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원로이다.2. 생애
1934년 3월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출생했다.1946년 장안국민학교 6학년 때 동맹휴학에 참여했고, 1948년 동래중학교 재학 중에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에 참가하였다. 1949년에는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살포하려다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이후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에 진학했다.
1955년 민족문화협회에 참여했고, 1958년 부산대학교 4학년을 중퇴한 뒤 국제신문에 입사해 기자로 일했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도맹 간사장을 역임했고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1961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및 동 단체 경남지부, 2.8 한미경제협정반대 경남공동투쟁위원회 결성에 가담하였고 2대악법 반대 투쟁과 교원노조 합법화 투쟁에 참여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민주민족청년동맹과 민족자주통일협의회는 해체되었고 지명수배 명단에 올랐다가 1962년 해제되었다. 1964년 마산일보[1] 기자로 입사했으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2] 출소 후에는 부산에서 자영업을 했다.
1987년 자주평화통일부산회의 창립에 참여해 의장대행을 맡았고,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부산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하다가 1989년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6개월간 복역했다.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부산연합 상임의장을 지냈고 1995년에는 '부산땅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미군부대 기지 반환 운동을 전개하였다. 19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2000년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 겸 부산대표, 2001~2003년 부산교통공단 상임감사를 역임했다.
2010년 '겨레의길 민족광장'을 설립한 후 상임의장으로 취임하였고, 같은 해 김대중부산기념사업회를 창립한 후 2023년까지 이사장을 역임했다.
2024년 4월 13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