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569><colcolor=#ffffff> 엔씨소프트 Co-CEO 박병무 朴炳武|Park Byung-moo | |
출생 | 1961년 6월 23일 ([age(1961-06-23)]세) 경상북도 경산군 |
학력 | 남대문중학교 (졸업) 대일고등학교[1]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수석 졸업)[2]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수료)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수료)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졸업) |
병역 | 대한민국 해군 군법무관 (전역) |
경력 | 제24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제15기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3] 대표이사 뉴브리지 캐피탈 코리아[4] 대표이사 하나로텔레콤[5] 대표이사 VIG파트너스[6] 대표이사 現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
가족 | 부모 박동정[7], 이영숙 형제자매 박영미, 박병완[8] 배우자 윤영신[9] 자녀 1남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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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기업인.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기업 인수·합병(M&A)팀을 이끌었고, 최근까지 사모펀드 대표로 재직하는 등 '기업사냥' 및 '구조조정' 전문가이다.
최근 엔씨소프트가 경영위기에 빠지자 구조조정 단행을 위해 엔씨소프트 창사 이래 첫 공동대표로 영입되었다.
2. 생애
본적은 경북 경산이고 아주 어렸을 때 대구에서 잠깐 살다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외가 쪽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어머니만 6.25때 단신으로 내려왔는데 공부보다는 바이올린이나 수영이나 보이스카우트 활동 등을 권했다고.
중학교 시절 학생회장이었는데 옆 학교 학생이 친구들을 많이 괴롭히길래 몰려가서 혼을 내줬다가 패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서울대 수석 입학 후 언론 인터뷰에서 과외 받았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는데 당시 전두환 정권은 사회적 문제였던 과외를 없애겠다는 정책을 내건 상태였기에 한국전력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아버지가 3년간 재취업을 못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워졌고 미안해서 '죽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사시 최연소 합격을 이뤄냈다고
학업 성적에 대한 자긍심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같은 법대에서 만난 아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잘 도와줬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민주화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기에 저항심이 들기도 했고 외가 어른들이 북쪽에 남아계시기도 해서 판사나 검사가 아닌 변호사로 시작했다.
1996년 신원이라는 회사가 제일백화점을 인수하기 위해 제일물산 주식을 사들이는 적대적 M&A에 우연히 참여했는데 당시 시가 150억원밖에 안 되는 제일물산 주식을 사들여 400억원 가량인 제일백화점을 얻는 것을 보고 M&A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3. 약력
1980 서울대학교 전체 수석입학1982 사법시험 제24회(연수원 15기)
1984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수석졸업
1985 대법원장상 수상
1988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1989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석사
1994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졸업
1985 ~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
1995 ~ 현재 미국 뉴욕주 변호사
1989 ~ 2000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00 ~ 2003 로커스 홀딩스(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2003 ~ 2006 뉴브리지 캐피탈 코리아 대표이사
2006 ~ 2008 하나로텔레콤 대표이사
2008 ~ 2010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10 ~ 2014 보고 캐피탈어드바이저 대표이사
2012 ~ 2023 VIG파트너스(보고 인베스트먼트그룹) 대표이사
2024 ~ 현재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2005 ~ 2006 하나로텔레콤 경영위원회 의장
2005 ~ 2008 메트라이프생명 사외이사
2007 ~ 2013 엔씨소프트 사외이사
2011 ~ 2012 코오롱생명과학 사외이사
2013 ~ 2015 동양생명 경영위원회 의장
2013 ~ 2024 엔씨소프트 이사 및 감사위원
4. 평가
서울법대 수석입학,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수석졸업 등 비현실적인 경력으로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신화적인 인물.경영학에 관심이 있었으나 큰아버지가 법대를 나와 고시를 안보고 정치를 했는데, 아버지가 법대를 나오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M&A 전문가로 통하며 '기업 사냥'이 주특기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M&A의 달인 또는 미다스의 손이라고도 부른다.
95년이후 제일물산 OB맥주 미도파 등을 놓고 빚어진 한국내 ‘적대적’ M&A 사례 10여건을 도맡아 처리했고 한화종금의 적대적 M&A 때 방어수단으로 사모전환사채를 소개하기도 하며 ‘기업사냥터의 중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장 법률사무소 M&A 파트에서 일하면서 대상(옛 미원)의 라이신(사료첨가 발육물질) 사업부 매각(인수자 독일계 바스프), 미국계 사모펀드 H&Q의 쌍용증권 인수,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 한일·상업은행 합병, 동방페리그린의 미도파 인수, 한화종금 경영권 다툼…. 외환위기를 앞뒤로 터져나온 대형 인수·합병건은 거의 다 그의 손을 거쳤다.
