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プチエンジェル事件2003년 7월 17일, 일본 도쿄도 아카사카의 단기 임대 맨션에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4명이 감금되었고 용의자가 자살하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쁘띠 엔젤은 범인인 요시자토 코타로(吉里弘太郎, 당시 29세)가 조직한 비합법적이며 특별한 점포는 따로 없는 미성년자 데이팅 클럽의 이름이다.
2. 사건
요시자토 코타로는 이미 매춘으로 체포당한 경력이 있으며 집행유예 중이었던 범죄자였는데 시부야, 신주쿠 등의 번화가에서 여학생들을 수집하였다. 이 여학생들은 여고생인데 '노래방 5,000엔, 속옷 제공 10,000엔, 나체 촬영 10,000엔'이라고 쓰인 전단지를 배포하며 10대 초반의 여학생들을 꼬셔서 요시자토 코타로의 쁘띠 엔젤과 연결시켰다.속설에 따르면 요시자토가 노리던 여학생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라고 하며 이들을 꼬신 여고생들은 꼬신 사람 한 명당 1만엔에서 3만엔 가량의 성과금을 주었다고 한다. 요시자토 코타로는 이렇게 꼬신 여학생들을 남성들과 알선하는 행위를 저질렀으며 아동 포르노 비디오도 팔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속설에 따르면 요시자토 코타로는 시부야나 신주쿠의 호텔에서 여학생과 간단한 면접을 치렀다고 한다. 간단한 아르바이트라고 설명한 후 처음 몇 번에는 청소 따위를 시키며 돈을 쥐어줬다고 한다. 이렇게 몇 번 간단한 아르바이트와 그에 상응하지 않으면서 학생 입장에서는 제법 큰 돈을 쥐어주면서 경계심을 누그러트린 다음 해당 여학생의 친구들을 소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속설에 따르면 요시자토 코타로가 배포한 찌라시처럼 속옷 제공이나 나체 촬영 등이 이루어졌으며 이처럼 나체사진이나 속옷 등을 제공한 여학생과 해당 여학생을 알선해 준 여학생들은 그에 따른 보상으로 금전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중학생은 10,000엔이며 초등학생은 3배, 알선한 여학생들 역시 10,000엔에서 30,000엔의 금전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2003년 7월 초순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될 초등학생 중 한 명과 요시자토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해당 초등학생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준 감사 표시'라는 말과 함께 현금 10,000엔을 받았다고 하며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1] 이후 요시자토와 해당 초등학생은 휴대 전화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납치 2일 전인 11일 범인은 소유하고 있던 페라리 차량 2대를 팔고 아카사카의 위클리 맨션 11층 방을 단기 계약했다. 당시 요시자토는 근처의 호텔 이곳저곳을 굴러다니며 살던 형편이었다. 다음날 양판점에서 20L 용량의 폴리탱크와 아령, 연탄과 연탄을 피울 화로 등을 구입했다. 13일 요시자토는 "10,000엔을 줄 테니 방을 청소해 줬으면 한다"고 요청해 4명의 초등학생들과 시부야역앞에서 만나 택시를 통해 아카사카 맨션까지 이동했다.
하지만 방 안에 들어온 4명의 초등학생들이 청소를 시작하려고 하자 요시자토는 갑자기 "여기에 온 의미는 다 알고 있겠지?"라고 말하며 태도를 바꿨다. 요시자토는 초등학생들에게 눈가리개를 씌웠고 수갑을 채웠는데 그 수갑은 전날 구입한 폴리탱크와 아령에 연결되었다. 초등학생들은 스턴건으로 위협당했으며 식사는 과자 종류만 주어졌다고 한다.
범행일인 13일 심야 초등학생들의 가족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15일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었다. 16일 경찰이 1년 전에 있었던 중학교 2학년 소녀에 대한 성범죄 행위로 범인에게 체포장을 발부하면서 아침부터 요시자토의 주변에서 탐문이 시작되었다. 16일 저녁 요시자토는 텐트 형의 비닐 안에 들어가 연탄과 화로를 이용해 자살을 시도하면서 죽음에 이른다. 17일 아침 초등학생 한 명이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 수갑을 풀고 맨발로 탈출하여 근처의 꽃집에 들어가 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이 도착해 모든 소녀가 풀려나고 범인의 죽음을 확인했다.
18일 경찰은 시부야에서 청소년들에 대한 일제 조사에 착수해 범죄나 가출 등으로 인해 길거리를 헤매는 청소년 1,500명 이상을 확보하고 조사 및 보호 등의 조치를 취한다.[2] 같은 날 일본 참의원이자 방재대신이었던 코노이케 요시타다가 "소녀 4명 역시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발언했다. 즉, 소녀들도 가해자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발언에 대해 후지이 타카오 중의원에게 힐문당하자 코노이케 요시타다는 발언을 철회했으며 그에 관해서 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일부만 들은 상태에서 그만 내뱉은 실언이라고 정리되었다고 한다.
