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1939년[1] | ||
경기도 파주군 (現 경기도 파주시) | |||
사망 | 2024년 8월 21일 (향년 85세) | ||
재임기간 | 대법관 (윤관 대법원장 제청 / 김영삼 대통령 임명) | ||
1993년 10월 11일 ~ 1999년 10월 10일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005596><colcolor=#fff> 가족 | 슬하 3녀(박원경·박영희·박은정) | |
학력 | 문산초등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 ||
약력 | 제15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동부지원장 청주지법원장 서울조정센터장 대법원 대법관 (1993.10. ~ 1999.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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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2. 생애
1939년[2]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15회)에 합격한 후 판사의 길을 걸었다.1981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1991년 서울지법 동부지원장, 1993년 청주지방법원장을 거쳐 1993~1999년 대법관을 지냈다.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때는 초창기 손해배상 전담재판부를 맡아 기반을 닦았고 서울동부지원장 재직 중 피의자 인권 옹호를 위해 관행적으로 허용했던 기자들의 영장 열람을 거부해 언론과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판사 시절 법원의 공식연구모임 중 하나인 민사실무연구회 회장을 지내는 등 법조계에서 민사소송 실무의 대가로 손꼽혔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초대 서울지법 조정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민사조정제도 정착에 기여했다.
2024년 8월 21일 오전 10시 30분, 향년 85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