제일은행 인수 협상 당시 한국은 외자가 너무 부족했고 IMF에서는 부실한 시중은행을 외국 자본에 팔 것을 정부측에 조건으로 걸었는데 이 협상이 IMF와 정부가 합의한 대로 결과가 나와야 좋은 케이스가 되어 외국 자본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투자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봤고 매각이 성사되면서 한국 정부의 신용등급이 상당히 올라가기도 했다.
2000년 시가 총액이 1조원에 달했던 로커스라는 IT회사의 대주주가 중학교 동창의 추천을 받아 지주회사인 로커스 홀딩스 대표 자리를 제안했고 수락 후 당시 인기그룹 지오디(god) 소속사였던 싸이더스를 비롯해 시네마서비스, 예진미디어, 넷마블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로커스홀딩스를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탈바꿈시켰으며 플레너스로 사명을 변경한 로커스홀딩스는 후에 CJ 인터넷을 거쳐 CJ E&M에 편입된다.
2003년부터 미국계 펀드 뉴브리지캐피탈의 국내 법인인 뉴브리지캐피탈 코리아 사장을 역임하면서 제일은행 인수 등 굵직한 기업 M&A를 다수 성사시켰다. 이 중 하나가 AIG와 콘소시엄을 맺고 주당 3200원에 사들인 하나로텔레콤이다.
2005년까지 성사시킨 M&A는 45건에 이른다.
2010년 보고펀드(현 VIG파트너스) 대표이사에 올라 이스타항공, 프리드라이프, 쿤달, 스마트스코어, 동양생명, BC카드, 아이리버, 버거킹, 바디프랜드 등 17개 기업의 인수합병을 성공시키며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엔씨와 넥슨간 경영권 분쟁 당시 VIG파트너스가 우군으로 합류했고 방준혁 의장과의 연을 바탕으로 엔씨와 넷마블 동맹 구축에 기여, 갈등 해소에 앞장섰다.
2022년 기준 그가 대표를 역임한 사모펀드 운용사 VIG 파트너스가 인수한 26개 기업 중엔 인원을 구조조정한 사례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바디프렌드와 버거킹 등 기업은 일자리 창출 공로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장관 표창을 받은 바 있다.
5. 비판 및 논란
'젊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대 환경에 처해 있지만 진취적으로 생각했으면 한다며 과실을 다 같이 나누는 사회주의적 색채가 있는 기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발언하였으나 그는 평생 정반대의 길만을 걷고 있다. 언행불일치의 정석하나로텔레콤이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600만 명의 고객 개인정보를 전국 수백 여 곳의 텔레마케팅 업체에 불법으로 제공한 사실이 확인되어 해당 기간 재임했던 하나로텔레콤 박병무 전 대표이사를 비롯해 전현직 간부 22명이 형사 입건되었다. 기사
6. 여담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지만 중학시절 새벽 3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땐 장위동에서 학교가 있던 미아3거리까지 1시간 이상 걸어서 등교하기도 했다.‘기업중심적 사고’에 대한 가장 큰 비판자는 서울대 법대 2년 후배인 아내 윤영신 교수라며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열었을 때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고.
점심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두세차례 사무실 부근 헬스클럽을 찾는다.
토요일 오후면 배낭하나 짊어지고 ‘나홀로 북한산행’을 떠나는 것이 취미.
너무 바빠 신문 잡지 TV시청을 제대로 못할 정도여서 스스로 ‘세상 따라잡기’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
자녀들과 함께 일요일을 보내기 위해 한동안 골프를 중단했었다.
변호사 마치고 기업에 들어온 이후에는 1년 2~3번은 꼭 가족과 여행을 가려고 노력하며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보고 자라서 가족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정치권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과연 내가 국민을 대리할 자격이 있을까. 나에게 그런 공감 능력이나 열정이 있을까. 그리고 비교적 무난하게 어려움 없이 자라온 내가 다양한 계급과 어려운 계층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고 외국 자본이나 기업을 대리한 일들 때문에 공격받기 참 좋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어서 거절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술을 즐기는 것으로 풀기도 하고,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가기도 하며 그래도 안되면 클래식 음악을 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