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제 탑에 대한 내용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문서 참고하십시오.
무영탑 無影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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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소설가 현진건의 1938년작 역사소설. 1939년에 출간되어 오늘날까지도 여러 출판사에서 출시되고 있다.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인근 연못인 영지못에 얽힌 석공과 석공 부인의 전설을 소설화한 것으로, 신라 하대의 역사적 배경에 정치적 상황까지 다루고 있는 수작이다. 해당 전설은 이른바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석공 전설의 주인공 이름을 '아사달'이라고 붙인 것은 이 소설이 시초라는 게 정설이다.
2015학년도 수능 국어 A/B형 공통으로 출제되었다.
2. 등장인물
- 주만: 본작의 주인공으로 부잣집 딸이다. 탑돌이를 하다가 우연히 아사달을 마주친 후 그에게 사랑에 빠져 매일 밤 친구처럼 지내는 하녀와 함께 쌍탑을 보러 온다. 아버지에 의해 혼약된 경신에게 자신이 아사달과 함께 도망칠 테니 혼약을 무효로 해달라고 부탁하며 그가 이를 승낙하자 기뻐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끝내 아버지에게 알려지자 부정을 저질렀다며 불에 타 죽을뻔 하지만, 경신에게 구출된다.
- 아사달: 부여에서 온 쌍탑을 짓는 솜씨 좋은 석공으로 고향에 늙은 스승인 부석과 아내 아사녀를 두고 왔다. 주만과 아사녀 사이에서 갈등하나, 극후반부 아사녀가 죽은 것을 알게 된 후 돌에 부처의 얼굴을 새기고 연못에 몸을 던진다.
- 아사녀: 부여에 남은 아사달의 아내. 아사달이 떠난 지 몇 해가 지나고 아사달의 스승이었던 부석이 죽고 주위에서 아사달이 서라벌에서 새로 가정을 차렸다는 소식을 듣자 심란해한다. 부석의 장례식을 도맡아 하고 자신을 겁탈하려는 이를 처벌한 부석의 제자 팽개에게 마음이 가지만 이내 그도 파렴치한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사달을 찾아 남장을 하고 서라벌로 향한다. 가면서 배고픔과 사람들에 의한 여러 수치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서라벌에 도착하지만, 경비들[1]이 문을 막는다. 자신이 아사달의 아내라고 밝히지만 그녀가 절에 들어오면 아사달의 작업 속도가 늦어질 것을 염려한 경비는 여전히 불허하고, 그에게 '저 연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추면 그때 탑이 다 지어진 것이니 그때 오라'는 답변을 받는다. 낙담하며 연못에 가지만 아무래도 탑의 그림자는 없다.[2] 연못에서 서성이던 중 콩콩할매가 다가와 그를 잘 대접해 주는데, 이후 그의 말을 엿듣고 다른 이에게 아내로 팔아먹을 속셈이라는 것을 안 뒤 도망치지만 이내 잡힌다. 기껏 서라벌에 왔는데 아사달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 아사달을 기다리는 또다른 여자(주만)가 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 다른 이에게 아내로 팔려갈 수 없다는 감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이후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들은 아사달도 같은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 ??: 주만의 하녀. 작중에 상당히 비중 높게 그려지는 인물인데 도대체 왜인지 인터넷에 정보가 하나도 없다. 주만보다는 당돌한 성격으로 주만의 하녀이면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면이 있다. 매일 밤 주만과 함께 집을 나서 불국사로 가는데, 그곳에서 자신 나름대로 돌쇠(?)와 사랑에 빠진다. 주만의 사랑이 들통나자 주만에게 달려와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알린 후 시간을 벌러 주만네 집으로 돌아간다.
