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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영안모자의 설립자다.2. 생애
2.1. 출생
1940년 4월 18일 만주국 무단장성(現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제의 압박을 피해 만주로 이주한 함경남도 출신 인물이었다. 해방 이후 고향인 함경남도로 이주했다.2.2. 전쟁 고아
6.25 전쟁이 터지자 월남했는데 이 즈음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됐다. 아무튼 1952년 전쟁 당시에 고아로 지내던 고아 백성학에게 데이비드 비티라는 미군 병사가 미군 기지로 백성학을 데려오면서 쑈리[1]로 일하게 돕고 영어를 가르쳐 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군으로 부터 날아온 포탄으로 인해 유류 창고가 화재가 나는 바람에 백성학은 전신에 화상을 입었으며 비티가 이걸 목격하고 불을 껐고 야전병원에 입원하게 도왔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연락이 끊겼으며 백성학 회장은 미국으로 출장을 나갈 때마다 현지 토크쇼에도 나오면서 데이비드 비티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1989년 필라델피아에서 가난하게 지내던 데이비드 비티와 재회하면서 백성학은 이때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냐고 물어봤지만 비티는 그저 살아 있어 주고 나를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둘의 우정은 비티가 2011년 영면에 들기 전까지 유지됐다.
3. 영안모자
이후 모자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을 배우다가 1959년 불과 19세의 나이에 그간 모은 돈으로 청계천에 영안모자를 설립했는데 이게 영안모자 그룹의 시작이었다.1959년 청계천에서 영안모자를 창립하면서 노점형태의 점포에서 휄트모자 70개로 시작했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성장하자 1960년 백성학 회장은 종로 4가로 노점을 옮겼으며 재봉틀 4대, 성형기 1대, 점원 1명, 공원 2명으로 확장했다. 여기서 국내 최초의 파나마모자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1966년 일본으로 첫 해외 수출을 개시했다. 1969년에는 영안모자상사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미국으로의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2]
1972년 'Young An'이라는 고유 라벨을 제작하고 모자에 부착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에는 경기도 부천으로 영안모자의 본사를 이전하면서 1984년에는 (주)영안모자를 설립했다. 1985년 첫 해외 수출을 시작하며 코스타리카에 공장을 설립하고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 국제 판매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에는 미국 판매 법인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NBA, MLB에도 납품하면서 마이클 조던이 우승 당시 영안모자에서 납품한 모자를 쓰기도 했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선정한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으며 전 세계 모자 시장 점유율 1위를 이룩한다.
4. 업적
영안모자를 세계적인 OEM 전문 기업으로 키워내면서 버스, 지게차, 목장, 사회 사업 등등 여러 가지 분야를 운영하고 있다.- 1986년 제주도 호명목장
- 1999년 숭의학원 인수.
- 2003년 자일대우버스[3] 인수.
- 2003년 클라크[4] 인수.
- 2006년 OBS[5] 설립.
- 2008년 백학재단 설립.
- 2008년 자일자동차[6]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