나다에서 스튜 하트의 스탬피드 레슬링 프로모션에서 활동했으며, 그곳에서 Benkei Sasaki라는 이름으로 Sumo Hara(키타하라 코우키)와 함께 활약했다. 캐나다 체류 중 1989년 8월 18일 스탬피드 국제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고, 9월 29일에 벨트를 내줬다.

또한 오스트리아와 독일 투어에서 사사키 켄도라는 이름으로 오토 반츠의 캐치 레슬링 협회(CWA)에서 활동했다.

2.3. 신일본 프로레슬링

2.3.1. 하세 히로시와의 하세켄 태그(1990-1992)


1990년 3월에 신일본에 복귀했고, 하세 히로시와 함께 태그 팀 '하세켄'을 결성하여 활동한다. 11월 1일,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드림 투어'90 흥행에서 하세와 함께 IWGP 태그팀 챔피언 무토 케이지쵸노 마사히로에게 도전하여, 16분 56초만에 하세가 무토에게 노던 라이트 수플렉스 홀드로 3카운트를 따내며 제 15대 IWGP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했다.

1991년 3월 6일 히로 사이토슈퍼 스트롱 머신에게 1차 방어전을 성공시킨 하세켄 태그였으나 3월 21일, 도쿄 돔에서 WCW와의 합동 흥행으로 펼쳐진 '91 스타 게이트 IN 도쿄 돔(闘強導夢) 흥행의 초만원 관중 앞에서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었던 극강의 형제 태그 더 스타이너 브라더스(릭 스타이너 & 스캇 스타이너)와 서로의 벨트를 함께 걸고 더블 챔피언전으로 격돌했으나, 12분 56초만에 스캇 스타이너의 프랑켄슈타이너[14]에 사사키가 핀을 내주며 IWGP 태그팀 챔피언 벨트까지 함께 내주고 말았다.

5월 31일, 오사카 성 홀에서 열린 후지나미 타츠미 20주년 기념 스페셜 이벤트~THE LEGEND OF DRAGON~에서 다시 하세와 함께 스타이너 브라더스의 IWGP 태그팀 챔피언 벨트에 재도전했으나 이번엔 하세가 16분 48초만에 스캇 스타이너의 프랑켄슈타이너에 핀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사사키는 부상을 당했고, 하세는 파트너를 무토 케이지로 변경하면서 하세켄 태그는 잠시 휴식기를 가진다.

10개월에 재활 끝에 사사키는 6월 26일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마스터즈 오브 레슬링 8일차에서 하세 히로시와의 싱글전으로 복귀했다. 이윽고 9월 23일 요코하마시에서 다시 한번 사사키 켄스케와 함께 스캇 스타이너가 복귀한 후[15] IWGP 태그팀 챔피언을 탈환한 스타이너 브라더스에게 도전했으나 릭에게 사사키가 핀을 내주며 도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2.3.2. 헬 레이져스(1992–1996)

파일:d0038448_5b820add27565.jpg
1992년 12월, 링네임을 '파워 워리어'으로 바꾸면서 로드 워리어즈의 호크와 헬 레이저스라는 팀 이름으로 IWGP 태그팀 챔피언십전선에서 활약했고, 2번의 IWGP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하면서 신일본의 태그 팀 전선을 지배했다. 1992년 10월, WCW에 출연하여 1996년 12월까지 활동했다.

1994년 8월 G1 클라이맥스 4에 B조로 출전하여 승점 7점을 기록하면서 결승에 진출했으나 A조 대표 쵸노 마사히로에게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그리고 SG 태그 리그에서 우승한 하세와 무토의 태그팀을 상대로 11월 25일에 호크 워리어와 함께 방어전을 치렀으나, 무토가 호크에게 프랑켄슈타이너로 3카운트를 따내며 IWGP 태그팀 챔피언 벨트를 잃었다.