- 금경신: 주만의 아버지에 의해 주만과 혼약된 금량상의 아우. 유종 왈 가문도 탄탄하고 당나라에 사대주의적이지도 않으며 개인적으로도 훌륭하다고 한다. 작중에는 주만과의 첫 대면 전날 밤 불국사에서 묵어가는 걸로 등장한다. 그런데 주만의 약혼자가 될 뻔 했던 금성이 절에 쳐들어와 아사달을 해하려 하자 동료와 함께 검술 솜씨를 발휘해 그들을 물리친다.[3] 이후 주만의 집에서 주만과 처음으로 대면하고 혼약자가 된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걷던 중 충격적인 말을 듣는데, 바로 주만은 사랑하는 사람(아사달)이 있으며 언젠가 도망칠 테니 모른 척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놀랍게도 결혼도 그녀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녀를 이해하고 요청을 들어준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떠나 있다가 주만의 집에서 행사가 열리면서 주만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날 아사녀와 아사달이 자살하는 대형 사건이 벌어진다. 주만도 부정을 저질렀다 하여 하인들에 의해 불태워지려 하는 순간, 그녀를 구출해서 그녀를 정신이 드냐고 깨우는 것으로 작품이 끝난다. 여러모로 시대를 초월한 성인으로밖에 볼 수밖에 없는 인물.
- 유종: 주만의 아버지. 주만의 혼약과 관련하여 금성의 아비 금 시중이 직접 그의 집을 찾아 재차 혼담을 건넸으나, 유종은 신라의 전통을 지키자는 국선도파이기에 당학파의 거두인 금 시중을 꺼려 혼담을 파하고는 국선도를 지지하던 이손 금량상의 아우 금경신과 급히 혼약을 맺는다. 금 시중과는 본격적으로 적대적으로 되면서 국정과 관련하여 다투는 사이가 되고, 주만이 석공과 부정한 관계가 되지 않았냐고 금 시중이 떠보자 그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주만을 의심한다. 이후 이가 사실로 드러나자 하인들을 불러서 주만을 불태우도록 명했지만, 자신도 사회적 시선 때문에 그런 것으로서 딸을 사랑했기에 집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등장 종료. 주만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서도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 인물이다.
- 금성: 시중 금지의 아들으로 작중 시간대 이전에도 주만의 혼약 여부에 대해 떠본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주만이나 유종이나 그에 부정적이다. 밤중에 주만을 미행하고 주만의 집의 담벼락을 하인과 함께 넘어보려다 어설프게 무마하는 모습은 그저 파렴치한 그 자체. 이외에도 말싸움에서 주만과 하녀에게 발린다(...) 주만이 매일 밤 불국사의 아사달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울리는 한량들과 함께 불국사의 아사달을 해하려 하지만, 주만의 혼약자가 된 금경신을 당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 콩콩할매: 콩콩 소리를 내는 것이 버릇인 할머니로 아사녀와 서라벌의 연못가에서 만난다. 그녀를 잘 대접해 집에 모시지만, 알고 보니 이것은 돈을 받고 아사녀를 다른 이의 후처로 넘기기 위한 것임이 밝혀진다. 도망친 아사녀를 잡아 다시 데리러 가려 하지만 아사녀가 연못에 몸을 던진다. 이후 아사달이 그녀가 어디 갔나갸 추궁하자 도리어 아사녀가 먹은 음식과 입고 있던 비단값을 내놓으라고 역정을 낸다.
- 사초 부인: 주만의 어머니이자 유종의 아내. 자신은 사랑하는 다른 이가 있으니 도망치겠다는 주만의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눈감아준다. 그러나 이내 유종이 직접 그에게 묻자 모든 것을 실토하게 되고, 부정을 저질렀다 하여 하인들에 의해 주만이 붙들리게 된다.
- 부석: 아사달의 늙은 석공 스승으로 불국사에 탑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제자 아사달을 서라벌으로 보내고 자신은 고향에 남는다. 이후 아사녀의 보살핌을 받지만, 노환으로 몇년 뒤 봄에 사망한다. 가장 아끼는 제자는 아사달이었지만 이외에도 십수 명의 제자들을 두고 있었다.
