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朴魯恒1951년 5월 10일[1] ~ ([age(1951-05-10)]세)
병역비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자 병역비리의 상징.
2. 생애
대한민국 육군 헌병 원사 출신의 전직 군인으로 1969년 육군 이등병으로 입대한 후 이듬해 하사관을 지원해 하사관학교에 하사관후보생으로 입교했고 양성교육훈련, 평가를 거쳐 헌병 하사로 임관했다. 27년 동안 헌병 수사관으로 복무하였으며 원사까지 진급했다.이후 국군수도병원 및 병무청 파견 수사관 병역판정검사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병역면제, KATUSA 선발, 보직 조작, 특기병 선발조작, 의병 제대 등 거의 모든 유형의 병역비리에 말려들었다.
더군다나 그는 서울 영등포 신화병원과 짜고 조직적으로 병역면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2000년 3월 밝혀졌다. 신화병원의 방사선과에 근무하던 박○○씨는 그와 짜고 몸에 이상이 없는 병역의무자의 CT 필름을 허리디스크 환자의 것과 수십차례 바꿔치기하고 대가를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였으며 당시 육군본부 모병연락관 원용수 헌병 준위, 논산 제2훈련소 부관처장 정호철 육군 부관대령, 한미연합군사령부 소속 소령 1명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고 종적을 감추었던 그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신화병원의 원장 이○○씨는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주는 등 병역비리에 가담하고 그의 도피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절친하게 지내면서 병역 브로커로 활동하던 승려 함월이 2000년 3월 검거되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그는 도망다녔다. 그는 병역비리 혐의로 전국에 수배되었는데 검찰은 그의 가족들의 뒷조사를 하던 중 그의 누나가 수상한 행동을 하자 그의 누나를 대상으로 밀착감시를 실시해서 수배한 지 3년 만인 2001년 4월 그를 검거했는데 검거된 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용산의 대한민국 국방부 청사에서 매우 가까운 아파트여서 등잔밑이 어둡다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6개월 뒤인 2001년 10월 징역 20년이 선고되었다. 2002년 2심 (구)국방부 고등군사법원[2]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양형 부당으로 파기 환송 후 2심에서 징역 15년에 벌금 10억 4,700만원이 선고되었고 다시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징역형은 구속된 날짜로부터 확정된 기간을 산입하므로 이미 2016년 4월에 출소하여 지금은 자유인이다. 게다가 추징금이 수수한 금액에 비해 거의 1/10에 불과했으니 노후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하다.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법은 부정수수한 돈에 대한 전면 추징 사례가 드물다.
여담으로 1999년 KBS 2TV 공개수배 사건 25시의 유전면제 무전입대에서 前 강남구청 병무계장인 최○○[3]과 같이 혐의자로 수배되었다.
3. 관련 문서
[1] 1분 45초 참고.[2] 2022년 7월 1일부터 2심 군 형사사건은 서울고등법원 군형사부에서 담당한다.[3] 공개수배 사건 25시 종영 이후인 2001년 6월 30일에 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