이후 경찰의 조사를 통해 사이타마현 쿠키시에 위치한 범인의 아파트에서는 1,000개 이상의 비디오테이프와 2,000명 이상의 고객 리스트가 발견되었지만 고객 리스트가 가명이라는 이유로 인해 아동 성범죄 관련자들을 줄줄이 낚아올리는 대신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았다.
범인은 아동 포르노 판매는 물론, '쁘띠 엔젤'이라는 아동 매춘 조직으로 막대한 이익을 쌓았는데 계좌에만 35억 가량의 거액이 예금되어 있었다. 사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납치 3일째 갑자기 자살해 버렸고 결국 아동들을 납치한 이유, 자살한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끝났다. 다만 범인의 부친이 1993년 후두부에 일어난 근육 긴장 이상(dystonia)이라는 난치병으로 1996년 자살하였고 형도 1999년 자살하였으며 2001년 모친이 자살미수를 일으켜 가족이 대부분 자살했고 본인도 평소 아토피염으로 괴로워하였다고 지인이 증언했다.
3. 사건의 의문점
자살 당시의 구조.
경찰의 조사 결과 범인인 요시자토 코타로는 전날인 16일 이미 자살한 상태였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범인은 부엌에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비닐을 텐트처럼 친 다음 그 안에서 연탄을 피워 자살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 같은 경찰 조사로는 비닐이 녹아내려서 자살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비닐을 아주 잘 밀봉한 후 약물 등으로 몽롱하거나 기절한 상태라면 사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닐 안이 상당히 뜨거웠을 텐데도 불구하고 범인 요시자토가 몸부림치거나 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초등학생들의 증언 중에도 딱히 냄새에 관련된 것은 없었다.
이 사건이 미궁에 빠졌으며 수많은 의문점이 제기되는 것도 범인이 유서도 없이 극히 순순히 자살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분명 경찰의 수사망이 죄어오고는 있었지만 아직 사건 수사 3일째인 초기라 그리 심하게 옥죄어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에 범인 주위에서 탐문이 시작되었는데 저녁에 범인이 자살했다. 범인이 눈가리개나 수갑 등을 4개만 준비했던 점, 폴리탱크나 아령 등을 전날 샀다는 것에서 볼 때 분명 계획된 범죄였으며 이 때 연탄과 풍로를 샀으므로 자살도 미리 계획되었을 가능성이 분명 적지는 않다.
그러나 애초에 자살의 동기가 희한하게 꼬여 있어서 불분명하다. 경찰의 수사망이 절망적으로 옥죄어 왔다기에는 애매하다. 게다가 경찰의 수사망이 옥죄어왔던 것은 분명 불과 3일 전에 자신이 저지른 납치행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납치하지 않았으면 굳이 자살을 준비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자살의 씨앗이 되어버릴 초등학생 4인 납치를 준비하고 그로 인해 경찰의 수사망을 아침에 느끼고 저녁에 너무나 맥없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은 분명 정상적인 상식선에서 아귀가 맞지 않는다.
요시자토 코타로는 이미 한 번 경찰에 체포당한 전력이 있으며 집행유예 중에도 동일 계통의 범죄로 먹고 살면서 큰 돈을 만지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처음도 아니고 2번째 체포를 맞이해 갑자기 맥없이 자살한다는 것은 분명 이상하다. 자살하고 싶으면 그냥 자살하면 되지 초등학생들을 납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초등학생들이 납치되었을 때의 맥락은 여고생들을 이용해 살살 꼬신 후 친구들까지 끌어내는 어느 정도는 전형적인 요시자토의 영업행위였다. 요시자토 기준으로 정상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 정상 영업이 갑자기 납치로 변하고 요시자토의 자살까지 번지는데 납치와 자살의 모든 아이템을 요시자토가 애초부터 준비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하다.
즉,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요시자토의 초등학생 4인 납치는 분명 계획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살도 납치와 동시에 계획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범죄로 생각하면 체포될 거 같아서 자살하는 건 이해될 수 있고 중대범죄로 인한 체포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강력범죄로 체포될 일이 없으면 그것 때문에 자살할 일도 없지만 요시자토는 강력범죄와 자살을 동시에 준비했다. 보통 생각하기에는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그것 때문에 체포될 거 같아서야 자살을 준비한다. 그런데 자살하고 싶으면 굳이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살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4인 납치 같은 상당히 번거로운 범죄를 말이다.
초등학생 4인을 납치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요시자토가 늘상 해 오던 불법 영업이고 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갑자기 요시자토가 늘상 해 오던 불법 영업이 "여기에 온 의미는 다 알고 있겠지"하면서 납치로 변해 버리고 당연히 아동 4인이 사라지니까 경찰에 신고가 들어간다. 경찰의 손길을 조금 느끼자마자 미리 준비한 대로 자살했는데 자살방법조차 불가능하거나 굳이 실행하자면 극히 번거로운 방식인데 극히 번거롭다 쳐도 화상, 몸부림, 냄새나 연기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증언이 없는 등 매우 석연치 않다.
