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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21:23:27

밀레투스 공방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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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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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헤기시스트라투스가 지키는 밀레투스 시를 포위공격한 공성전.

2. 상세

기원전 334년 5월, 알렉산드로스 3세아케메네스 왕조의 소아시아 사트라프들을 상대로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몇 주 동안 다시켈리온, 사르디스, 에페소스를 별다른 전투 없이 공략했다. 이 무렵 마그네시아와 트랄레스에서도 항복의 뜻을 전하자, 알렉산드로스는 파르메니온과 2,500명의 연합 보병, 2,500명의 마케도니아인, 약 200명의 헤타이로이 대원을 두 도시에 보내 장악했다. 또한 아가토클레스의 아들 알키마쿠스에게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줘서 아직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아이올리아와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를 해방시키라고 명령했다. 두 장수는 곧 임무를 완수하고 본대와 합류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을 지지하다가 추방된 사람들을 도시에 불러들였고, 기존의 지배층을 쫓아내는 대신 민주 정부를 세워 모든 도시가 자체적인 법과 관습을 지키게 했고, 이전에 페르시아에 바치던 세금도 내지 않도록 했다. 그가 특별히 민주제를 옹호했던 건 아니고, 페르시아가 과두정을 지지하니 민주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또한 페르시아에 바치던 세금을 전부 아르테미스 신전에 올리도록 했다. 이리하여 민심을 끌어모은 뒤, 병사들을 이끌고 밀레투스로 향했다.

밀레투스 외곽 지역은 수비대가 철수하여 공격하지 않고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도심 지역은 헤기시스트라투스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사실 헤기시스트라투스는 얼마 전에 알렉산드로스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400척에 달하는 아케메네스 함대가 몰려오자 항복 의사를 철회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 해군 사령관 니카노르가 적 함대보다 사흘 먼저 밀레투스로 들어와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라데 섬에 함선 160척을 정박시켰다. 아케메네스 사령관들은 적 함대가 먼저 라데에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되자 미칼레 산 밑에 배들을 정박시켰다.

함대 숫자에선 마케도니아 측이 훨씬 열세했지만, 파르메니온은 해전을 전개하자고 촉구했다. 알렉산드로스의 함선들 뒤쪽 해안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이는 해전을 벌인다면 승리할 거라는 신의 계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승전한다면 마케도니아 측이 매우 유리할 것이며, 패배하더라도 적이 이미 바다를 장악하고 있으니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자기가 직접 해군을 이끌고 적과 상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반대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징조를 잘못 해석했다. 독수리의 등장은 분명 길조겠지만, 바다가 아닌 육지에 나타난 것은 해군이 아니라 육군이 적 함대를 무찌를 것이라는 뜻이다.
2) 훨씬 더 많은 함대를 상대로 해전에 돌입해 고도로 훈련된 키프로스와 페니키아의 해군에 맞서는 건 무모하다.
3) 바다는 까다롭고 변덕스러우니 내 부하들의 기술과 용맹성을 전부 노출할 수 없다.
4) 만약 해전에서 패한다면 이를 지켜본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테고, 그리스에 소식이 전해지면 반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던 중 글라우키푸스라는 이름의 멜레투스의 저명인사가 알렉산드로스를 찾아왔다. 그는 도시를 수비하고 있는 외국 용병들의 제안을 가져왔다면서, 마케도니아와 아케메네스 왕조가 항구를 똑같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성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줄 테니 포위를 풀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돌려보냈다.
"내일 새벽에 자신을 지킬 준비나 해라."

다음 날, 알렉산드로스는 공성 장비를 총동원해 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기다란 공성 망치로 방어 시설을 들이받는 공격이 시작되자, 그는 안으로 들어갈 만한 틈이 있거나 취약한 지점에 거점을 확보하도록 했다. 한편 미칼레 산에 있던 아케메네스 함대는 적의 작전 진행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근했다. 라데 섬에 있던 니카노르의 함대는 해안을 따라 밀레투스 항으로 나아가 적 함대가 항구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구 입구의 가장 좁은 곳에 배들을 밀착시켰다. 그리하여 아케메네스 함대는 도시를 돕지 못했다.

얼마 후 성벽이 뚫리고 마케도니아군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부분의 밀레투스 시민과 용병은 성안에서 목숨을 잃었고, 얼마 안 되는 시민과 용병들이 작은 섬으로 달아났다. 알렉산드로스는 뱃머리에 성곽 공격용 사다리를 고정시킨 뒤 섬의 해안 지형에 바짝 댔지만, 그곳에 달아났던 자들이 거세게 저항하자 공격을 중단하고, "내 군대에 복무한다면 살려주겠다"라고 했다. 이에 300명의 그리스 용병이 응했고, 알렉산드로스는 도시를 점령한 후 살아남은 밀레투스 시민들을 모두 풀어줬다.

한편, 아케메네스 함대는 한동안 미칼레 산을 기지로 삼아 매일 밀레투스 쪽으로 이동했다가 밤에는 기지에 머물렀다. 그러나 배에서 사용할 물을 구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미안데르 강까지 가야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함대에게 항구에서 계속 경계 근무를 서게 해 적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필로타스에게 기병대, 보병 중대를 맡겨 미칼레 산으로 보내 적의 상륙을 막게 했다. 이로 인해 물 보급이 어려워지자, 아케메네스 함대는 사모스 섬으로 배를 몰고 가서 필요한 물품을 가득 실은 뒤 밀레투스로 돌아왔다.

그들은 적을 넓은 바다로 유인하기 위해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친 뒤, 다섯 척의 함대가 라데 섬과 해안의 마케도니아 진지 사이로 은밀히 진입했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땔감이나 식량 등의 물자를 구하러 간 때를 노려 배를 기습 공격하려는 심산이었지만, 마케도니아 배에는 병사들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광경을 보고 즉각 배 10척을 출격시켜 이들을 격퇴하라고 명령했다. 아케메네스 함선 5척은 즉시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는데, 야수스군을 태운 배는 속도가 느려서 붙잡혔지만 나머지 4척은 본대와 합류했다. 이후 아케메네스 함대는 더 이상 싸워봐야 소용 없다고 판단하고 밀레투스를 떠났다.

알렉산드로스는 적 함대가 물러난 뒤 함대를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에게는 함대를 유지할 만한 자금이 없었고, 자신의 함대가 페르시아 해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그리스 동맹군의 충성심을 믿지도 않았다. 대신 20척의 아테네 배는 유지하여 해안에서 전쟁 물자를 운송하도록 했다. 그는 아시아의 해안에서 적이 이용할 항구가 없다면 적 함대가 자연히 무력화될 것이라 확신하고, 육군을 이끌고 항구 도시들을 모조리 공략하기로 했다. 이렇게 방침을 정한 뒤, 아케메네스 왕조의 대표적인 소아시아 항구도시인 할리카르나소스로 진격했다. 로도스 출신의 아케메네스 용병대장 멤논이 이에 맞서면서 할리카르나소스 공방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