- 팽개: 부석의 제자 중 한 명으로 과거 아사녀를 좋아했으나 그가 아사달과 결혼한 것과, 부석이 아사달을 제일 아꼈던 것으로 아사달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사달이 서라벌으로 떠나고 부석마저 사망하자 부석의 장례식을 치르는 데 앞장서고, 아사녀를 겁탈하려던 다른 제자를 처벌하고, 아사녀를 보살펴주는 등 가까워지려고 시도한다. 아사녀가 자고 있을 때 옆에 누워 몹쓸 짓을 하려던 그때, 팽개가 오랫동안 집에 안 들어오는 것을 의심한 그의 아내가 문을 박차고 열고 들어와 바람을 피는 거냐고 소리친다. 이에 아니라고 해명하며 밖으로 나가지만, 아사녀는 그의 본성을 눈치채고 아사달을 찾아 서라벌로 떠난다.
3. 줄거리
때는 통일 신라 하대의 경덕왕 때로, 이미 삼한은 통일된 지 오래지만 앙금은 남아 있어 백제 지역에 대한 차별 의식이 뚜렷한 상황에서, 부여에서 온 석공 아사달은 다보탑 공사를 끝내고 석가탑의 공사를 시작한다. 이 때 왕과 왕비가 대역을 마치기 전이긴 하지만 구경 차 불국사로 미행 거둥을 한다. 대대적 거둥은 아니지만 왕과 왕비의 거둥이다 보니 몇몇 대관과 그 가족들이 수행하여 따라오는데, 이 중에는 이손[4] 유종의 딸 주만(구슬아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왕 일행은 불국사에 도착하여 다보탑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경탄하여 석공 아사달을 불러내어 치하하는데, 주만은 이 때 아사달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후 왕의 예불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보탑에 탑돌이를 하러 나왔다가, 탑돌이에서 아사달과 마주친다.아사달에게는 부여에 두고 온 스승이 있고, 스승의 딸인 아사녀와 이미 혼인한 사이였다. 탑 두 개를 세우는 대공을 들이는 와중에도 아사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신라 왕의 예불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세운 다보탑에서 탑돌이를 하다가 마찬가지로 탑돌이를 하던 주만을 마주치고 순간적으로 아사녀로 착각한다. 아무 상관 없는 여자를 사랑하는 아내로 착각했다는 민망함에 숙소로 도망쳐 오지만, 이튿날부터 돌연 일에 신흥이 나면서 삼일 밤낮을 침식을 잊고 망치질을 하다가 기력이 다해 기절하고 만다.
주만은 아사달과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하고 아사달을 다시 보기 위해 어머니를 부추겨 불공을 드린다는 핑계로 불국사를 찾았다가, 기절하여 탑에서 굴러떨어진 아사달을 발견한다. 아사달은 곧 정신을 차리지만, 절밥으로는 기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주만은 밤마다 불국사를 찾아 병구완을 핑계삼아 아사달을 만나기 시작한다.
시중 금지의 아들 금성은 겉으로는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와 한림학사 가자를 받은 촉망받는 인재였으나, 실상은 시경의 "요조숙녀 군자호구"만 읊어대는 한심한 인물이다. 그는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에서 본 주만을 잊지 못하고 매파를 넣어 청혼까지 하였으나, 유종의 집에서는 얼른 답이 오지 않고 마음만 사무치자 밤에 주만의 집 담벼락을 넘으려다가 오히려 아사달을 찾아가려고 나서던 주만에게 들켜 망신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성의 아비 금 시중은 직접 유종의 집을 찾아 재차 혼담을 건넸으나, 유종은 신라의 전통을 지키자는 국선도파이기에 당학파의 거두인 금 시중을 꺼려 혼담을 파하고는 국선도를 지지하던 이손 금량상의 아우 금경신과 급히 혼약을 맺는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도 주만은 아사달과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아사달은 부여에 두고 온 아사녀를 그리워하지만 주만의 지극정성에 마음이 열리고 있었고, 탑 위에서 단둘이 있기도 하게 되었다. 주만은 아사달에게 자신이 곧 혼인을 하게 될 것임과, 그럼에도 자신은 아사달만을 사랑함을 고백하고 아사달에게 부여로 자기를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한다. 아사달은 아사녀가 있어 안 된다고 하지만, 주만은 아사달의 후처가 되더라도 아사달과 함께하고 싶다며 매달린다.
