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2-08 17:37:47

사비 에르난데스/클럽 경력/FC 바르셀로나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사비 에르난데스/선수 경력
파일:XAVI_debut.jpg
▲ 1998년 데뷔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FC 바르셀로나 (라리가)
등번호 6 (2001-2015)
26 (1998-2000)
29 (1997-1998)
기록
파일:라리가 산탄데르 은행 로고(가로형/화이트).svg
505경기
58득점 130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157경기
12득점 31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 가로형.svg
13경기
1득점 2도움
파일:코파 델 레이 로고.svg
70경기
9득점 17도움
파일:Supercopa-de-España-RFEF.svg
14경기
4득점 3도움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3경기
파일:FIFA 클럽 월드컵 로고.svg 5경기
1득점 1도움
합산 성적
767경기
85득점 184도움
1. 개요2. 유스 시절과 데뷔3. 1998-99 시즌4. 1999-00 시즌5. 2000-01 시즌6. 2001-02 시즌7. 2002-03 시즌8. 2003-04 시즌9. 2004-05 시즌10. 2005-06 시즌11. 2006-07 시즌12. 2007-08 시즌13. 2008-09 시즌14. 2009-10 시즌15. 2010-11 시즌16. 2011-12 시즌17. 2012-13 시즌18. 2013-14 시즌19. 2014-15 시즌20. 총평

[clearfix]

1. 개요

사비 에르난데스FC 바르셀로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유스 시절과 데뷔

카탈루냐에서 태어났던 사비는 1991년 라마시아에 입단하여 유스팀과 리저브팀을 거쳤고 바르셀로나 B팀의 핵심 일원이 되었다. 그는 당시 바르셀로나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펩 과르디올라를 보고 꿈을 키워갔다.

1997-98 시즌 5월 코파 카탈루냐에 출전하며 처음으로 바르셀로나 1군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

3. 1998-99 시즌

1998-99 시즌 사비는 정식으로 1군으로 등록되었다. 데뷔 초기에는 어떤 경기에서는 센터백으로 뛰기도 하는 등 다양한 포지션, 역할에서 뛰어본 적이 있다.

데뷔 시즌이었던 1998-99 시즌에만 준주전으로 2경기를 소화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결승 진출 팀들인 바이에른 뮌헨과의 1, 2차전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차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단, 아직 확고한 주전은 아니었고 라리가2를 병행하며 뛰었다.

1998-99 시즌: 26경기(선발 22경기) 2골 2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17 16 1 1 2
챔피언스 리그 6 4 2 0 0
코파 델 레이 2 1 1 0 0
수페르코파 1 1 0 1 0
<rowcolor=#EDBB00> 합계 26 22 4 2 2

4. 1999-00 시즌

1999-00 시즌에는 1군에 완전히 정착했다. 펩 과르디올라의 부상으로 인해 많은 기회를 받으며 팀의 주요 플레이메이커가 되었다. 이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뽑혀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결승전에서 카메룬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했다.

1999-00 시즌: 38경기(선발 23경기) 2골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4 15 9 0 0
챔피언스 리그 10 5 5 1 0
코파 델 레이 4 3 1 1 0
<rowcolor=#EDBB00> 합계 38 23 15 2 0

5. 2000-01 시즌

2000-01 시즌에는 과르디올라, 프티, 코쿠 등에 밀려 아직 완전히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2000-01 시즌은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에서 뛴 마지막 시즌으로, 새로운 도전을 위해 AS 로마로 이적했다.

2000-01 시즌: 36경기(선발 25경기) 2골 6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0 15 5 2 6
챔피언스 리그 3 3 0 0 0
UEFA컵 6 1 5 0 0
코파 델 레이 7 6 1 0 0
<rowcolor=#EDBB00> 합계 36 25 11 2 6

6. 2001-02 시즌

팀의 간판 미드필더 였던 펩 과르디올라가 로마로 떠나게 되었다. 이로서 2001-02 시즌 차비는 완전한 주전이 될 수 있었다. 이 시즌의 활약으로 2002 한일 월드컵에 22살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될 수 있었다.

