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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8 13:54:56

모리스코

1. 개요2. 스페인에서의 용례3.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용례

1. 개요


작은 무어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단어. 복수형은 모리스코스. 포르투갈어로는 모리스쿠라고 한다.

2. 스페인에서의 용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모리스코 추방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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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무데하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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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콩키스타 시기 개종 여부에 따른 호칭
<colbgcolor=#ddd,#383b40> 기존 종교 이후 종교
가톨릭 이슬람
가톨릭 모사라베
Mozárabe

(개종 X)
물라디
Muladí

(가톨릭→이슬람 개종)
이슬람 모리스코
Moriscos

(이슬람→가톨릭 개종)
무데하르
Mudéjar

(개종 X)

모리스코레콩키스타 완료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내 가톨릭 왕국에서 이슬람으로부터 가톨릭으로 개종된 사람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세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 왕국에 거주하던 무슬림 무데하르가톨릭으로 개종된 경우를 모리스코라고 한다.

다소 특이한 사례로 카나리아 제도에도 모리스코들이 상당수 거주하였는데 무슬림들이 카나리아를 정복했던 것은 아니고... 원래 카나리아 제도는 신석기 시대 수준의 문명을 유지하던 관체족들이 거주하던 섬이었으나 스페인이 점령한 후 북아프리카에서 사로잡은 해적이나 납치한 무슬림들을 데려다가 이 지역에 정착시켰다. 란사로테 섬은 인구의 절반이 이런 모리스코 후손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스페인의 순혈주의 풍토는 본토보다는 카나리아 제도 같은 협소한 섬 지역에서 폐단이 훨씬 더 심각했는데 스페인 반도에서야 누가 조상이 유대인이고 무슬림이었는지 알기 힘들어도 작은 사회가 되기 쉬운 섬에서는 이게 쉬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모리스코 후손들이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재산을 처분한 후 미국 플로리다 혹은 쿠바나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리코 등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3.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용례

파일:Lascastas.jpg

5번 그림

과거 백인 3/4, 흑인 1/4의 혼혈인을 지칭하던 용어. 백인 7/8, 흑인 1/8인 경우 알비노(Albino)이라고 불렀다.[1]

5번, 6번 그림에서 보듯 흑인 남성과 백인 혹은 백인 혼혈 여성 사이의 결혼도 드물게마나 있었는데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에는 자유민 흑인 인구도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항구에서 짐을 하역하는 일에 노예를 동원하면 몰래 도망갈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주로 해방노예 흑인들에게 맡겼다.[2]
파일:Castas_04mulata_max.jpg 파일:Cabrera_Pintura_de_Castas.jpg
스페인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혼혈 딸 물라타, 스페인인 남성과 물라타 사이의 혼혈 딸 모리스카

신대륙 식민지 초창기에는 흑백 각각 1/2 혼혈을 지칭하던 물라토와 구분되는 단어였으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혼혈이 워낙 다양하게 많이 진행되면서 사실상 물라토와 동의어가 되었다.[3]

비슷한 단어로 백인 3/4, 인디오 1/4 (메스티소 + 백인) 혼혈인을 의미하던 카스티소라는 어휘가 있다.

유의사항이 있는데 물라토, 모리스코, 알비노 같은 어휘들은 역사 같은 학술 관련 용어로만 써야 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페인계 흑백혼혈들에게 함부로 '이 사람은 모리스코야', '너 물라토지?' 이런 식으로 쓰면 매우 곤란해진다. 비교하자면 외국인이 "세종대왕은 조선 왕조의 왕이다."라고 말할 때와 "너 조선인이지?"라고 할 때 똑같은 단어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매우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데 해당 어휘들도 마찬가지다. 한두번은 실수로 몰라서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는데 잘못된 줄 모르고 계속 썼다가는 뉴스에 올라가도 할 말 없다.

[1] 6번 그림에 나오는 치노(Chino; 중국인...)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3/4 흑인, 1/4 인디오 혼혈을 의미하던 단어인데 그림에서는 모리스코와 백인 사이의 혼혈로 묘사된다. 과거 누에바에스파냐에서는 필리핀인들도 걍 다 중국인(치노, 치나)라 부르긴 했다. 구분 기준이 외모에 따라 대충 이루어진 셈이다.[2] 비교하자면 당시 부두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동 강도는 농장보다는 훨씬 빡세고 광산 노동자들보다는 조금 나았는데 광산 노동자들과 다르게 항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탈출하기 쉬웠음은 물론이다.[3] 물라토라는 단어도 의미가 변화했는데 대항해시대 이전에는 이베리아 반도 내 무슬림 남성과 모사라베 여성 사이의 자손들을 지칭하던 용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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