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러브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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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필 잭슨 (Phil Jackson) | 제리 크라우스 (Jerry Krause) | 자니 커 (Johnny Ker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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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001f> 시카고 불스 No. 10 | |
<colcolor=#fff> 로버트 얼 "버터빈" 러브 Robert Earl "Butterbean" Love | |
출생 | 1942년 12월 8일 |
루이지애나주 배스트롭 | |
사망 | 2024년 11월 18일 (향년 81세) |
일리노이주 시카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
출신학교 | 서던 대학교 |
드래프트 | 1965 NBA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33번 신시내티 로열스 지명 |
소속팀 | 트렌턴 콜로니얼즈 (1965~1966) 신시내티 로열스 (1966~1968) 밀워키 벅스 (1968) 시카고 불스 (1968~1976) 뉴욕 네츠 (1976~1977) 시애틀 슈퍼소닉스 (1977) |
등번호 | 9번 / 10번 / 21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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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 왼손과 오른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던 드문 선수로 제리 슬로언과 함께 시카고 불스의 70년대를 책임졌던 포워드였다.2. 생애
1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집안이 워낙 가난해서 차별 등으로 괴로움에 시달렸지만, 다행히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 하지만 농구에 필요할 도구를 살 돈이 없어 옷걸이로 바구니를 만들고, 양말을 말아 공을 만들며 놀기도 했다.모어하우스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쿼터백이었으며 신체적 능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며 우승으로 이끈 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서던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65년 NBA 드래프트에서 신시내티 로열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무명학교 출신이라 4라운드 33순위라는 어마어마하게 낮은 픽이었기에 계약에 이르지 못하고 1965-66시즌을 독립리그인 트렌턴 콜로니얼스와 계약했다. 그래도 한 시즌 동안 평균 25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했고, 충분한 실적을 바탕으로 신시내티 로열스와 연봉 8000달러의 계약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로열스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1968-69 시즌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밀워키 벅스로 이적해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나 이를 살리지 못하고 시즌 중반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된다.
딕 모타가 감독으로 부임한 1969-70시즌에는 82경기를 모두 출전해 커리어 하이 평균 21.0점 8.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 득점원으로 성장했다.
1971-72시즌에는 제리 슬로언, 쳇 워커 등과 함께 당시 프랜차이즈 기록인 57승을 거두었으며, 커리어 하이인 25.8득점을 기록하며 올NBA와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다.
1974-75시즌에는 공격과 수비 양면을 갖춘 에이스로 활약하며 동부 컨퍼런스 1위까지 이끌었지만 파이널까지는 다다르지 못했고 말년에 들어선 1975-76 시즌부터 경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1976-77시즌 초반 9시즌을 보낸 불스를 떠나 뉴욕 네츠,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1시즌을 보내다가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불스 프런트에 고용되어 시카고로 돌아왔다.
러브의 등번호 10번은 불스를 떠난 이후 몇 명의 선수들이 달았다가 1994년 1월 14일에 영구결번되었으며 이후에도 B.J. 암스트롱이 1994-95시즌까지 달고 활약했다.
이후 암으로 투병을 이어 오다가 2024년 11월 18일에 사망하였다.
3. 여담
- 미식축구 시절 힘든 일을 겪었다. 당시 미식축구 코치는 러브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 영양실조로 쓰러져 용돈으로 밥을 사주기도 했고, 말더듬이 심해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자 노래 연습을 시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