2001-02 시즌: 52경기(선발 45경기) 4골 13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5 31 4 4 10
챔피언스 리그 14 11 3 0 3
코파 델 레이 1 1 0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0 0
<rowcolor=#EDBB00> 합계 52 45 7 4 13

7. 2002-03 시즌

02-03 시즌은 완전히 격동의 시기였던 시즌으로 팀이 계속해서 성적이 좋지 못하자 바르셀로나는 팀에게 좋은 성적을 가줘다 줬던 반 할을 다시 선임했고 반 할이 선임되자 팀의 간판 에이스였던 히바우두는 떠나게 되었다. 새로이 출범한 반 할 바르셀로나는 성적이 너무나도 좋지 못했는데 팀은 라리가 16위까지 떨어지며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도중 반 할은 경질되었고 겨우 리그를 6위로 마무리 하게 된다. 사비는 묵묵히 필드 위에서 본인의 역할을 다하며 경험을 쌓던 시즌이었다.

2002-03 시즌: 44경기(선발 44경기) 3골 8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9 29 0 2 5
챔피언스 리그 12 12 0 1 3
코파 델 레이 1 1 0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0 0
<rowcolor=#EDBB00> 합계 44 44 0 3 8

8. 2003-04 시즌

03-04 시즌 주안 라포르타가 회장으로 선임되며 프랑크 레이카르트감독을 선임하며 다시금 바르셀로나에 황금기가 돌아온 시즌으로 당시 파리 생제르맹에 있던 호나우지뉴를 영입했다. 2004년에는 임대 온 에드가 다비즈와 같이 뛰기도 했다. 차비의 전성기가 시작된 시즌과도 같다.

2003-04 시즌: 49경기(선발 47경기) 5골 14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6 34 2 4 11
UEFA컵 7 7 0 1 2
코파 델 레이 6 6 0 0 1
<rowcolor=#EDBB00> 합계 49 47 2 5 14

9. 2004-05 시즌

04-05 시즌 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FC 포르투의 핵심 미드필더 였던 데쿠가 바르셀로나로 영입되었지만 사비는 당당히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활약했다. 바르셀로나는 6년 만에 리그 우승을 했고, 사비는 팀 내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해 스페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4-05 시즌: 45경기(선발 45경기) 3골 14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6 36 0 3 13
챔피언스 리그 8 8 0 0 1
코파 델 레이 1 1 0 0 0
<rowcolor=#EDBB00> 합계 45 45 0 3 14

10. 2005-06 시즌

2005-06 시즌에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다. 팀은 14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했고, 리그도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우승해 더블을 달성하는 좋은 시즌을 보냈다. 리그는 13라운드까지 뛰다 부상 복귀 후 35라운드부터 다시 뛰었고, 챔피언스 리그는 조별 리그 4경기만을 뛰었다. 이니에스타가 차비의 빈 자리를 꽤나 잘 메꾸어주었다.

2005-06 시즌: 22경기(선발 20경기) 2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16 14 2 0 1
챔피언스 리그 4 4 0 0 0
수페르코파 2 2 0 0 1
<rowcolor=#EDBB00> 합계 22 20 2 0 2

11. 2006-07 시즌

06-07 시즌 지난 시즌의 뒤를 이어 바르셀로나의 영광이 계속 되나 싶었지만 이미 지난 시즌 큰 성공을 거둔 탓인지 선수들이 해이해지기 시작했으며 레이카르트의 선수 장악력이 점점 약해지는 시기였고 바르셀로나도 다시금 휘청이기 시작했던 시즌이다.

2006-07 시즌: 54경기(선발 45경기) 6골 7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5 31 4 3 4
챔피언스 리그 7 4 3 0 1
코파 델 레이 7 7 0 2 2
수페르코파 2 2 0 1 0
슈퍼컵 1 1 0 0 0
클럽 월드컵 2 0 2 0 0
<rowcolor=#EDBB00> 합계 54 45 9 6 7

12. 2007-08 시즌

07-08 시즌은 아스날의 간판이자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티에리 앙리를 영입하며 다시 성적 반등을 꾀했지만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11월 팀의 선수 였던 에드미우송이 인터뷰로 검은 양 사건을 터트리면서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안좋아진다. 결국 바르셀로나가 전례가 없는 망한 시즌을 보내며 차비도 비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팀은 리그 3위를 기록했고,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탈환하지 못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4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배했다.