정설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은 스턴건으로 위협당하긴 했으나 별다른 폭력을 당하진 않았으며 만약 경찰의 수사가 가명이 어쩌고 하는 식으로 이처럼 맥없이 마무리되었다면 소녀 4명을 납치하고 별다른 신체적 상해나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정상참작을 기대할 수도 있는데 요시자토가 과연 자살까지 할 만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의문을 종식시킬 수 있는 풍문이 있는데 풍문에 따르면 요시자토는 초등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소녀들은 몸성히 풀려났다는 것이 정설이기는 하다. 초등학생들은 납치감금된 시기에 이미 요시자토의 고객들에 의해 엄청난 횟수의 성적인 학대를 겪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진위는 분명치 않은 풍문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어쨌거나 초등학생들의 적은 연령을 이유로 조서가 공개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검시도 시행하지 않은 강력범인데 요시자토는 죽고 나서 바로 자살로 서류가 송청되었다. 역시 이상한 점이다. 경찰조사는 초등학생 4인의 납치사건뿐이며 요시자토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건화되지 않고 불문에 부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초등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실 맨션 계약자나 다른 여고생 알선범, 운전자[4] 등 혐의가 씌워질 만한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범인이 죽고 그냥 사건이 정리되고 말았다. 게다가 매스컴의 보도나 초등학생들의 증언, 경찰의 발표도 일정하지 않았다. 범행현장으로 말하자면 일본 국회가 있고 대사관이 많은 아카사카에서 일어났는데 매스컴 보도는 사건 현장인 아카사카가 아닌 시부야로 보도되었다. 물론 범인의 행동반경이 시부야도 포함하고 있긴 하다.
풍문에 따르면 쁘띠 엔젤은 연회비가 60만엔이며 성행위는 5만엔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성행위 시마다 요시자토는 초등학생은 3만엔, 중고등학생은 1만엔의 돈을 얻었다고 하며 장소로는 호텔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사건 초기에 분명히 대기업 수뇌부 및 간부, 대학병원의 의사, 변호사, 고급관료, 거물 정치가, 거물 정치가의 2세 및 3세가 고객 명단에서 발견되었다고 매스컴에서 보도되었지만 어느샌가 보도방향은 로리타 콤플렉스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방향으로 변하더니 고객 명단이 가명이라는 이유로 수사가 종결되었다. 풍문에 따르면 요시자토의 명단에는 변호사, 판사, 기업 회장, 거물 연예인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가명이라는 이유로 수사가 종결되었다고 한다면 초기 보도에서 확실히 직업을 언급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가명이지만 직업은 확실히 기재가 되어 있어서 알 수 있었다는 뭐 그런 것이 아니고서야.
풍문에 따르면 요시자토 부친의 죽음은 지병이 아니라 경질이 원인이라고도 한다. 요시자토의 부친의 직업은 아사히 신문 서부본사 사회부 부장이었으며 경시청 취재반 반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점들을 미루어 볼 때 일본 현지에서도 정치계의 중진, 거물 기업인이나 언론인 등에 의한 사건 개입, 시부야와 신주쿠 등지를 활동거점으로 삼던 요시자토가 자연스럽게 야쿠자와 같은 폭력 조직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조직에 의한 죽음을 맞이했다던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아무리 경찰이 손에 넣은 명부가 가명이라는 주장을 근거가 너무나 부실해 보이긴 하지만 일단은 믿어 준다는 정말 최저한도의 가정을 거치고 나서도, 상식 선에서 생각해 볼 때 수사를 계속 진행시킬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고 설사 그렇지 않고 아무리 가능성이 적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어야 했는데 1,000개 이상의 비디오 테이프와 2,000명 이상의 고객명부를 입수하고도 사건은 그냥 종결되었으며 매스컴의 보도방향도 갈피를 잃었다가 흐지부지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참의원 코노이케의 발언도 의미심장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이 시선에 따르면 초등학생 4명도 아직 혐의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초등학생 4명은 완전한 피해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요시자토의 충실한 부역자로서 다른 여학생들은 요시자토에게 알선해 주고 있다.[5] 일이나 사이가 어그러져서 납치로 번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소년법에 의해 중학생 이하의 범죄자들에 대한 신상보도 등은 강력히 억제되고 있으며 범죄 기록도 말소된다고 하며 인터넷상의 기록도 통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다룬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도 한 번 신문 기사의 무단전제를 이유로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초중학생들이 동급생들을 겁박해서 성범죄나 매춘 등에 연루시키는 일도 많았으며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과정에서 범죄자들이 이익을 본다고 한다.
[1] 풍문에 따르면 요시자토는 다른 여학생에게는 지폐다발을 흔들어 보이며 돈을 과시한 적도 있다고 한다.[2] 補導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말하자면 청소년 비행 등을 막고 여러모로 보호한다는 용어다.[3]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죽기를 결심했거나 어느 정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귀찮게 페라리 같은 걸 팔 이유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물건을 팔거나 기부하는 것은 자살하는 사람들이 자살하기 전에 보이는 행동이다.[4] 공식 발표 택시라고는 하는데...[5] 일각에서는 코노이케 참의원은 연줄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심코 흘린 발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