이후 1995년에 파워 워리어 캐릭터를 포기하고 [16] 개인 커리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4월 28일에 안토니오 이노키의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축전'의 일환으로 북한 평양 릉라도에서 치러진 WCW - 신일본 합동 흥행 콜리전 인 코리아에 참가했는데, 이 때 만난 호쿠토 아키라에게 반해 귀국 후 청혼했고, 호쿠토가 승낙하며 결혼에 골인했다.

1995년 11월 13일에 열린 WCW US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서 스팅을 꺾고 첫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17]하지만 이후 원 맨 갱 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

하세 히로시가 의원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1996년 1월 4일 '96 WRESTLING WORLD IN 도쿄 돔(闘強導夢) 흥행의 '노던 라이트 파이널 매치'라는 부제로 프로레슬러 생활을 마무리하는 매치를 치르게 되자 사사키 켄스케가 상대를 맡아 하세에게 승리했다. 경기를 마친 후 사사키는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던 하세가 불과 10년만에 떠나간다는 사실을 슬퍼하면서도 정치인으로서의 건투를 빌어주었다.

2.3.3.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7–2001)

1997년은 사사키의 해였다.
G1 재패

1997년 8월 G1 클라이맥스에 참가 8월 3일, 결승에서 텐잔 히로요시를 꺾고 우승했다.

파일:1671446693.png
1주일 후, 야마자키 카즈오와 함께 IWGP 태그팀 챔피언 벨트를 다시 한 번 차지했으며, 8월 말에는 장기 집권을 하고 있던 하시모토 신야를 꺾고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거머쥐며 한 달 만에 3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후 이뤄진 타이틀 방어에서 무토 케이지쵸노 마사히로를 모두 꺾고 3연패를 달성함으로써 헤비급에서의 우세를 굳혔다.

1998년 4월에는 후지나미 타츠미에게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빼앗겼으나, 1999년 3월에 코시나카 시로와 함께 IWGP 태그팀 챔피언십을 한번더 획득한다.

이후 텐류 겐이치로를 꺾으면서 두번째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한다.
다시한번 G1 재패
2000년 8월 다시한번 G1 클라이맥스에 참가하여, 결승에서 이전해 우승자인 나카니시 마나부를 꺾고 두 번째 G1 클라이맥스 우승을 차지하면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한 상태에서 우승한 두번 째 선수로 기록되었다.[18]
왕도 프로레슬링 vs 스트롱 스타일(2000년 10월 9일 vs 카와다 토시아키)

2000년 10월 9일, 전일본 vs 신일본의 대항전에서[19] 카와다 토시아키와 명승부 끝에 패한 후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포기했다.
복수전! (2001년 1월 4일 vs 카와다 토시아키)
이후 공석이 된 IWGP 헤비급 챔피언 벨트가 걸린 토너먼트 결승에서 카와다 토시아키를 꺾고 타이틀을 되찾았다.

2001년 3월에는 IWGP 헤비급 챔피언십 벨트를 스콧 노턴에게 빼앗겼고, 이후 해 내내 부침을 겪었다.[20] 2002년 말에는 회사 경영진과 결별해 신일본을 탈단했다.

2.4. Fighting World of Japan Pro Wrestling (2003–2004)

2003년 초, 자신의 멘토인 초슈 리키가 세운 Fighting World of Japan Pro Wrestling (WJ)에 함께 참전하며 WJ 소속이 되었다.

이후 WMG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지만, WJ가 대차게 망한 이후 재정 문제로 초슈와 갈등을 겪으면서 프리랜서로 전환했다.

2.5. 프리랜서(2004–2014)

2.5.1. 신일본 프로레슬링 (2004–2005)

WJ을 떠난 이후 2004년, 프리랜서로 신일본에 복귀했다.

