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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20:10:30

박완일

1. 개요2. 생애 및 활동
2.1. 주요 강의 제목 및 장소, 상대 등
2.1.1. 나는 누구인가(1986년)2.1.2. 나도 한마디2.1.3. 그 외
2.2. 정치 활동
3. 여담4. 어록

朴完一
1935년 8월 29일 (음력8월1일) ~ 2018년 10월 26일 (향년 83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육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2. 생애 및 활동

1935년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났다.

정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승려로 출가하여 효봉을 은사로 하였다가 4년만에 환속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재학 중이던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였다. 1961년 5월 18일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져서, 결국 체포되어 수감된 이력이 있다.

1970년대 이후 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근무하는 한편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불교신도회[1]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후 특정 단체의 요청이 있으면 찾아가서 강의를 해줬다. 이로 인해, 강의 내용이 담긴 음반도 출시되기도 했다.

2.1. 주요 강의 제목 및 장소, 상대 등

2.1.1. 나는 누구인가(1986년)

2.1.2. 나도 한마디

2.1.3. 그 외

2.2. 정치 활동

1983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재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원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레퍼토리 중 하나가 벼슬이라곤 동 소개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3. 여담

그의 강의 내용에 담긴 테이프를 청취하여 확인한 것이 많다.

4. 어록



[1] 1967년에 김성곤, 이후락과 함께 결성했고 재계인사 100여명이 이사로 지냈다.[2] 대한항공의 ICAO부호이자 3자 이니셜이고, 고니 상표를 썼을때 표기했다.[3] 당시 롯데그룹 회장[4] 돌아온 답변으로는, 평소에는 1500도, 고기압 때엔 2000도까지 도달한다고 했다.[5] 그것도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상태라고 했다. 잠이 들어놓으니까, 남편 사망을 잊어버린채 꿈속에서 동창들과 더불어 말이다. 이렇게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