이 시즌에 차비는 크게 부진했으며, 이로 인해 바르셀로나를 떠나려고도 했었다. 본래 차비가 이적하려던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하지만 오히려 시즌 종료 후 유로 2008에서 스페인의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MVP를 수상했다.

2007-08 시즌: 54경기(선발 50경기) 9골 9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5 33 2 7 6
챔피언스 리그 12 11 1 1 1
코파 델 레이 7 6 1 2 2
<rowcolor=#EDBB00> 합계 54 50 4 9 9

13. 2008-09 시즌

2008-09 시즌 유로 종료 후 사비는 바르셀로나를 떠나려고 했고,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등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적 직전까지 갔으나 새로 부임했던 펩 과르디올라감독은 사비와의 면담을 통해 그가 나의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꼭 남기를 바란다고 부탁했고 사비는 그로 인해 팀에 잔류하게 되었다.

펩은 과감한 팀 개편을 시도 했는데 호나우지뉴, 데쿠가 리빌딩 과정에서 부진, 불성실 등의 이유로 팀을 떠났다. 펩 체제에서 사비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특히 리그 후반기 엘 클라시코에서 6 대 2 승리를 하는데 4도움을 기록했다. 팀은 스페인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리그 23도움, 챔피언스 리그 7도움으로 각 대회 도움왕에 올랐다.

이 시즌 사비는 본격적으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가 되었다. 사비가 유로 2008 이전에도 이미 상당한 수준의 선수였지만 당시 팀의 에이스는 호나우지뉴와 에투, 데쿠였던 것은 사실이다. 사비도 라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수준급 선수였으나 호나우지뉴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고, 에투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으며, 데쿠는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데쿠는 2004-05 시즌 UEFA 올해의 미드필더 상을 수상하는 등 데쿠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2008-09 시즌: 54경기(선발 49경기) 10골 31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5 34 1 6 23
챔피언스 리그 12 11 1 2 7
코파 델 레이 5 2 3 1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1 0
<rowcolor=#EDBB00> 합계 54 49 5 10 31

14. 2009-10 시즌

2009-10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벌어진 엘 클라시코에서는 패스 마스터라는 별명에 걸맞은 엄청난 활약을 했다. 레알 수비진이 리오넬 메시에게 달라 붙은 틈을 타 킬패스를 찔러대며 어시스트 2개를 만들어내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첫 번째 골은 사비의 킬패스에 이은 메시의 공간 침투 합작품. 두 번째 어시스트도 사비가 후방에서 정확한 스루패스를 찔러주자 페드로가 받아서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메시에게 몇 번 더 정확한 패스를 찔러줬지만 이케르 카시야스의 야신 모드가 발동하며 추가 골을 기록하진 못했다.

2009-10 시즌: 53경기(선발 48경기) 7골 20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4 31 3 3 16
챔피언스 리그 11 11 0 1 3
코파 델 레이 3 1 2 2 0
수페르코파 2 2 0 1 1
슈퍼컵 1 1 0 0 0
클럽 월드컵 2 2 0 0 0
<rowcolor=#EDBB00> 합계 53 48 5 7 20

15. 2010-11 시즌

2010-11 시즌 엘 클라시코에서는 감각적인 선취 골과 완벽에 가까운 경기 운영으로 5:0 대승을 이끌었다.

2010-11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 바르셀로나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자로 잰 듯한 킬패스로 페드로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것을 비롯, 완벽에 가까운 경기 조율로 바르셀로나의 3:1 완승을 이끌어냈다. 결승골을 기록한 리오넬 메시 다음 가는[1] 이날 승리의 최고 공신이었다.