파일:1671446858.png
신일본 복귀전인 2004년 레슬링 월드에서 엄청난 혈투 끝에 나가타 유지에게 패했다. 이후 나카니시 마나부와 호흡을 맞췄고, 태그 팀을 결성했고 스콧 노튼, 텐류 겐이치로 등과 정기적으로 팀을 꾸렸다.
3월 12일 도쿄에서 열린 IWGP 헤비급 챔피언십 매치에서 텐잔 히로요시를 꺾고 타이틀을 획득한다.
하지만 이노키즘으로 인하여 2주 후에 밥 샙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

이후 제자이자 양자인 나카지마 카츠히코를 소개하고 '켄스케 패밀리'를 결성해, 신일본의 선수와 팬의 지지를 되찾으려고 하는 구원의 스토리를 시작했다. 8월에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G1 클라이맥스에 진출했지만 마지막 날 텐류에게 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10월, 다시 팬의 지지를 받고, 후지타 카즈유키 에게 도전하여 불과 2분 29초에 후지타를 꺾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되찾았다. 이번 승리는 사사키와 아내 호쿠토 아키라가 무대 뒤에서 사사키에게 준 트로피를 파괴하고 후지타가 MMA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부러 우승컵을 내렸다고 비난한 것에 의해 정당하게 항의했지만 켄스케는 타나하시 히로시스즈키 미노루를 상대로 두 차례나 벨트를 방어한 뒤 텐잔에게 타이틀을 내줬다.

11월 텐잔에게 타이틀을 내준 이후, WJ에서 척을 지게 된 초슈 리키가 백스테이지로 복귀하면서 신일본을 다시 한 번 떠났고, 이후 다시는 신일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5.2. 전일본 프로레슬링 (2005–2008)

신일본 복귀 후 프리랜서로 전일본에서도 활동을 시작한 사사키는 2004년 챔피언 카니발에 출전해 결승에 진출하지만, 결승에서 무토 케이지에게 패하여 우승에 실패한다. 이후로도 2004년 내내 가끔 출연했던 사사키는 2005년 초 전일본에 풀타임으로 이적했다.
이번엔 삼관을 목표로
1월 16일 삼관 헤비급 챔피언카와다 토시아키 에게 도전했지만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2005년 챔피언 카니발에 출전해 결승에서 자말을 꺾고 챔피언 카니발을 제패했다.

2005년 7월 26일, 제자인 나카지마 카츠히코와 함께 VOODOO-MURDERS를 꺾고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에 올랐으며, 9월 1일 디퍼 아리아케에서는 파워 워리어로 오랫만에 재등장하여 로드 워리어 애니멀과 함께 팀을 이뤄 VOODOO-MURDERS의 "brother"YASSHI와 콘도 슈지를 물리쳤다. 11월 19일, 기세를 이어 당시 삼관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코지마 사토시에게 도전했으나 패했다. 2006년 7월, 부상으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게 되어, 나카지마와 함께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쉽을 내려놓았다.

삼관!!
이후 2007년 1월에 복귀한 사사키는 2007년 8월 26일, 스즈키 미노루를 꺾고 첫 삼관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2007년 10월 18일 카와다 토시아키를 상대로 첫 방어에 성공했다.

그리고 나카지마 카츠히코와 함께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에 진출했다가 나카지마가 부상을 당하자 카와다가 대타로 합류하여 결승에 진출하지만, 12월 9일에 코지마 사토시 & 스와마와의 결승 결정전에서 패했다.[21]

2008년 3월 1일 코지마 사토시를 상대로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방어에 성공했다. 4월 5일부터 4월 9일까지 코라쿠엔 홀에서 열린 2008년 챔피언 카니발에 5회 연속 참가하여 1승(vs 조 도링과), 1패(vs 스즈키 미노루), 2무(vs 스와마, 니시무라 오사무)를 기록한 후 승점 4점으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2008년 4월 29일, 챔피언 카니발 우승자 스와마에게 삼관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고, 6월에 전일본을 탈단한다.