한편 부여에서는 아사달의 스승 부석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겨진 아사녀를 부석의 옛 제자들이 넘보기 시작한다. 아사녀는 남편이 신라에서 귀인과 새장가를 들었다는 헛소문에 앓아눕기까지 하지만, 그나마 믿음직스러웠던 팽개조차 앓아 누운 그녀를 탐하려다가 실패하는 추태를 보인다. 결국 아사녀는 앓아 죽지도 못할 자신을 한탄하며 서라벌로 길을 떠난다.
그 즈음 서라벌에서는 주만이 아사달과 친해진 것을 질투한 금성이 한량들을 모아 불국사를 습격하여 아사달을 해코지하려다가, 때맞춰 불국사로 온 경신과 그 벗 용돌에게 혼쭐이 난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로 불국사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게 되었고, 주만도 못 들어가게 되었지만 부여에서 거지꼴이 되어 도착한 아사녀도 경내에 들어가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만다. 불국사 문지기의 거짓말을 듣고 모든 완성된 물건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그림자못(영지못)에 가서 석가탑의 완성을 기다리려는 아사녀. 그녀의 뛰어난 미모를 본 중매쟁이 콩콩이 할멈을 만나 할멈의 대접을 받고 쉬면서 남편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콩콩이 할멈은 어느 색골 귀족에게 아사녀를 후처로 팔아버릴 생각이었고 이 사실을 안 아사녀는 도망쳐 나왔다가 붙잡혀 돌아가는 길에 그림자못에 몸을 던져 사망한다.
주만은 정혼자인 경신을 만나, 자신은 아사달과 도망할 예정임을 밝히고 경신에게 누가 되지 않고자 한다며 파혼을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경신은 오히려 파혼으로 인해 주만이 달아나기 힘들어지지 않겠느냐며, 차라리 자신은 초행에서 창피를 당하더라도 잠깐일 테니 그 편이 낫다며 파혼을 하지 않고 주만의 사랑을 용인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중 금지는 유종에게 딸의 일을 아느냐며 조롱하고, 유종은 집에 와서 아내인 사초 부인에게 물어보지만 사초 부인은 딸이 도망할 수 있도록 오히려 이틀의 시간을 벌어 준다. 그러나 그 때 아사달은 콩콩이 할멈으로부터 아사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끝에 그림자못 가에 있는 사람 키만한 돌에 아내의 형상을 새기기 시작한다.
주만은 집에서 도망쳐 나와 그림자못까지 와서 아사달에게 같이 갈 것을 재촉한다. 하지만 이미 아사녀를 잃은 아사달은 주만을 거들떠볼 여력조차 없이 돌에 아내를 새기는 데만 집중한다. 결국 주만은 집안 하인들에게 붙들려 가면서, 그 돌에 자신을 새겨 줄 것을 간청한다.
유종은 부정을 저지른 딸을 태워 죽이겠다고 큰길에 불을 피우고[5] 마을 사람들은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 있는데, 서슴없이 불로 뛰어들던 주만은 말을 타고 달려든 경신에게 구출된다. 그러나 죽다 살아나서도 여전히 아사달을 찾는 주만의 사랑을 보며 경신은 전율한다.