2010-11 시즌: 50경기(선발 47경기) 5골 15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1 29 2 3 7
챔피언스 리그 12 11 1 2 3
코파 델 레이 6 6 0 0 4
수페르코파 1 1 0 0 0
<rowcolor=#EDBB00> 합계 50 47 3 5 15

16. 2011-12 시즌

2011-12 시즌은 좀 애매하다. 시즌 초반에는 이름값과 명성에 어울리는 활동을 해 주었으나,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침체된 경기력을 보였다. 대부분의 팬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 이 사람도 어느덧 만으로 서른 둘이다. 축구 선수, 그것도 활동량이 엄청난 미드필더로서는 이제 체력 문제가 발목을 잡을 나이다. 또 원래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엄청난 활동량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체력 문제는 노쇠화가 진행되며 어쩔 수 없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당장 그를 대신할 만한 선수가 없다는 점. 확실히 그가 체력 문제에 시달리기 시작한 2011-12 시즌 후반기 바르셀로나의 성적은 예전만 못하다. 물론 충분히 위력적이고 아직까지 세계 최강 팀이긴 하나 예전의 그 위압감은 못 낸다는 게 중론. 그렇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바르샤는 2011-12 시즌 통틀어 73%의 승률을 찍었고, 라리가에서 승점 91점을 찍었으며, 챔스도 4강에 가는 등 보통의 경우에는 호평받을 만한 성적을 냈으며[2], 사비 역시 시즌 전체를 돌이켜 볼 때 메시를 제외하면 팀 내에서 가장 잘한 축에 들었다. 기준이 높아 아쉬울 따름이지 이 정도로도 팀이나 개인이나 충분히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2011-12 시즌: 51경기(선발 45경기) 14골 15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1 26 5 10 7
챔피언스 리그 9 9 0 1 2
코파 델 레이 7 7 0 2 5
수페르코파 2 1 1 0 0
슈퍼컵 1 1 0 0 0
클럽 월드컵 1 1 0 1 1
<rowcolor=#EDBB00> 합계 51 45 6 14 15

17. 2012-13 시즌

2012-13 시즌은 부진한 편이었다. 이 때문에 이니에스타는 중원에서 고군분투했고, 이니에스타, 메시, 알바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도 조금 부진한 편임을 감안해야 한다.

2012-13 시즌: 48경기 7골 13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0 24 6 5 9
챔피언스 리그 11 11 0 1 4
코파 델 레이 5 4 1 0 0
수페르코파 2 2 0 1 0
<rowcolor=#EDBB00> 합계 48 41 7 7 13

18. 2013-14 시즌

2013-14 시즌에는 커리어 최악의 부진을 겪는다. 크카모와는 대조적인 상황.

결국 시즌 종료 후 월드컵에서 스페인 내에서는 가비 페르난데스를 대신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지만 델보스케 감독은 사비를 데려갔다. 다만 당시 사비 에르난데스는 개인 최악의 폼이었고, 이런 패착이 맞물린 결과 스페인은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달성하고 만다.

2014년 1월 16일에 2013-14 시즌과 월드컵이 끝난 후 미국 MLS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하는 것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떴으나 본인은 부인했다. 월드컵 이후 미국, 중동 등 링크가 뜨면서 사비가 팀을 떠날 것으로 보였으나 새로운 감독이자 팀 레전드 출신인 루이스 엔리케의 설득으로 1년 더 팀에 남기로 선언하였다.

2013-14 시즌: 47경기(선발 41경기) 4골 6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0 26 4 3 2
챔피언스 리그 10 9 1 1 3
코파 델 레이 5 4 1 0 1
수페르코파 2 2 0 0 0
<rowcolor=#EDBB00> 합계 47 41 6 4 6

19. 2014-15 시즌

2014-15 시즌에는 상당한 부진을 겪었는데 예전의 패스마스터는 어디로 갔는지 엘클라시코에서 패스 성공률 74%를 찍는 굴욕을 맛봤다.

