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군의 위관급 장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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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중식(閔仲植)은 구한말의 군인이다.2. 생애
관원이력서에 따르면 1866년 10월 5일생이다. # 승정원일기에는 1892년부터 이름이 등장한다. 1897년에 육군 참위로 임용되어 대한제국군 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에 배속되었다.1901년 8월 28일에 부친상을 당했고, 100여일이 지난 12월 10일에 기복하였다.[1] 1904년에는 모친상으로 상을 치르고 기복하였다. 1905년에는 정위 계급이 확인된다.
1907년 4월에 시위혼성여단이 설립되면서 2연대 1대대의 중대장이 되었다. 7월에 양성환 여단장에 의해 대대장인 이기표가 보직해임되면서 대대장 서리를 맡게 되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관사에 8월 1일 다녀온 뒤에 대한제국군 해산을 통보받자 민중식은 장병들에게 알리지 않고 훈련원으로 병력을 인솔하겠다고 하였다. 일본군 교관 이케(池) 대위와 2연대 1대대를 찾았는데 장병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교관과 함께 담을 넘어 도주하였다. 같은 대대의 중대장인 오의선은 자결하였고, 권중협은 전사하여 대한제국군 장교 최고위 전사자였다. 민중식은 9월에 무보직으로 제대 조치되었다.
이날 봉기로 인해 대대 사무실에 보관 중이던 집문서를 분실했다. 집문서를 획득해도 효력이 없다고 그해 10월 대한매일신보에 광고를 냈다. #
1908년에는 종로 삼창상회(三昌商會) 명의로 부동산 거래 관련해 신문에 공지를 했다. #
1939년에 조선총독부 관보에서 법인 등기 관련해 이름이 나오는데 본인인지 동명이인인지는 불명이다. 생존했을 경우 73세가 된다. #
3. 출처
[1] 기복은 삼년상을 치르는 관리가 상복을 입고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현실적으로 관료가 3년씩 자리를 비우면 개인의 커리어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손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