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횔첸바인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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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횔첸바인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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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前 축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베른트 횔첸바인 Bernd Hölzenbein | |
출생 | 1946년 3월 9일 연합군 점령하 독일 헤센주 데른 | |
사망 | 2024년 4월 15일 (향년 78세)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2cm | |
직업 | 축구선수 (공격수[1]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TuS 데른 (1956~1966/ 유스) E. 프랑크푸르트 (1966~1967 / 유스) E. 프랑크푸르트 (1967~1981)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 (1981~1982) 멤피스 아메리칸스 (1983~1984) 볼티모어 블래스트 (1985) FSV 잘름로어 (1986) |
기타 | E. 프랑크푸르트 (1988~1996 / 부회장) | |
국가대표 | 40경기 5골 (서독 / 1973~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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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전 축구 선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통산 최다 득점자이다.
2. 클럽 경력
2.1.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67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팀의 DFB-포칼 3회 우승과 UEFA컵 첫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당시 함께 활약했던 선수가 서독의 월드컵 우승을 함께 이끌었던 위르겐 그라보브스키와 오스트리아의 당대 최고 센터백 브루노 페차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갈색 폭격기' 차범근이었다.1981년까지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통산 420경기에 출장해 160골을 넣었으며, 득점 기록은 2024년 현재까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최다 기록이기도 하다.
2.2. 미국에서의 말년
14년간의 찬란했던 프랑크푸르트 생활을 마치고 그는 황혼기를 보내기 위해 1981년 NASL의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로 이적해, 이미 그 팀에서 뛰고 있던 게르트 뮐러와 함께 뛰었다. NASL 해체 후에는 메이저 인도어 사커 리그[2]의 멤피스 아메리칸스와 볼티모어 블래스트에서 활약하였으며, 1985년 독일로 돌아와 FSV 잘름로어에서 잠시 뛴 것을 마지막으로 18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쳤다.3. 국가대표 경력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1973년부터 1978년까지 40경기에서 5골을 넣었으며, 자국에서 열린 1974년 월드컵 우승, 1978년 월드컵 2라운드 진출에 공헌하였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197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전반에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팀의 월드컵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4. 은퇴 이후
1988년, 자신의 친정팀이었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부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990년대 초반에 안소니 예보아, 우베 바인, 안드레아스 묄러 등을 보강해 분데스리가에서 팀을 강호로 발돋움시켰다. 하지만 1991-92 시즌에 리그 우승을 놓치면서 연이은 성적 부진이 이어졌고, 1996년 팀의 2. 분데스리가 강등 책임을 지고 몇 개월 후 부회장에서 물러났다.5. 사망
2024년 4월 15일 저녁, 오랜 투병 끝에 사망하였다. 향년 78세. 최근 심각한 치매를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6. 기록
6.1. 대회 기록
-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