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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2:55

무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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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 갑골문.png
상(商)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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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16350> 상 21대 국왕
고종 무정 | 高宗 武丁
파일:무정(武丁) 초상화.jpg
묘호 고종(高宗)
시호 무정(武丁)
자(子)
소(昭)
배우자 부호
아버지 소을(小乙) 렴(斂)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1192년(?)
재위 기간 음력 갑골문:기원전 ???년 ~ 기원전 ???년
사기:기원전 1250년 ~ 기원전 1192년

1. 개요2. 역사 기록

[clearfix]

1. 개요

상나라의 제21대 국왕. 묘호는 고종(高宗), 왕호는 무정(武丁). 휘는 소(昭)였다.

2. 역사 기록

어렸을 때 평민천민들과 함께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다같이 했기에 그들의 삶과 농사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즉위 이후 죄수였던 부열(傅說)[1], 스승 감반(甘盤)[2] 등 능력이 뛰어난 자들을 등용하여 나라를 이끌게 했다. 덕분인지 소신왕대부터 다시 쇠락하던 상나라가 그의 치세기에 반등해 훗날 역사서에서는 '무정중흥'(武丁中興) 혹은 '무정성세'(武丁盛世)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정은 방(方)족을 대규모로 정벌했는데, 보통 병력이 3천 명에서 많으면 5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많은 군사들은 유명한[3] 고종(무정)의 부인인 부호가 지휘하여 정벌했고, 방족의 포로들은 인신공양(...)에 쓰였다고 한다.

무정이 죽자 왕위는 아들 조경이 계승했다.

2.1. 갑골문

오늘날 발견된 갑골문들은 무정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이 갑골문을 해독해보니 무정이 거느린 무당이 70명 정도였다고 한다. 상나라의 제정일치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

기존 주요 사서에는 기록되어있지 않던 무정의 부인 부호란 인물도 등장하는데, 무정은 부호를 아꼈지만 다른 고대인들과 비슷하게 남아선호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부호가 을 출산하자 불길하다며 실망감을 표출했다. 그래도 그녀가 지병으로 위독해지자 쾌차를 바라는 제사를 지냈고, 그럼에도 결국 부호가 사망하자 곡제를 지내며 슬퍼했다.

2.2.죽서기년

2.3.사기

부친상을 치르는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는 고사가 있다(三年不言). 이 기간 정사는 총재(冢宰)가 결정하도록 하고, 나라의 기풍을 관찰하였다고 한다. 그 외 무정의 재위 기간 정사를 바로잡고 덕을 행하니 천하가 기뻐하였고, 상나라도 다시 흥성하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1] 이와 관련해 '사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무정이 한 날은 꿈을 꿨는데 거기서 이름이 '열'이라고 하는 성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꿈에서 깬 후 무정은 현실에서 이 인물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는데, 노역장에서 길 닦고 있던 부험을 발견했고, 꿈에서 본 인물과 같다고 무정이 확인하고 대화를 해보니 과연 인재라 그를 등용해 '부열(傅說)'이라 부르며 함께 상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2] 감인(甘人) 일족의 수령으로, 상왕 소을(小乙)이 재위 6년차에 아들 무정을 하(河)에 살게 하고 감반에게서 공부하게 하였다.[3] 이집트의 투탕카멘이 도굴되지 않은 왕묘라 유명하듯이, 부호의 묘도 3천 년 동안 도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은허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왕비가 제사장과 장군 역할을 수행했음도 이채로운 부분인데 그대로 그 무덤이 발견됐다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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