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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25 19:59:55

문정진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10년 7월 30일
평안남도 증산군[1]
(현 평안남도 증산군 함종리)
사망 1969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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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0년 7월 30일 평안남도 증산군 함종리에서 태어났다.

문정진은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때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3개월간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3.1 소년단에 가입해 독립사상을 배양하다가 당국의 추적을 받자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는 상하이에서 장제스에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군사상 지원을 해달라는 청원서를 올렸으며,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입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후 장시성 개산훈련소에 입대한 뒤 1938년에 국민혁명군 항일군 제9전구 사령부에 배속되어 대적 선전 책임을 맡았으며, 적지 정부 입수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39년에는 서남 유격간부훈련소에 학생 장교로서 3개월간 교육을 받았고, 1941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서 일본군 점령지구의 교포 초모 공작을 준비했다.

8.15 해방 후 1969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에서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문정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사후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되었다.


[1]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는 그의 출생지가 '평안남도 강서군 함종면 함종리'라고 되어 있는데, 그가 태어난 1910년 당시에는 평안남도 증산군 중리면 창후리·명선동·보안동·사직동, 남리면 부곡동·훈련리·석교리, 북리면 발산내리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증산군 남리면·중리면을 병합하여 '함종면'을 신설하고 위에서 언급된 행정구역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함종리'를 신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