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비잔티움의 파우스투스 (라틴어: Faustus of Byzantium, 아르메니아어: Փաւստոս Բուզանդ)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아르메니아 역사가 |
[clearfix]
1. 개요
4세기 아르메니아 왕국의 역사가.2. 행적
5세기 후반의 역사가 라자르 파르페치는 자신의 역사서에서 아르메니아 역사를 앞서 다뤘던 비잔티움 출신의 파우스투스를 언급했다. 또한 파우스투스의 저서 <아르메니아 역사>의 첫번째 단어인 'Buzandaran patmutyunk'는 전통적으로 저자의 이름으로 여겨졌으며, 'Buzandaran'은 비잔티움의 파생어로 간주되었고 'patmutyunk'는 라틴식 이름 파우스투스의 방언으로 설명되었다.그러나 70년간 아르메니아 역사를 연구한 스테파노스 사르지 말하시안스(Stepanos Sargsi Malkhasiants, 1857~1947)와 20세기의 여성 아르메니아 역사가 아나히트 게오르기예브나 페리카니안(Anahit Georgievna Perikhanian, 1928~2012)은 Buzandaran은 이야기꾼을 의미하는 파르티아 단어 Bozand에서 파생되었으며, 'patmutyunk'는 이야기를 의미하는 아르메니아어 단어라고 주장했다. 즉, 'Buzandaran patmutyunk'는 저자의 이름이 아니라 역사적 이야기 모음집을 뜻한다는 것이다. 옥스포드 대학 교수를 역임한 역사가 로버트 톰슨은 비잔티움 출신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는 Buzandaran을 "비잔티움에서"로 잘못 해석되면서 생겨난 오해라며, 저자는 하자르 파르페치 이전에 활동했던 아르메니아 출신 역사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3. 아르메니아의 역사
파우스투스의 저서는 6권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첫 2권은 보존되지 않았다. 이 책들은 성경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까지의 기간을 다루는 "초기 역사"와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 3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일 때까지를 다루는 "중기 역사", 그리고 티리다테스 3세의 아들 호스로프 3세부터 387년 아르메니아가 사산 왕조와 로마 제국에 분할될 때까지를 다루는 "마지막 역사"로 나뉜다. 그는 저서에서 사산 왕조와 아르메니아의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아르메니아 장군 바체, 바삭, 무세흐, 만벨 등 마미코니안 가문의 스페라펫(총사령관)의 활약상을 중요하게 다뤘다.<아르메니아의 역사>는 엄밀한 역사 서술보다는 서사적 성격을 띈다. 현대 학자들은 이 저서에 기술된 내용의 신뢰성은 떨어지지만, 아르메니아의 반 페르시아 정서, 아르메니아 교회 역사, 사산 왕조 치하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아르메니아 구전 문화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 책은 필사본으로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1730년 이스탄불에서 처음 인쇄본으로서 출간되었다. 이후 베니스, 상트페테르부르크, 트빌리시에서 잇따라 출판되었고,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및 영어로 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