2.5.3. 프로레슬링 NOAH (2008–2013)

파일:external/yuman.cocolog-nifty.com/im00017951.jpg
촙 vs 촙 , 래리어트 vs 래리어트 ,강완 vs 강완!
2005년 프로레슬링 NOAH에 새롭게 출전하여, 2005년 7월 18일 도쿄 돔에서 열린 NOAH Destiny 2005에서 코바시 켄타와 무려 300발이 넘는 찹을 주고받으며 5분동안 찹만으로 정면승부를 하는 명경기를 펼치지만 결국 패하고 만다.

파일:d0038448_5b820bdd678c4.jpg
2008년 삼관 헤비급 챔피언을 빼앗긴 뒤 프로레슬링 NOAH로 건너가 켄스케 오피스를 운영하면서 정규 홈 프로모션을 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9월 6일, 모리시마 타케시를 꺾고 GHC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획득해, 일본 3대 메이저 단채에서 메인 타이틀을 모두 획득하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레슬러가 되었다.

이 벨트는 2009년 3월 1일 아키야마 쥰에게 빼앗겼으나, 2009년 9월 21일, 모리시마와 팀을 이루어 사이토 아키토시 & 바이슨 스미스로부터 GHC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다. 이후 2009년 12월 6일에 리키오 타케시모하메드 요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이 후 정규 태그 파트너 모리시마 타케시와 팀을 이루어 1월 9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되는 2010년 글로벌 태그 리그에 참가했다. 모리시마와 함께 A블록 우승자인 타카야마 요시히로사노 타쿠마에게 패해 합계 4점으로 리그를 마쳤다. 3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는 2010 글로벌 리그에도 참가했고 아키야마 쥰을 이기는 성과를 보이지만, 최종 우승자인 타카야마 요시히로 에게 패해 합계 7점으로 끝났다.

2.5.4. 다이아몬드 링 (2005–2014)

2005년, 자신의 에이전시 「켄스케 오피스」를 설립을 하였으며, 부인인 호쿠토 아키라 대표로 경영하고 있다. 켄스케 오피스에서는 제자인 나카지마 카츠히코가 다른 단체, 특히 전일본 프로레슬링프로레슬링 NOAH를 견학했다.

2006년 9월, 켄스케 오피스는 글로벌 프로레슬링 얼라이언스(GPWA)의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고. 2007년부터 독자적인 흥행을 기획해, 스즈키 미노루, 아키야마 쥰, 텐류 겐이치로, 타카야마 요시히로, 키쿠타로, 모리시마 타케시, KENTA, 캣피시맨등이 흥행에 나서고 있다. 2012년 1월, 켄스케 오피스는 다이아몬드 링으로 개명하고 자체 프로모션을 이어나갔다.

2014년 2월 11일, 다이아몬드 링의 메인 이벤트에서 제자이자 양자인 나카지마 카츠히코한테 첫 패배를 당했으며, 이틀 뒤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레슬링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다이아몬드 링에는 나카지마 카츠히코 1명만이 남았고, 카지와라 사토시가 탈단을 하며 키타미야 미츠히로가 프로레슬링 NOAH에 합류, 이윽고 나카지마도 NOAH에 합류하며 프로레슬링 단체로서는 완전 소멸, '켄스케 오피스'로 되돌아가 연예 활동 사무소로만 역할을 하고 있다.

3. 논란

3.1. 일본 프로레슬링 똥군기의 끝판왕

레슬링 업적으로만 놓고 보면 분명 레전드 반열에 들어갈 선수이고, 일본의 예능이나 방송에 나올때는 선한 미소를 보여주고 자상한 이미지로 포장했지만 그 실체는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올타임 넘버원 수준의 똥군기의 화신이었다. 오죽하면 WWE에서 똥군기로 악명을 떨쳤던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 크리스 벤와 & 빌 디못, 그리고 역시 일프계에서 똥군기나 악습으로 악명이 높았던 초대 타이거 마스크(사야마 사토루) & 마에다 아키라나 악습에 임금체불등 부조리로 악명을 떨친 오니타 아츠시 조차도 켄스케 보다 아래로 여길 정도.[22]

