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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2:52:18

미스다찾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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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상세3. 참고자료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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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yahoone.com/dachann02.gif
2000년 경 메인페이지의 모습
2004년 경 메인페이지의 모습

1996년 6월, 한국과학기술원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승현석이 연구용으로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메타 검색 엔진(통합형 검색 엔진)이다. 설립 이후에도 별도의 외부 지원 없이 개인적으로 운영했다. www.mochanni.com을 도메인으로 사용했으며,[1] 한국어판과 영어판 웹페이지를 제공했다. 그러다가 현재는 폐쇄되었다.

2. 상세

1995년 12월 최초의 한글 검색엔진인 코시크가 생긴 후 대한민국에는 검색 엔진이 우후죽순 세워지게 된다. 미스다찾니(일명 모찾니) 역시 90년대 중후반의 초기 대한민국 검색엔진 춘추전국시대의 주요 검색엔진 중 하나이다. 미스다찾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메타 검색엔진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메타 검색 엔진은 자체적인 검색 엔진을 보유하지 않고 복수의 타 회사들로부터 검색결과를 가져와서 자체적으로 편집한 결과를 보여주는 검색엔진을 의미한다.[2] 미스다찾니가 검색결과를 가져온 검색엔진은.... 너무 많아 이 곳에 다 적을 수가 없기에 링크로 대신한다.

미스다찾니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속도는 느리지만 당시의 다른 검색엔진과는 다르게 신문사 등 기관의 데이터베이스도 검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뉴스 검색 결과와 웹 검색 결과를 한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춰 나름의 틈새 영역을 구축했다. 다른 검색엔진에서 똑같은 웹문서가 검색된, 중복 결과의 경우에는 통합하여 하나만 보여주는 기능을 갖춰 '지능형(...) 검색엔진'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 후에도 제공하는 서비스에 거의 발전이 없었는데, 대한민국의 초기 검색엔진 중 상당수가 그랬듯,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거의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상업화의 과정 없이 대학생이 개인적으로 운영한 것이 이렇게 된 주요 이유이다. 그 결과 야후!, 네이버, 엠파스 등 상업화한 후발주자에게 따라잡혔다. 결국 2004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발전이 없어 도태됐지만, 90년대 중후반의 대한민국 초기 인터넷 환경 구축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는 의의가 있다.

3. 참고자료


[1] 오픈 극초기엔 zec.kaist.ac.kr/dachanni/search.cgi 로 카이스트의 도메인을 빌려 운영했다.[2] 즉, 미스다찾니의 검색결과는 알타비스타, 한미르, 심마니, 야후!, 라이코스 등 타 사이트의 검색 결과를 자체적인 알고리즘에 따라 순위를 매겨 편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