아사달은 죽은 아내의 형상을 돌에 새기고 있었으나, 주만이 붙잡혀 간 이후로는 주만의 형상과 아사녀의 형상이 뒤섞여 괴로워한다. 그러다 두 여자의 형상이 하나로 합쳐지며, 아사달은 마침내 돌에 부처의 모습을 새기고 연못에 몸을 던진다.
4. 여담
- 역사에서는 석공이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원래 설화에서는 석공이 백제 출신이 아닌 당나라 출신이며, 당나라에서 찾아온 여인도 아내가 아닌 누이였다. 그러나 작가 현진건이 이를 남매간의 사랑이 아닌 부부간의 사랑으로 각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당나라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신라 하대의 풍토에 맞서 민족의 전통을 지키는 내용이 포함되다 보니 인물들의 국적까지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과정이 이렇다 보니, 인물들의 이름이 '아사달'과 '아사녀'로 설정된 것도 이 작품이 최초이다. 현대에 들어서 문화재 해설사들이나 지자체, 심지어 문화재청에서도 이를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로 취급하는데, 사정을 아는 문학도들은 코웃음을 칠 일이다.
- 서브컬처 식 인물 구도로 본다면 메인 히로인[6]이면서 패배한 히로인으로서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주만과, 서브 남주격인 경신이라는 매력적인 보조 인물을 그려내어 멜로드라마로서도 훌륭한 서사 구조를 보이고 있다.
- 경신과 그 형인 양상은 각각 원성왕과 선덕왕을 직접 모티브로 가져온 인물이라, 신라 하대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작가 나름의 재구성과 평가까지도 이루고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상대등도 진작 했겠지만 당학파와 나란히 있기 싫어서 낙향"한 김량상(성덕왕)[7]이나 김경신(원성왕)[8]에 대한 인물상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으며, 인물과 계보만 모티브로 빌려온 사실상 가공 인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친형제가 아니라 6촌 관계였다.
- 이 소설의 제목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의 이명인 무영탑(그림자가 없는 탑)에서 가져왔다. 아사녀가 그림자못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것이 이 탑의 그림자였지만 끝내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을 생각하면 실로 적절하고도 안타까운 작명 센스.
- 이 작품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그림자못'의 배경은 불국사에서 남서쪽으로 4km쯤 떨어진 영지(影池)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자체에서 이곳에 '영지설화공원'이라는 공원을 조성하여 이 이야기를 기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설에는 불국사 자하문 아래에 있었던 구품연지라는 설도 있다. 구품연지의 경우에는 진짜로 다보탑 그림자만 비치고 석가탑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각도였다고.
5. 관련 문서
[1] 아사달을 해하려는 금성의 무리들이 불국사 안에서 난을 피우면서 경비가 강화되었다.[2] 이게 바로 작품 제목의 출처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무영탑(無影塔) 즉 그림자가 비추지 않는 탑이라는 것.[3] 이때 아사달을 해하려는 금성 일당을 물리친 이가 경신이라는 것은 주만이 몰랐다.[4] 이찬의 잘못으로 보이는데, 일제 강점기 소설에서는 흔히 '이손'이라 쓴 예가 발견된다. 이광수의 <마의태자>나 홍효민의 <신라 통일> 등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5] 이는 김유신이 김춘추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기 위해, 김춘추와 관계를 맺은 여동생을 태워 죽이겠다고 불을 피운 데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6] 아사녀가 메인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본작에서 아사녀와 주만의 비중을 비교하면 주만이 메인 히로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굳이 분류한다면 아사녀는 타이틀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7] 김양상은 작중 배경인 경덕왕 대에 시중을 역임하였다.[8] 원성왕 대에 국학에 무게를 싣고 독서삼품과를 실시하기는 했으나, 당나라 유학생들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손자인 김준옹은 당나라에 유학시켰다가 돌아오자마자 대아찬으로 임명하였고, 이외에도 독서삼품과를 거치지 않은 당나라 유학생 출신을 등용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