2015년 5월 21일, 결국 2014-15 시즌 종료 후 알 사드 SC 이적이 확정되었다. 알 사드와 2년 계약을 체결했고 1년 연장 옵션도 포함되어 있는 조건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결국 현지 시간 기준 5월 23일 캄 노우에서 바르셀로나 소속 라리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이니에스타와 40분경 교체되어 나가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 팬들은 짠하고 아쉽다는 반응이었지만 하지만 아직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과 유벤투스와의 챔스 결승전이 남아있기에 더블, 잘하면 트레블도 도전 가능한 상황이었다.

코파 델 레이에서도 우승 확정. 영혼의 콤비이자 스스로 언젠간 자신을 은퇴시킬 만한 인재라고 인정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단 둘이서 트로피를 들고 싶다며 그를 이끌고 둘이서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리가에서의 모든 경기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사상 최초의 두 번째 트레블을 향한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다.
파일:1578787893403.jpg

그리고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까지 교체 출전하면서 자신의 바르셀로나 마지막 시즌을 두 번째 트레블로 장식하였다. 원래는 벤치를 지킬 예정이었으나 부주장 이니에스타와 감독 엔리케가 상의 끝에 사비를 배려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사용한 공인구를 챙긴 차비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을 신호로 바르셀로나의 우승이 공식 발표되는 장면이 묘미.

차비의 퇴단식 연설은 다음과 같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뼛속까지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길고 길었던 17번의 시즌을 지나 오늘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음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누가 뭐래도 바르셀로나는 세계 최고의 클럽입니다.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제 가족, 아내, 그리고 여기 계신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준 환상적인 분들입니다.

마치기 전에 루이스 엔리케 감독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이 끝이 아닙니다. 저희는 6월 7일[3], 두 개의 트로피[4]를 더 들고 이 곳에서 트로피 셀레브레이션을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바르셀로나 만세, 카탈루냐 만세

2014-15 시즌: 44경기(선발 21경기) 2골 9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1 19 12 2 8
챔피언스 리그 10 2 8 0 0
코파 델 레이 3 0 3 0 1
<rowcolor=#EDBB00> 합계 44 21 23 2 9

20. 총평

파일:mini_3200x2000_xavi-trofeus-camp-nou_WEB.jpg
FC 바르셀로나 통산 기록: 767경기 85골 184도움
라리가 8회: 1998-99, 2004-05, 2005-06, 2008-09, 2009-10, 2010-11, 2012-13,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4회: 2005-06, 2008-09, 2010-11, 2014-15
코파 델 레이 3회: 2008-09, 2011-12, 2014-15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6회: 2005, 2006, 2009, 2010, 2011, 2013
UEFA 슈퍼컵 2회: 2009, 2011
FIFA 클럽 월드컵 2회: 2009, 2011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히며 역대 최고의 패스마스터 중 한명이다. 티키타카의 가장 중요한 엔진 역할이자 두뇌였던 그는 핵심이었으며 티키타카의 몰락은 사실상 사비의 노쇠화로 인해 내려오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바르셀로나 팀 전술에서 그는 너무나도 중요했던 자원이었다.

[1] 사비를 최고 수훈 선수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메시가 결승골을 넣기는 했지만 메시가 결승골을 넣기 전까지 맨유의 미드필더들은 거의 공을 만지지 못하는 수준으로 사비/이니에스타/부스케츠에게 신나게 털리고 있었다. 박지성은 박살나는 맨유 미드필더진에서 정말 눈물 빠지게 뛰어다녔지만 체력만으로 기량의 열세를 극복할 수는 없었고 결국 60분대부터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고 맨유 미드필더들은 제대로 바르사를 압박하지 못했다. 메시가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바르사 미드필더진의 이런 압도적인 플레이 덕분이었던 것이다.[2] 리버풀이 프리미어 리그 개편 이후 가장 호조를 보인 것은 2008-09 시즌이며, 이 시기 이견의 여지가 없는 정상급의 강팀이었다. 그럼에도 2011-12 시즌의 바르셀로나가 모든 면에서 성적이 더 좋다.[3] 연설 당시는 5월 23일[4] 5월 31일 코파 델 레이 결승 / 6월 7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36
, 2.1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36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