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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칼란 공국

방칼란 공국
Kadipaten Bangkalan
1624년–1885년
수도 방칼란
정치체제 군주제
언어 마두라어, 자바어
종교 이슬람교
민족 마두라인
멸망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

1. 개요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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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칼란 공국은 마두라섬 서부 방칼란군 지역에 존재하였던 인도네시아의 전통 국가였다. 방칼란 지역은 자바 중부 마타람 술탄국술탄 아궁이 17세기 전반에 공격하여 점령하고 마타람 산하 공작(adipati)이 통치하는 지역이 되었으나, 이후 자바의 정치 변동에 따라 반독립 상태가 되었다. 1740년대 자바 전쟁이 끝난 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 할양되어 공식적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편입되었다.

2. 역사

마두라 서부 방칼란 지역은 동부 수므늡 지역과는 달리 초기에는 자바와의 연계가 약했고, 마자파힛 말기인 16세기 초 키아이 프라타누(Kiai Pratanu, 1500?–1531 시점의 방칼란 영주)가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이룬 후에는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키아이 프라타누의 치세는 마두라섬에서 이슬람화가 시작되는 과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토메 피르스의 《동방지》(1512–1515)에 따르면 16세기 초까지도 아직 마두라인들은 이슬람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는데, 1527년 마자파힛의 멸망을 전후로 하여 마두라의 영주와 귀족 등 상류층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마두라 기록에 따르면 개종은 1528년부터 시작되었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 자바 중부의 마타람 술탄국이 자바 동부의 수라바야 공국과 긴 대립과 전쟁을 벌였는데, 방칼란과 수므늡은 최종적으로 수라바야의 동맹 세력에 속했다가 1624년 마타람의 술탄 아궁에게 정복되었다. 마타람에 종속된 방칼란 공작령(오늘날의 방칼란과 삼팡을 포함하는 마두라 서부를 영토로 함)의 공작 차크라닝랏 1세(Cakraningrat I, 재위 1624–1647)는 마타람의 충직한 신하로서 방칼란을 통치하다가, 1647년 마타람의 당시 수도 플레렛(Plered)에서 마타람 편에서 반란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아들 믈라야쿠수마(Raden Demang Melayakusuma)와 함께 전사하였다.

차크라닝랏 1세의 다른 아들 운다간(Raden Undagan)은 방칼란에서 차크라닝랏 2세(Cakraningrat II, 재위 1647–1707)로 즉위하였다. 차크라닝랏 2세의 치세 중반인 1674년, 방칼란 아로스바야(Arosbaya) 지역의 영주 트루나자야가 차크라닝랏 2세를 납치해 유폐하고 방칼란 신민의 지지를 얻어 스스로 서마두라의 군주를 칭하며 반마타람 봉기를 일으켰다. 마타람 내부의 여러 문제가 터져나오던 시기에 트루나자야는 연속으로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고, 1676년과 1677년에는 마타람군을 물리치고 마두라 (출신의) 왕(Panembahan Maduretna)으로 자칭했으며 1677년에는 심지어 마타람 수도 플레렛을 점령하기도 했다. 차크라닝랏 2세는 실권을 상실하고 이를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1679년에 트루나자야가 결국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개입으로 패퇴하고 항복한 후에는 동인도 회사의 지지를 얻어 간신히 방칼란 공작으로 복위하였다. 차크라닝랏 2세는 치세 후반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마타람의 약화에 따라 마타람의 계승 문제에 개입하여 마타람 정계에서 마두라 세력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차크라닝랏 2세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지지하는 푸그르 공(Pangeran Puger)이 제1차 자바 왕위 계승 전쟁(1704–1708)에서 아망쿠랏 3세(재위 1703–1704)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파쿠부워노 1세(재위 1704–1719)로 즉위하였다.

차크라닝랏 2세의 아들 차크라닝랏 3세(재위 1707–1718)의 치세에 마두라 서부(방칼란 공국)는 동인도 회사령으로 편입된 마두라 동부(수므늡 공국)와 달리 여전히 명목상으로는 마타람의 산하에 있었지만, 차크라닝랏 3세는 마타람 중앙 정권에 대해 지극히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차크라닝랏 3세는 동인도 회사와 마타람에 반항했던 운퉁 수라파티(Untung Surapati, 1660–1706)의 후계 세력들을 지원하였지만, 공개적으로 방칼란군을 동원해 마타람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다. 차크라닝랏 3세는 1718년 1월 동인도 회사 소유의 배에서 오해로 인해 벌어진 싸움에서 살해되었다. 사후 방칼란의 공위는 차크라닝랏 3세의 동생 차크라닝랏 4세가 계승하였다.

차크라닝랏 4세(재위 1718–1745)의 치세에, 제2차 자바 왕위 계승 전쟁(1719–1723)을 겪은 후 1720년대의 마타람은 약화되어 방칼란에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었고, 방칼란은 동인도 회사와 직접 협상하며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기능하였다. 마타람의 파쿠부워노 2세가 동인도 회사와 반목하고 화인들과 연합하여 자바 전쟁(1741–1743)이 일어나자, 차크라닝랏 4세는 동인도 회사와 연합하여 자바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자바 전쟁 중인 1742년 초부터 파쿠부워노 2세는 방칼란과 네덜란드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는 하였지만, 차크라닝랏 4세는 믿을 수 없는 파쿠부워노 2세를 처형하라고 동인도 회사에 조언하였다.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42년 12월에는 마타람 내부의 반란군(수난 쿠닝Sunan Kuning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방칼란–네덜란드 연합군이 마타람의 수도 카르타수라를 점령하기도 했다.

자바 전쟁이 끝난 1743년, 차크라닝랏 4세는 참전의 대가로 자바 동부의 많은 이권을 요구하였지만 동인도 회사는 방칼란 세력의 견제를 위해 이를 거부하였다. 불만을 품은 차크라닝랏 4세가 수라바야의 영주를 지원하여 동인도 회사에 대한 자바 동부의 채무 지불을 중단시키자, 동인도 회사는 1745년 2월 차크라닝랏 4세를 반란자로 규정하고 폐위하려 하였다. 차크라닝랏 4세는 전쟁을 일으켜 마두라 동부, 자바 동부, 자바 북부 일부를 점령하였으나, 결국 동인도 회사에 패배하고 체포되어 1746년 남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유배되었다. 동인도 회사에 의해 차크라닝랏 4세의 아들이 차크라닝랏 5세(재위 1745–1770)로 즉위하고 전쟁이 끝난 후 방칼란은 약화되어 더 이상 네덜란드에 반항하지 않았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일개 지방 공국으로 존속하였다.

네덜란드 세력은 19세기 중반까지 수므늡처럼 방칼란 지역에서 직할 통치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19세기 후반 동인도의 자치 지역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1885년 방칼란 공국을 폐지하였고, 방칼란은 군(regentschap, kaboepaten)으로서 식민 정부 직할령이 되었다. 공국이 폐지된 후에는 식민지 시대가 끝날 때까지 구 방칼란 공국의 공족이 계속해서 군수직을 승계하였으며, 이 전통은 신생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도 차크라닝랏 13세(군수 재직 1948–1956)와 무하맛 루슬란(R. A. Muhammad Ruslan, 군수 재직 1956–1957)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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