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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5 09:31:06

바츨라프 2세(보헤미아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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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보헤미아 프르셰미슬 왕조 23대 공작
바츨라프 2세
Václav II
제호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바츨라프 2세
(Václav II)
출생 1137년
사망 1192년 이후 (향년 55세 이상)
재위 보헤미아 공국의 공작
1191년 ~ 1192년
형제 블라디슬라프, 마리 체스카, 소베슬라프 2세, 올드르지흐
아버지 소베슬라프 1세
어머니 아들레타 아르파도브나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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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헤미아 공국 프르셰미슬 왕조 23대 공작.

2. 행적

1137년경 보헤미아 공작 소베슬라프 1세와 헝가리 왕자 알모스의 딸인 아들레타 아르파도브나의 막내아들로 출생했다. 형제자매로 블라디슬라프, 마리 체스카, 소베슬라프 2세, 올드르지흐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지만,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172년 보헤미아 국왕 블라디슬라프 2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장남 베드르지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해 수도사가 되자, 형제 올드르지흐와 함께 프리드리히 1세를 찾아가 황제의 승인 없이 계승이 이뤄졌으니 조치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프리드리히 1세는 자신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보헤미아 왕위 계승이 이뤄졌다는 소식에 진노해 1173년 9월 베드르지흐에게 소환령을 내렸고, 베드르지흐는 감히 황제에 대적할 엄두를 못내고 이에 응했다. 그 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소베슬라프 2세가 풀려난 뒤 보헤미아 공작에 선임되었고, 그는 공적을 인정받아 모라비아에서 영지를 수여받았다.

1178년 소베슬라프 2세가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드 5세와 즈노이모 공작 콘라드 2세의 지원을 받은 베드르지흐에게 패배해 헝가리로 망명했을 때 따라갔고, 1184년 베드르지흐에게 반기를 든 보헤미아 귀족들의 요청에 응해 보헤미아로 진군해 프라하를 공략하려 했지만 베드르지흐의 아내 에르제베트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인해 공략에 실패했다. 이후 베드르지흐가 독일에서 용병대를 고용한 뒤 귀족들을 모조리 복종시켰을 때, 그 역시 굴복하고 베드르지흐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1189년 베드르지흐가 사망한 뒤 보헤미아 공작이 된 콘라드 2세와 친분을 두텁게 다졌고, 브르노 공작 스피티네프 브르넨스키와 동맹을 맺었다. 1191년 9월 9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를 따라 나폴리 공방전에 참여했던 콘라드 2세가 페스트에 걸려 사망하자, 보헤미아 새 공작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프라하 주교 인드르지흐 브르제티슬라프가 그가 보헤미아 공작이 된 것에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1192년 1월 하인리히 6세를 찾아가 블라디슬라프 2세의 아들인 오타카르 1세를 보헤미아 공작으로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하인리히 6세는 6,000 그리브냐 은화를 제공하겠다는 오타카르 1세의 약속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오타카르 1세를 보헤미아 공작, 오타카르 1세의 형제인 블라디슬라프 인드르지흐를 모라비아 변경백에 선임하기로 했다. 이후 오타카르 1세가 독일에서 용병대를 고용한 뒤 쳐들어오자, 바츨라프 2세는 프라하에서 몇달 동안 항전했지만 보헤미아 귀족들이 전부 오타카르 1세에게 귀순하자 결국 1192년 초 항복하고 자신을 도왔던 스피티네프와 함께 망명했다. 그러나 둘 다 도중에 오타카르 1세의 처남인 마이센 변경백 알브레히트 1세에게 체포되었다. 스피티네프는 감옥을 성공적으로 탈출했지만, 그는 더 이상의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러지 못하고 옥사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