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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1:36:36

박직윤


<colcolor=#fff><colbgcolor=#191970> 대모달읍장
박지윤
출생 미상
사망 미상 (향년 불명)
자칭 대모달읍장(大毛達邑長)
본관 평산 박씨(平山 朴氏)
이름 직윤(直胤)
아버지 적오(赤烏, 積古)
자녀 아들 박지윤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 후손 박경산(朴景山: 1081~1158)의 묘지명(墓誌銘)에서 등장한다.

2. 생애

아버지는 찰산후(察山侯) 박적오(朴赤烏, 朴積古)다. 본래 북경도위(北京都尉)[1]였던 박적오는 신라 죽주(竹州)로 이주해 찰산후(察山侯)가 되었다.

신라가 쇠락하자 박적오의 박직윤은 평주(平州: 현 황해도 평산군)로 이주했는데[2], 팔심호(八心戶)를 다스리며 스스로 대모달읍장(大毛達邑長)을 자처했다.[3]

박직윤이 평주에 자리잡은 이후 그의 후손들은 평주 사람이 되었는데, 아들 박지윤(고려)과 손자 박수문, 박수경(? - 964년)이 왕건에게 출사해 공을 세웠고 왕건이 박지윤의 딸 성무부인(聖茂夫人) 박씨와 혼인하면서 외척 집안이기도 했다.

3. 기타

박경인묘지명에서는 박직윤에 대한 언급이 없고, 그의 아버지 박적오가 평주로 이주해 십곡성(十谷城) 등 13개의 성을 설치하고 궁예에게 귀의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같은 평산 박씨인 박경산 묘지명에 의하면 박적오가 아닌 박직윤이 평주로 이주했고, 박직윤부터 평주 사람이 되었다는 서술로 보아 박경인묘지명에서 십곡성 등 13개성을 쌓고 궁예에게 귀부한 행적은 박직윤의 행적일 가능성이 높다.

[1] 직책상 신라 5소경 중 북원소경(오늘날 원주)에 있었던 걸로 보인다.[2] 신라가 설치한 군진 패강진의 치소가 평산군에 위치했는데, 박직윤은 패강진의 군사력을 흡수해 호족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3] 대모달은 고구려의 무관직으로 '막하라수지(莫何邏繡支)', '대당주(大幢主)'라고도 하는데 그가 대모달읍장을 자처한 것은 패서 지역에 거주한 고구려 유민들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