숙소 규칙에도 없는 신입부터 3년차까지는 자위 금지라고 장난을 치질 않나, 단체로 식사중에 후배들에게 주목하라고 하고는 내가 이 흰색 컵을 들고 있지만 내가 이걸 검은색 컵이라고 하면 너희들도 당연히 검은색이라고 대답해야 하며 반론을 제기하고나 토를 달 경우 그자리에서 면상을 갈기겠다고 하질 않나, 후배 레슬러가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차들이 씽씽 달리는 8차선 도로에 집어던지고는 그 후배에게 주워와보라며 킬킬대는 등 그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특히 학생 프로레슬링 출신이었던 마카베 토우기가 신인시절 이 인간때문에 말도 못하게 고생했고, 고통을 참으며 꿈인 프로레슬러를 해야 하나 이렇게 당하느니 저 인간을 칼로 담가버리고 레슬링 판을 떠야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23]

심지어 과거에 적당히 잘못한 것 정도는 넘어가주고, 이지메조차도 예능 개그 소재로 쓸 정도의 일본 특유의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후배에 대해 구타나 기합등을 살벌하게 시키고 악질적인 장난질을 서슴치 않는 등 일본 프로레슬링게에 똥군기는 기본이라 여겨지던 시절에 동시기에 활동한 동기나 후배는 물론 선배들조차도 켄스케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서 너무 심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을 정도였다.[24]

레슬링 업계 동료들과 일본의 프로레슬링 팬들은 어떻게 저런 악명 높은 사사키 켄스케가 일프계의 악질적인 똥군기 타파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력한 호쿠토 아키라와 어떻게 결혼했는지 강한 의문을 가질 정도. 더군다나 호쿠토는 한창 뜨기 시작하던 무렵 이를 시기하고 견제하던 선배들에게 시달리다 경기 중 한 선배가 고의로 파일 드라이버를 세게 찍어 심한 목부상을 당한 대표적인 똥군기 피해자였다.

저런 실상이 알려지고 사무라이 TV나 일본의 방송국 예능에서 사람좋은 모습으로 포장하고 나온 그를 떠올리며 사이코패스 같다며 소름이 돋았다고 말하는 팬들도 있다.

4. 여담

5.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keep-all"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그랜드 슬램 ]⠀
{{{#!wiki style="margin:-5px 0 -5px"
{{{+1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파일:Pwnoah.png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1|{{{#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그랜드 슬램 달성자}}}]]}}}
사사키 켄스케
(Kensuke Sasaki)
타카야마 요시히로
(Yoshihiro Takayama)
무토 케이지
(Keiji Muto)
코지마 사토시
(Satoshi Kojima)
나가타 유지
(Yuji Nagata)
총 5명
같이 보기: 후보 선수
}}}}}}}}}
⠀[ 슈퍼 그랜드 슬램 ]⠀
||<-4><tablebordercolor=#d81820><tablealign=center><bgcolor=#000000> {{{+1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파일:Pwnoah.png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2|{{{#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슈퍼 그랜드 슬램 달성자}}}]]}}} ||
타카야마 요시히로
(Yoshihiro Takayama)
무토 케이지
(Keiji Muto)
코지마 사토시
(Satoshi Kojima)
나가타 유지
(Yuji Nagata)
총 4명
⠀[ 울트라 그랜드 슬램 ]⠀
||<-1><tablebordercolor=#d81820><tablealign=center><bgcolor=#000000> {{{+1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파일:Pwnoah.png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3|{{{#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울트라 그랜드 슬램 달성자}}}]]}}} ||
나가타 유지
(Yuji Nagata)
총 1명
⠀[ 주니어 그랜드 슬램 ]⠀
||<-2><tablebordercolor=#d81820><tablealign=center><bgcolor=#000000> {{{+1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파일:Pwnoah.png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4|{{{#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주니어 그랜드 슬램 달성자}}}]]}}} ||
마루후지 나오미치
(Naomichi Marufuji)
타나카 미노루
(Minoru Tanaka)
총 2명
같이 보기: 후보 선수
⠀[ 주니어 슈퍼 그랜드 슬램 ]⠀
||<-1><tablebordercolor=#d81820><tablealign=center><bgcolor=#000000> {{{+1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파일:Pwnoah.png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5|{{{#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주니어 슈퍼 그랜드 슬램 달성자}}}]]}}} ||
타나카 미노루
(Minoru Tanaka)
총 1명

