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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2:37:57

박장봉

성명 박장봉(朴章奉)
생몰 1881년 ~ 1910년 6월 2일
출생지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백토지리
사망지 광주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장봉은 1881년생이며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백토지리 출신이다. 그는 이강산이 1909년 7월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함평군 대야면에서 동지를 모집하자 서성학, 정인술, 박치일, 양창국 등과 함께 가담했다. 이후 그는 이강산의 지휘를 받으며 1909년 8월 29일 함평 등지에서 적과 교전한 후 나주 헌병 분견소 구밀파견소의 밀정 이판안(李判安)·김정태(金正泰)·최치도(崔致道)·박복남(朴福男)이 그곳 이양삼(李良三)의 집에 온 것을 탐지했다.

이들은 평소에 의병활동을 방해해오던 인물로서 반민족분자로 지목되어 있었다. 이강산은 이들이 주막에 모여 있는 것을 탐지하고 박장봉을 비롯하여 박치일·정인술·서성학 외 2인에게 작전을 지시하였고, 이들이 주막에 이르렀을 때, 마침 양창국(梁昌國)과 박병수(朴丙洙)가 그 곳에 와 있었으므로 이들도 동참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렇게 의견이 일치된 8사람이 협력하여 이판안·김정태·최치도를 현장에서 살해하고 박복남을 산중으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박장봉은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모살죄로 교수형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고, 1910년 6월 2일 광주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박장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