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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9 02:02:22

복부순



福富順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무주 시기에 활동한 무장. 698년 당시 직위는 우이공(嵎夷公)이었다.

북송 시기 편찬된 《신당서》 〈북적열전〉 돌궐편에 따르면, 복부순은 698년 9월 돌궐 묵철가한이 정주(定州), 조주(趙州)를 비롯한 하북 지역을 침공하자 기병총관(奇兵總管)에 임명되어 사타충의, 이다조 등과 함께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지나가는 곳마다 학살을 일삼던 돌궐군의 위세에 압도당해 끝내 진군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남송 시기의 학자인 나필(羅泌)이 지은 《노사》에 따르면 측천무후 시기(690년 ~ 705년)에 우이공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복순부(福順富)로 오기되어 있다.

2. 기타

중국 바이두 백과의 복성(福姓) 문서에서는 당나라 시기 복부순씨(福富順氏)와 복당씨(福當氏)가 단성화돼서 복씨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근거는 없다.

2.1. 백제와의 연관?

직접적으로 백제인이라는 언급은 없지만, 《일본서기》에서 백제 위덕왕 시기에 활동한 나솔 복부미신(福富味身)이라는 인물이 확인되기에 복부순이 백제계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학계의 백제사연구 동향(2018)〉[1]에 인용된 중국 학자 姜淸波의 〈唐代百濟姓氏“祝福順”與“扶餘”辨正(2012)〉에서는 복씨(福氏)가 당나라 대에 있었던 백제 성씨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만일 복부순이 백제 복부씨가 맞다면, 백제 유민일 가능성이 있으며 복부미신과 같은 성씨의 인물이 된다.

마침 복부순이 지냈다고 기록된 우이공의 우이(嵎夷)는 7세기 당시 당나라에서 백제를 일컫는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백제멸망전이 시작된 660년 3월 당 고종이 신라 태종 무열왕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에 임명했고,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설치한 웅진도독부의 산하에 우이현(嵎夷縣)이 있었다. 부여 관북리 출토 목간에도 우이(嵎夷)라는 묵서가 적혀 있으며, 백제 유민 예군(禰軍)의 묘지명에서는 그가 웅진 우이(嵎夷) 출신이라고 하였다. 즉 복부순이 우이공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그가 백제 출신임을 암시하는 자료로 해석된다.

다만 복부순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에 차후 연구가 더 필요하다.
[1] 동북아역사재단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