}}} ||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G1 클라이맥스 우승자
1996 1997 1998
초슈 리키 사사키 켄스케 하시모토 신야
1999 2000 2001
나카니시 마나부 사사키 켄스케 나가타 유지
파일:전일본프로레슬링로고.webp 역대 신춘 배틀로얄 우승자
2006 2007 2008
아라시 사사키 켄스케 압둘라 더 부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역대 챔피언 카니발 우승자
2004 2005 2006
무토 케이지 사사키 켄스케 타이요 케아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경기 [★]
1991년
3월 21일
WCW
WCW/신일본 수퍼쇼 1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26]
_더 스타이너 브라더스(스캇 스타이너(O) & 릭 스타이너)_(C)
vs
하세켄(하세 히로시 & 사사키 켄스케(X))(C)
****½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3)
사사키 켄스케
(2004)
코지마 사토시
(2005)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수훈상
마루후지 나오미치
(2007)
사사키 켄스케
(2008)
스기우라 타카시
(2009)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2000년
10월 9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Do Judge!!
투장무한대([ruby(闘将, ruby=とうしょう)][ruby(無限大, ruby=む げんだい)])
싱글 매치
_카와다 토시아키_ vs 사사키 켄스케
2005년
7월 18일
프로레슬링 NOAH
Destiny 2005
싱글 매치
_코바시 켄타_ vs 사사키 켄스케


