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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21:11:25

문방귀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文邦貴
(? ~ ?)

1. 개요

조선의 인물. 근데 이름이..

2. 생애

臣生於濟州, 年十六, 觀光而來‥
신은 제주에서 태어나 16세에 처음으로 (서울에) 구경와서‥
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 1월 25일 경신.
문방귀는 조선시대 제주 토관 자제 교육방침#에 따라 유교 교육을 받고 성균관에 입학했다. 문방귀는 1405년에 바로 직장(直長) 벼슬을 얻었으나 1406년 부친상을 당해 제주로 돌아갔으며 무덤 옆에 초가집을 짓고 삼년상을 지냈다. 문방귀는 조선에서 유학을 익힌 1세대로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삼년상을 지냈으며, 제주도안무사 윤임의 눈에 띄어 제공(提控) 양심(梁深), 생원 고득종과 함께 효행으로 추천됐다. 금구현령(金溝縣令) 벼슬을 얻고 임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1422년경 모친상을 당했고 또 삼년상을 지냈다. 삼년상을 마치고 1425년 10월 세종 앞에 불려갔는데 12월 초4일에 특진 예빈판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어떤 이유에선지 직첩이 회수됐다가 1431년 5월에 돌려받았다.

3. 가족관계


문방귀의 처는 고득종의 누이였다. 문방귀는 현령을 지낼 때 탐오를 저지른 일이 있었는데, 일이 발각되자 처남인 고득종이 힘써 비호해 죄를 면하게 됐다. 문방귀가 예빈판관으로 있을 때인 1426년 제주에 살고 있는 처자를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요청한 일이 있다.

『남평문씨대동보』에 따르면 탐라국의 마지막 왕자 문충세의 아들로 정해진도사수 문방보의 동생이며, 호군을 지낸 문방지의 형이다. 대동보에는 배우자가 누락됐으며 아들 경우 외에 두 딸을 둔 것으로 나타난다.[1]


[1] 『남평문씨대동보』 권1, 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