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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11:18:23

바실리오스(트라페준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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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바실리오스(트라페준타 제국).jpg
이름 바실리오스 메가스 콤니노스
(영어: Basil Megas Komnenos, 그리스어: Βασίλειος Μέγας Κομνηνός)
출생 미상
사망 1340년 4월 6일
직위 트라페준타 제국 황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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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라페준타 제국 제12대 황제.

2. 생애

트라페준타 제9대 황제 알렉시오스 2세와 이베리아 공주 치차크 자켈리의 아들이다. 1330년 5월 3일 부친이 사망한 후, 큰형인 안드로니코스 3세가 황위에 올랐다. 그는 동생들을 정적으로 여겨 두 동생인 게오르기오스와 미하일을 죽여버렸다. 이에 바실리오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달아나 숨어 지냈다. 1332년 1월 8일 안드로니코스 3세가 사망한 후, 안드로니코스의 사생아마누일 2세가 황위에 올랐다.

1332년 9월 22일 트라페준타로 돌아온 뒤 마누일을 폐위하여 수도원으로 보내고 새 황제로 즉위했다. 이후 마누일의 지지자들을 대거 처형했지만, 마누일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살려줬다. 그러나 1333년 2월 메가스 둑스 요안니스가 마누일을 복위시키려다 발각된 일이 벌어지자, 바실리오스는 9살밖에 안 된 조카를 처형했다. 이후 자신을 옹립한 트라페준타 귀족들에 영지를 나눠줬으나, 그들이 영지에서 권력을 남용하는 바람에 신민들의 원성을 샀다. 또한 친위대이자 수도 방위대인 스콜라리 역시 외국인 용병에게 의지하려 드는 그에게 불만을 품었다. 시민들은 바실리오스를 매우 싫어해, 일식이 일어났을 때 신이 노했다고 여기고 황제에게 돌을 던져서 성채로 피신하게 하였다.

그는 입지를 다지기 위해 1335년 동로마 제국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의 사생아인 이리니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내 이리니라는 동명이인의 정부를 두고 4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이리니 팔레올로기나는 이런 남편에게 앙심을 품고, 1340년 4월 6일 독살한 뒤 여제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