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前 축구 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무지 이제트 Muzzy Izzet | |
본명 | 무스타파 케말 이제트 Mustafa Kemal Izzet | |
출생 | 1974년 10월 31일 ([age(1974-10-31)]세)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타워 햄릿 자치구 마일 엔드 | ||
국적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8cm | |
직업 | 축구 선수 (미드필더[1]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 센랍 FC (?) 찰턴 애슬레틱 FC (?) 첼시 FC (?~1993) |
선수 | 첼시 FC (1993~1996) → 레스터 시티 FC (1996 / 임대) 레스터 시티 FC (1996~2004) 버밍엄 시티 FC (2004~2006) 써마스턴 타운 FC (2009) | |
국가대표 | 9경기 (튀르키예 / 2000~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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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前 축구선수.레스터 시티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이나 불운의 부상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된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2.1. 첼시 FC
첼시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제트에게 데니스 와이즈, 루드 굴리트와 같은 선수들과의 주전 경쟁은 어려웠고 전력외 자원으로 분류되어 3년간 0경기 출전에 그친다.2.1.1. 레스터 시티 FC (임대)
그러던 중 레스터 시티로의 임대가 확정되었다. 시즌 말이라 몇 경기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플레이오프 결승전 크리스탈 팰리스 FC와의 경기에서 1:0 지고 있는 상황 후반 75분, 페널티킥을 얻어내었고 게리 파커가 마무리하며 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일조하였다.2.2. 레스터 시티 FC
레스터에 날아온 마법사 |
레스터가 크리스탈 팰리스를 꺾고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옴에 따라 £1.2M에 완전이적 하게 된다.
96-97 시즌, 이제트는 닐 레넌과 함께 미드진을 이끌었고, 강등 후보로 생각되던 레스터를 리그 9위에 안착시키고 코카콜라컵 우승까지 이끄는 등 성공적인 프리미어 리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비수를 꽃는 이제트 |
98-99 시즌 프리미어 리그 9R 토트넘을 상대로 정규시간 5분을 남기고 기록한 원더골.[3] 이제트의 발리슛 능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99-00 시즌, 이제트는 역시나 닐 레넌과 함께 최고의 파트너쉽을 이루며 팀의 리그 8위 및 워딩턴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등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이 활약 덕에 웨스트햄, 미들즈브러 등이 관심을 보였고 이적 요청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나 결국엔 팀에 남았다.
워딩턴컵 우승 팀 자격으로 출전했던 00-01 UEFA 컵 1차예선 2차전,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렸다. 팀은 아쉽게도 이후 추가실점을 당하며 1차예선에서 유럽 대항전을 마무리하였다. 또한 마틴 오닐 감독의 이탈 후 전 시즌 대비 5단계가 하락한 리그 13위의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인 01-02 시즌, 이제트는 전 시즌 대비 아쉬운 활약을 하였고, 레스터는 리그 꼴찌를 기록하며, 7시즌만에 강등을 당하였다.
그림즈비 타운에게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을 성공시키는 이제트 |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온 03-04 시즌, 주장이었던 맷 엘리엇이 경기에 뛰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부주장이었던 이제트는 매경기마다 주장 완장을 달고 팀을 이끌며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까지 석권하게 된다. 하지만 팀의 강등을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이전 강등 때와는 달리 레스터가 주급 문제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FA로 풀려나며 레스터와의 동행을 마쳤다.
2.3. 버밍엄 시티 FC
2004년 6월, 버밍엄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리그 첫 경기부터 주장완장도 다는 등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리그 8R 홈에서 열린 뉴캐슬과의 경기 중 상대 수비수였던 올리버 베르나르의 태클로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게 되었고, 이 부상을 기점으로 이제트의 커리어는 완전히 꼬이게 되었다.
결국 이 무릎 부상의 여파로 이제트는 2시즌간 단 28경기 1골[4]에 그치면서 최악의 먹튀로 남았고, 결국 2006년, 은퇴를 선언 하였다.
2.4. 이후
2009년, 레스터셔 시니어 리그[5] 소속의 써마스턴 타운 FC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경기만에 또 무릎 부상의 여파로 이후 경기에 뛰지 않게 되었다.이후 현재는 팀 동료였던 스티브 월시와 함께 어린이 축구 교실을 운영 중이다.
3. 국가대표 경력
99-00 시즌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UEFA 유로 2000 튀르키예의 명단에 포함되며 처음으로 국가대표 마크를 달게 되었다.조별리그 B조 2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이제트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튀르키예 명단에도 뽑히게 되었다. 4강 브라질과의 경기에 교체출전하며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지만 팀의 1:0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이후에는 '그 무릎 부상' 때문에 더 이상 뽑히지 않았다.
4. 플레이 스타일
강력한 중거리슛은 이제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로 이를 활용한 발리슛 등 뛰어난 골들을 넣었다. 양발을 자유롭게 쓰기도 했기에 더욱 이 장점이 부각되었다.활동량도 이제트의 큰 장점으로 부상 전까지 상당히 많이 뛰어다녔다.
축구 지능도 뛰어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등 다방면의 포지션 수행이 가능했으며 그중 중앙 미드필더로 뛸 때도 뛰어난 공격 지원을 보였다. 경기를 읽는 능력도 대단했으며 경기 조율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피지컬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선수이다 보니 수비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고 빠른 발을 지니지 않았다.
그리고 위의 상기한 장점들도 그 부상으로 인해 줄어들고 말았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골 : 1998-99[6]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 1999년 09월
- PFA 올해의 팀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002-03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2003-04[7]
6. 여담
- 1996년 프리미어 리그 승격 이후 2002년 강등될 때 까지의 레스터 시티 유니폼을 파는 곳을 보면 이제트가 마킹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트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부분.
- 6살 터울의 동생인 케말 이제트(Kemal Izeet) 역시 축구선수였다. 다만 형과 다르게 하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다.
- 2015년에 자서전인 'Muzzy: My Story'를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