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8-05 14:47:09

베른하르트 요페


베른하르트 요페 (Bernhard Jope : 1914년 5월 10일~1995년 7월 31일)

1. 서훈2. 요약3. 입대와 훈련4. 대함 공격의 귀신5. 대함 미사일의 선조6. 국방군 보고7. 전후

1.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 1939. 9. 27
1급 철십자 훈장 : 1940. 9. 12
기사철십자훈장 : 1940. 12. 30 (중위 진급)
독일 황금십자장 : 1942. 2. 5 (대위 진급)
백엽 기사철십자훈장 : 1944. 3. 24 (소령 진급)

2. 요약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공군에 근무하면서 폭격기 조종사로는 수상자가 매우 드문 백엽 기사철십자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베른하르트 요페는 공군 소속이었지만 독일 해군을 지원하는 포케불프 Fw 200 콘돌 중폭격기를 조종하면서 북해대서양을 누비며 여러 척의 연합군 함선을 격침시켰다. 1940년 10월에는 영국 해군에 병력 수송선으로 징발된 여객선 RMS 엠프레스 오브 브리튼 호에 폭탄을 명중시켜 항행 불능의 피해를 입혔다. 베른하르트 요페가 제100폭격항공단(KG 100)을 지휘하면서 이탈리아 해군의 전함 로마영국 해군의 전함 워스파이트, 순양함 우간다,그리고 미 해군의 USS 사바나 공격에 참가하며 연합군 함선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3. 입대와 훈련

독일 제국 시대인 1914년 5월 10일에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태어나 단치히 자유시에 있는 그단스크 기술대학(Königliche Technische Hochschule zu Danzig)을 마친 베른하르트는 1935년 4월 1일에 독일 공군에 입대했다. 사실, 소년 시절부터 글라이더 비행교육에서 두각을 보인 베른하르트는 공군에 입대하기 전에 이미 괴링에 의해 발탁되어 브라운슈바이크에 있는 독일 수송비행사학교(Deutsche Verkehrsfliegerschule)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단발기로 시작하여 쌍발기와 4발기까지 거의 모든 조종 훈련을 마친 상태였다.

4. 대함 공격의 귀신

독일 해군에 배속된 요페 소위는 Fw 200 콘도르를 타고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를 위해 북해에서 대서양까지 실험적인 작전에 참가하면서 임무 수행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1940년 10월 26일에 아일랜드 해안선을 따라가며 초계비행을 하던 그는 전속력으로 항진하고 있던 병력 수송선 엠프레스 오브 브리튼(RMS Empress of Britain)을 발견했다. 그는 43,000톤짜리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물 쪽으로 저공 비행하면서 1발의 250 kg 폭탄을 투하시켜 상갑판에 보기좋게 명중시켰다. 하지만 그 수송선은 워낙 커서 불이 붙은 채 연기를 맹렬하게 뿜으면서도 가던 길을 채촉할 뿐, 가라앉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재차 수평 폭격을 시도했지만, 요페가 투하한 2탄은 짙은 연기에 가려 빗나갔고, 선상에 설치된 대공포들이 요페의 크고 느린 콘돌 초계기에 집중되었다. 두번째 패스에서 기체가 경미한 피탄을 당했지만, 요페 소위는 개의치 않고 공격을 계속했다. 크게 빙 돌아 강하하면서 속도를 붙이며 세번째로 수송선 상공에서 2발의 폭탄을 떨구자 그중에 1발이 갑판에서 폭발하면서 현측 철판까지 찢어버렸고, 그 틈으로 해수가 유입되자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크게 파손되어 기운 이 배는 그후 이틀 후인 10월 28일에 한스 예니슈(Hans Jenisch : 1913~1982) 소령이 지휘하던 7형 유보트 U-32에 의해 완전히 격침되었다.

5. 대함 미사일의 선조

KG 100으로 옮겨가 근무하게 된 베른하르트는 1943년 9월 10일에 연합군에 항복하기 위하여 라스페치아에서 몰타를 향해 항해 중이던 이탈리아 해군 함대에 무차별 공격을 명령하고 임무를 직접 지휘했다. 무선유도 활공폭탄인 프리츠 X로 무장한 11대의 도르니어 Do 217 편대를 이끌면서 배수량 46,000톤의 리토리오급 전함 로마에 2발을 명중시켰다. 특히 2번 포탑 옆의 갑판을 뚫고 들어가 탄약고에서 폭발한 폭탄은 가득 실려있던 장약을 유폭시켰고, 1,600톤이 넘는 주포탑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며 선체를 거의 두 동강 내버렸다. 이 공격으로 인해 1,255명의 수병과 기함 로마에 타고 있던 카를로 벨가미니 제독은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이것은 사실상 해상전사를 통틀어 유도무기로 작전 중인 군함을 처음 격침시킨 초유의 사건으로, 베르하르트 요페는 2차 대전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로마의 자매함 리토리오(Littorio)에도 요기가 공격하여 1발의 프리츠 X가 명중했지만, 1번 주포탑을 그대로 관통하고 해저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그 구획만 폐쇄하면 대미지 컨트롤이 가능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몰타 항구에 도착한 리토리오는 더 이상 출격할 수 없었다.


이후 전투에서도 요페와 KG 100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대위로 승진한 베른하르트 요페는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2번함인 HMS 워스파이트와 11,000톤의 크라운 콜로니급 경순양함 HMS 우간다, 그리고 미 해군의 배수량 12,000톤짜리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USS 사바나에 프리츠 X를 또다시 명중시켰다.

요페는 이런 혁혁한 무공으로 말미암아 라디오 방송 뉴스와 극장에서 상영되는 독일주간뉴스(Die Deutsche Wochenschau)에 소개되었고, 4월에는 히틀러 총통에게 직접 소환되어 수 백대의 적기들을 격추시킨 공군의 쟁쟁한 에이스들과 함께 백엽 기사철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6. 국방군 보고

"Beim ersten Angriff auf den großen, stark geschützten Transportdampfer "Empress of Britain" zeichente sich die Besatzung eines Kampfflugzeuges unter Führung des Oberleutnants Jope besonders aus."

요페 중위가 지휘하는 폭격기 승무원들은 방어대형을 두텁게 짜고 항해하던 병력 수송선 엠프레스 오브 브리튼 호에 대하여 과감한 공격을 펼쳐 큰 피해를 입히는 전과를 거두었다. 1940년 10월 29일 화요일

7. 전후

독일이 항복한 후 얼마간 포로로 잡혀 수용소 생활을 한 베른하르트는 복역을 마치고 다시금 조종사로 취업할 수 있었다. 1953년에 재건된 루프트한자에 다시 들어간 그는 은퇴할 때까지 기장으로 근무했다. 서독 헤센주에 있는 작은 휴양 도시 쾨니히스타인 임 타우누스(Königstein im Taunus)로 물러나 안락한 노후를 즐기던 그는 1995년 7월 31일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