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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 벅스/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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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

1. 개요

밀워키 벅스의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관련 내용임. 아래 문단에 기재된 내용은 밀워키 벅스 문서의 개정 제598판 '2.6. 레드와 보것의 시대, 리빌딩의 시대' 항목이며 과거 내용인 관계로 별도 분리함.

2. 내용

2003년 오프시즌 때 콜 구단주는 워싱턴 위저즈로 떠난 그룬필드를 대신해 래리 해리스[1] 부단장을 단장으로 승격시켰고, 뒤이어 조지 칼 감독을 자른 뒤 새크라멘토 킹스 코치였던 테리 포터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드래프트에선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출신 T.J. 포드를 전체 8번으로 뽑은 뒤, 트레이드 시장에서 샘 카셀 및 어빙 존슨을 미네소타의 앤써니 필러 및 조 스미스와 맞바꾸고 페이튼을 FA로 풀어 레이커스로 떠나보내는 등 레드를 중심으로 팀을 젊게 개편했다. 정규시즌 때 레드가 손목을 꺾는 특유의 3점 슛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는가 하면 포드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5할을 유지했고, 2004년 2월에는 뉴욕 닉스 및 애틀랜타 호크스와 3각 트레이드를 벌여 팀 토마스를 뉴욕 닉스의 키스 밴혼과 맞바꾸고, 프리즈빌라를 애틀랜타로 팔았다. 최종적으로 41승 41패로 컨퍼런스 4위 / 디비전 6위를 찍어 플옵에서 디트로이트를 상대했지만 1승 4패로 스윕당했다.

2004년 드래프트에선 1명도 뽑지 못했지만, 팀은 보유 중이던 드래프트 2라운드 픽 1장을 신규 팀 샬럿 밥캐츠에 배치됐던 자자 파출리아와 맞바꾸고 FA로 풀린 마이크 제임스(디트로이트) 및 모 윌리엄스(유타)를 각각 영입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들어 레드, 포드 등 선수 15명이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승보다 패가 많아졌고, 궁여지책으로 2005년 2월에 밴혼을 댈러스의 캘빈 부스 및 앨런 헨더슨과, 마이크 제임스 및 젠던 해밀턴을 휴스턴의 리스 게인스 및 드래프트 픽 2장이랑 각각 맞바꿔가며 변화를 주고자 했지만, 30승 52패를 찍어 하위권으로 처졌다.

2005년 오프시즌 들어 팀은 포터 감독을 쫓아낸 뒤 골든스테이트의 코치이던 테리 스토츠를 감독으로 불렀고, 드래프트 때 전체 1번으로 호주 출신 앤드류 보것(유타대)을 뽑고, 유럽 무대에서 뛰던 찰리 벨을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에선 레드와 신인 보것, 벨 등의 활약으로 40승 42패에 컨퍼런스 8위를 찍어 간신히 플옵에 나갔지만 디트로이트에게 1승 4패로 스윕당했다. 2006년 드래프트에선 코네티컷대 출신 찰리 빌라누에바를 전체 7번으로 뽑았지만 개막전 때 예상 스타팅 라인업 5명이 부상이나 병 등으로 결장해 망조가 보였고, 전 경기를 소화한 선수는 벨이 전부였다. 거기에 보것의 비매너스런 행동도 팀에 독이 됐다. 정규시즌 당시 23승 41패 시점에서 스토츠 감독이 잘려 래리 크리스트코비악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고, 당시 모 윌리엄스, 레드, 벨 등이 최선을 다했지만 28승 54패로 무너졌다.

2007년 오프시즌 들어 팀 로고의 원형을 유지한 채 모양과 색깔을 전성기 시절 그대로 일부 수정했다. 드래프트에선 야오밍 열풍에 편승할 겸 흥행을 살려보고자 이젠롄을 전체 6번으로 지명했고, 네바다 대학교 레노 캠퍼스 출신의 라몬 세션스도 56번으로 뽑았다. 특히 이젠롄의 영입과 관련해 중국 정부와의 외교 마찰 등으로 논란이 됐고, 정규시즌에선 수비가 너무 취약해서 필드골 및 3점 슛 허용률에서 각각 1위와 4위를 찍는 수모를 겪어 26승 56패로 추락했다. 또한 해리스 단장도 2008년 3월 19일(현지시간)에 쫓겨났다.

2008년 오프시즌 때 콜 구단주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운영부사장이던 존 해몬드를 단장으로 모신 뒤, 크리스토코비악 감독을 자르고 전 시카고 불스 감독 스캇 스카일스를 선임했다. 스카일스 감독은 수비 강화에 중점을 두어 6월에 이젠롄 및 바비 시몬스를 뉴저지의 리차드 제퍼슨과 맞바꾸고, 드래프트에서 웨스트버지니아대 출신 조 알렉산더를 전체 8번으로 뽑았다. 8월에는 클블 및 신규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3각 트레이드를 맺어 모 윌리엄스를 클블의 데이먼 존스, 데스몬드 메이슨을 오클라호마시티의 아드리안 그리핀 및 루크 리드노어와 맞바꿨다. 마침 레드 등 주축 선수들도 수년의 세월을 거쳐 농익어져서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았지만, 정규시즌에서 레드가 오른쪽 발목 염좌 등에 시달리는가 하면, 보것이 등 부상으로 고생하는 등 선수 8명이 부상으로 결장하여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고, 전 시즌보다 8승 더 오른 34승 48패를 찍었다.

2009년 드래프트 때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던 브랜든 제닝스를 10번으로 뽑아 보것이랑 짝을 짓는 한편, 트레이드 시장에서 제퍼슨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브루스 보웬, 커트 토마스, 파브리시오 오베르토 3명과 맞바꾸고[2] 빌라누에바를 FA로 풀어 디트로이트로 보내는 등 팀을 개편했다. 정규시즌 후반 31경기에서 22승 9패를 더해 46승 36패로 4년만에 플옵에 나가 제법 돌풍을 일으켰지만, 애틀랜타 호크스에게 3승 4패로 졌다.

2010-11 시즌을 앞두고 팀은 존 살몬스, 드류 구든 등에게 거액의 장기 계약을 줘가며 전력 보강을 했지만, 정규시즌 들어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격진의 부재 등으로 연패를 거듭해 35승 47패로 떨어졌다. 연고지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는 약점이 있으며 그렇지 않아도 2000년대 후반 NBA가 스타들의 집결이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와중이라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었다.

2011-12 시즌에도 보것이 장기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레드도 고질적인 부상으로 기량이 떨어지자 도중에 FA로 풀려 피닉스 선즈로 떠났다. 이를 역이용해서 보것을 스티븐 잭슨과 묶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몬타 엘리스, 엑페 우도, 콰미 브라운 3종 세트랑 맞바꿔가며 제닝스-엘리스 콤비의 빠르고 공격적인 백코트 조합을 형성했으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다음해에는 플레이오프 막차에 탑승하는데 성공하고 제닝스는 "우리가 4-2로 마이애미에 이긴다." 라는 개드립포부를 보여줬으나...[3] 가차없이 히트에 스윕당해 탈락. 결국 2013년 플레이오프 이후 엘리스가 댈러스, 제닝스가 디트로이트로 떠나며 난사 듀오는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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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델 헤리스 전 단장 겸 감독의 아들이다.[2] 다만 오베르토는 같은 날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아미르 존슨과 다시 맞바꿔졌으나 7월 2일 웨이버 공시됐고, 10월 25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FA로 영입되었다.[3] 이것이 개드립인 이유가 먼저 2경기를 내준 다음에 한 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