[1] 1989년 8월 캘거리 해외 원정 도중 사용한 링네임.[2] 1992년 11월 로드 워리어즈(호크 & 워리어)와 함께 헬 레이져스를 결성한 이후 헬 레이져스로 출전할 때 사용하던 링네임.[3]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 중이다. 일본 내에서 유명 연예인이 된 어머니의 영향인지, 5만이 넘어가는 인스타 팔로워를 보유 중이다. 블로그 외에 SNS가 없는 아버지 켄스케 대신 가족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4] 일본의 여성 프로레슬러. 본명은 스기우라 카즈미([ruby(杉浦, ruby=すぎうら)] [ruby(一美, ruby=かずみ)]). 나가요 치구사의 단체인 마벨러스 소속. 사사키 켄스케의 장남인 사사키 켄노스케와 결혼하여 슬하에 1녀가 있다.[5] 현 히가시후쿠오카 지쿄칸(自彊館)중,고교. 하카타구 소재. 축구, 럭비, 배구 명문으로 특히 축구부가 1990년대 말에 '붉은 혜성'이라는 별명으로 전국 최강급을 자랑했다. 축구에서는 코지마 히로미, 카시마 앤틀러스의 전성기를 이끈 일본 국대 수비수 모토야마 마사시, 일본 국대와 인테르에서 익숙한 FC 도쿄레프트백 나가토모 유토, 일본 국대와 AZ 알크마르라이트백 마이쿠마 세이야, 카시마의 국대 출신 아라키 료타로외 수많은 현역 선수들과 코치들을 배출했으며, 럭비에서는 수많은 일본 국대급 선수들, 야구에서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무라타 슈이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프랜차이즈 2루수 타나카 켄스케, 치바 롯데 마린즈의 우승 불펜 이토 요시히로가 이곳 출신이다.[6] 헤드홀드 크로스 암바.[7] 무릎 꿇기 헤드홀드 암바.[8] 리버스 스텝 오버 헤드 홀드 암바.[9] 부인 호쿠토 아키라에게 생일 선물로 전수 받았다.[10] TAKE THE DREAM~섬광~. 일본의 혼성 밴드 BLUE STEALER가 연주를 담당했다. 당시 남성 프로레슬러로서는 매우 드물게 여성 보컬의 곡을 사용한 선수였다.[11] 가사가 영어로 변경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2000년 1월 4일 레슬링 월드 2000부터 2001년 4월 9일 STRONG STYLE 2001까지 쓰였다.[12] 2001년 4월부터 10월까지 방황기를 겪고, 10월 8일 신일본의 도쿄 돔 흥행인 INDICATE OF NEXT 후지타 카즈유키 전으로 복귀하면서부터 사용한 테마곡. 본래는 THE WORLD만 틀었으나, The 2004년 WJ 퇴단 후에는 이전에 사용하던 TAKE THE DREAM ∞의 인트로를 더하여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13] 재팬 프로레슬링. 1984년 초슈 리키를 비롯해 안토니오 이노키의 단체 운영방식에 불만을 품은 선수들과 같이 이탈하여 세운 단체로, 1987년 내분으로 해산했다. 사사키는 재팬 프로레슬링 신인 데뷔 1호였다.[14] 파일:attachment/프랑켄 슈타이너/2s6q5nn.gif
이 경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경기는 4.5성을 받으며 1991년 레슬링 옵저버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15] 스캇이 부상으로 11월부터 빠지면서, 스캇 노턴이 스캇 스타이너의 대타를 뛰고 있었다.[16] 호크 & 애니멀과 6인조 태그 매치를 하는 등 특별한 경우에만 기믹을 부활시켰다.[17] 신일본 프로레슬링 흥행에서 타이틀이 바뀌었다.[18] 첫번째는 무토 케이지.[19] 2000년에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터진 이후, 소속 선수가 단 두명 (후치 마사노부 & 카와다 토시아키)이 된 상태에서 후치 마사노부의 전일본 사상 최고 마이크웤으로 성사된 대항전이었다. 말이 대항전이지 2명 vs 거대 단체 신일본의 대항전을 무리없이 성사시킨 것은 오롯이 후치 마사노부의 공이었다.[20] 이 때, 사사키에게 이노키가 MMA 파이터로 만들기 위한 연습을 시켰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21] 양 팀 모두 동점이어서 진행되었다. 사사키 & 카와다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한 코지마 & 스와마는 결승에서 무토 케이지와 조 도링에게 패배했다.[22] 한편 이후 북미에서 빌 디못WWE 트레이너로서 수련생들한테 가혹행위를 저지른 것이 알려져 해고되는 일이 생겼을때 디못 못지 않을 정도로 심한 케이스인 켄스케가 거론되기도 했었다.[23] 심지어 업계 탑급의 개차반 인성을 자랑하던 스타이너 브라더스의 릭 스타이너조차 신일본에 참전했을 때 대기실에 있다가 사사키를 비롯한 선배들에게 쳐맞은 후 대기실로 온 마카베의 몰골을 보고 "너 괜찮은거냐??"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건 그 릭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인데 정작 그렇다고 충격으로 동료들을 상대로 악랄한 짓을 하는걸 관둔건 아니었다는게 아이러니한 일이다.[24] 조금 아이러니한 점은 켄스케를 비판한 동기나 선배들중에는 본인도 똥군기 논란이 있었던 선배들이 꽤 있었다. 그래도 일프계에서 이정도의 극악의 평가를 받은 것은 사사키와, 생불에 가까운 텐잔 히로요시조차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간접적으로 언급한 '광견' 오하라 미치요시 정도였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26]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인 스타이너 브라더스와 신일본의 IWGP 태그팀 챔피언인 하세 히로시 & 사사키 켄스케가 서로의 벨트를 걸고 대결했으며, 사사키 켄스케가 스캇 스타이너의 프랑켄 슈타이너를 맞고 무너지면서 스타이너 브라더스가 승리하여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겸 IWGP 태그 팀 챔피언이 되었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