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 البليدة
베르베르어 ⵍⴻⴱⵍⵉⴷⴰ
영어, 프랑스어 Blida
1. 개요
랜드마크인 '군대 광장'의 풍경
알제리 북부의 도시. 알제에서 서남쪽으로 30km, 메데아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시 경계 내의 인구는 18만명이지만, 동쪽으로 연담 도시화된 울레드 야이쉬와 소우마까지 포함한 광역권 인구는 40만 정도로 사실상 알제리의 5대 도시 중 하나이다. 블리다는 아랍어로 도시라는 의미인 벨다의 축약형[1]이다. 동서로 펼쳐진 평원에는 크고 작은 강이 흐르기에 농업 생산력이 높고, 특히 오렌지 생산이 활발하여 4월만 되면 오렌지 꽃 향기로 가득찬다. 해발 200m의 평지에 위치했으나 주변에 물과 산이 많은 덕에 연중 기온이 5도 ~ 35도로 많이 덥지는 않다.
시가지는 셰라 산지 북쪽 기슭에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시내 동부에 위치한 무스타파 타샤케르 경기장은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이다. 그 옆에는 기계 공업과 가구 제조 등을 주력으로 하는 산업 단지가 있다. 시내 북부에는 블리다 공항이 자리한다. 동쪽 울레드 야이쉬에는 블리다 공군기지와 블리다 제1 대학이, 서쪽 12km 지점 알 아프룬에는 블리다 제2 대학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타셸히트 방언을 구사하는 베르베르인이다. 매년 아루비, 하우지 전통 음악제가 열리며 장미수[2]와 수공예 직물 등이 주요 특산물이다.
2. 역사
시디 아흐메드 영묘 | 19세기 말의 블리다 |
로마 시대 군사 기지가 있었으나 현재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16세기 시디 아흐메드 빈 유수프 엘 케비르가 12명의 안달루스 출신 이주민들과 함께 정착하여 와리다 (작은 장미)라 명명한 것이 도시의 직접적인 기원이다. 그들은 선진 기술로 일대의 불모지를 개간하여 농장과 과수원으로 바꾸었다. 얼마 후 알제 총독 하이르 앗 딘 바르바로사가 모스크를 세웠고, 오스만령 알제리 시기에 다르 엘 술탄에 속한 몇 안되는 내륙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1817년 역병으로 수백이 사망하였고, 1825년 3월에는 지진으로 기존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이에 그 1km 거리에 새 도시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둘다 시가지에 포함되었다. 오스만 시기 블리다는 6개의 문[3] 성벽으로 둘러져 있었으나 1867년에 재발한 지진과 이후의 시가지 확장으로 인해 사라졌다. 알제를 정복한지 9년만인 1839년 프랑스 군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후 군사기지가 되며 4개의 모스크 중 하나는 성당, 다른 하나는 병영으로 개조되었고 2개만이 무슬림 수중에 남았다. 프랑스 당국은 지진 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시가지를 근대식으로 재편하였고, 1950년 무렵 인구는 6만에 이르렀다. 독립 후 블리다는 수도 알제의 배후 도시로 성장하여 현재에 이른다.
3. 갤러리
시내의 옛 쿠란 학교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는 무스타파 타샤케르 경기장
3.1. 11월 1일 광장
1954년 11월 1일 민족해방전선 (FLN)의 독립 선언을 기념하는 11월 1일 광장
[1] 쿠트 (요새)와 쿠웨이트 (작은 요새), 칼브 (개)와 칼리브 (작은 개)와 같은 축약형[2] 도시의 별명이 와리다, 즉 작은 장미일 정도[3] 밥 엘 라바, 엣 자이르, 엘 쿠이카, 엣 셉트, 엘 자위아, 엘 크부르, 엘 크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