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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6-17 21:20:12

벨루두

파일:Caetano da Silva Nascimento.jpg
이름 카에타누 다시우바 나시멘투
(Caetano da Silva Nascimento)
생년월일 1930년 8월 7일
사망년월일 1979년 10월 26일 (향년 49세)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출신지 브라질 제1공화국 히우지자네이루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181cm | 78kg
소속팀 플루미넨시 FC (1949-1954)
나시오날 (1954-1955 / 임대)
플루미넨시 FC (1955-1956)
칸투 두히우 (1956-1957)
산투스 FC (1957-1958)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59-1960)
마두레이라 EC (1961-1962)
불명 (1963)
국가대표 8경기 (1954-1956)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어린 시절

벨루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생업에 종사해야 했다. 어린 카에타누는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이 어두운 거리를 달려 항구로 달려가야 했다. 그의 어머니 조아나는 근면한 여성이었고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이려 항상 애썼지만 단 한가지 조언만은 영 효력이 없었다. 바로 일요일에 너무 축구에 빠져 있으면 월요일에 일을 못하니 적당히 하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브라질의 주말에는 축구 경기가 빠질 수 없었고 일요일 아침에 아르만지뉴 카스타녜이라(Armandinho Castanheira)[2]가 부르면 아르모니아(Harmonia) 아마추어 클럽에서 축구를 즐기곤 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벨루두는 1947년, 아르만지뉴의 추천으로 플루미넨시 FC의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원래 처음 테스트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프레기뉴가 아르만지뉴에게 다시 테스트를 볼 것을 권했고 결국 합격했다. 그리고 2년 후 리저브팀으로 승격한 벨루두는 1군에까지 올라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당시 플루미넨시의 골문은 카스칠류가 지키고 있었다. 벨루두는 카스칠류가 1950년 월드컵에 참가한 사이에 데뷔전을 치렀고 카스칠류의 백업으로 주로 활동했다. 1954년에는 경기 중계권 불법 거래 혐의로 급여의 60%를 삭감당하는 불명예를 당하기도 했고 만취 상태로 경기장에 나오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로 인해 우루과이의 나시오날로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벨루두는 1949년부터 1956년까지 플루미넨시에서 113경기에 출전했고 1956년 12월, CR 플라멩구와의 라이벌전에서 당했던 1대6 대패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57년, 벨루두는 산투스 FC에 합류했다. 당시 산투스는 16세의 신성 펠레가 떠오르고 있는 팀이었고 그는 새로운 팀에서 주전 골키퍼 경쟁을 다시 펼쳤다. 나름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확실한 주전으로까지 고정되지는 못했고,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벨루두는 자신의 손으로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최종전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주인공으로서 우승 커리어를 차지했다.

2.2.2. 국가대표

벨루두는 1954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카스칠류, 지우마르[3], 카베상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그들을 모두 이기고 주전 자리를 따냈다. 당시 벨루두는 단 한 골만을 실점하며 브라질 대표팀을 스위스에 보냈고 특히 파라과이[4]와의 시합에서 보여준 선방은 그의 대표팀 커리어에서 하이라이트였다. 하지만 정작 본선 주전 자리는 카스칠류에게 돌아갔는데 같은 팀의 골키퍼를 두 명 뽑는 것은 상당히 드문 사례이다.

2.3. 이후

벨루두는 선수 시절에도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79년, 벨루두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악화된 당뇨병[5]으로 사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벨루두는 탄탄한 체격과 뛰어난 슈팅 방어 능력으로 현역 시절 브라질에서 최고급 골키퍼로 꼽혔다. 벨루두[6]라는 별명에 걸맞게, 공을 부드럽고 확실하게 잡아내는 우아하면서도 안정적인 캐칭 능력이 그의 전매특허였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tardesdepacaembu[2] 후에 심판으로 유명해지는 아르만두 마르케스가 바로 이 사람이다.[3] 지우마르는 부상으로 본선 합류가 좌절되었다.[4] 파라과이는 1년전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최종전 끝에 브라질로부터 우승컵을 빼앗은 팀이었다.[5] 사망을 앞뒀을 때 벨루두의 몸무게는 48kg으로 심각한 상태였다.[6] 사실 이 별명은 어린 시절 그의 피부가 부드러워서 붙은 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