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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5:35:56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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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파일:모딜리아니.jpg
이름 아메데오 클레멘테 모딜리아니
Amedeo Clemente Modigliani
출생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왕국 리보르노
사망 1920년 1월 24일 (향년 35세)
프랑스 파리
직업 화가
가족 파트너 잔 에뷔테른 (1917년~1920년)
딸 잔 모딜리아니

1. 개요2. 생애
2.1. 불우했던 일생2.2. 사후
3. 작품세계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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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세기 초 활동한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현대화가에서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갔고, 사후에 인정받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고흐와 같이 자주 언급되며 그가 죽고 나서 자살한 아내도 비극적인 연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2. 생애

2.1. 불우했던 일생

1884년 7월 21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항구도시 리보르노에서 유대인 상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필라미니오 모딜리아니는 오래전, 이탈리아로 이민와서 성을 바꾼 유태인 집안 태생이었고 어머니인 에우지니에 가르신 역시 18세기에 이탈리아에 정착한 솔로몬 가신이라는 유대인 증조부를 둔 유태인이었다. 아버지가 광산 사업가로 큰 번영을 누려 어릴적에 모딜리아니의 삶은 꽤 부유했었다. 그러나, 10대 초반에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해서 아버지가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으면서 가난이 찾아온다.

모딜리아니는 태어날때부터 몸이 약해 잔병에 시달려야 했다. 아주 어릴적에 의사들이 자칫하면 어린 나이로 죽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그땐 아버지가 부유해서 온갖 고급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겨우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해지면서 10대때부터 역시 온갖 병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 모딜리아니와 형제 남매들은 외할아버지인 이사코 가르신이 돌봤는데, 이사코는 예술에 흥미를 가져서 어린 모딜리아니가 그림을 배우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13살에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겨야 했다.

14세에 리보르노 미술학교에 입학해 풍경화가 미켈리에게 데셍과 회화를 배웠다. 17세에 폐결핵에 걸려 요양을 위해 어머니와 카프리, 나폴리, 로마, 피렌체 등 관광지를 여행했다. 이때 티노 디 카마이노의 조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18세 되던 해 피렌체 미술학교에 들어가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그곳에서 1년만 배우고 19세에 베네치아 미술학교에 입학해 현대미술에 대한 흐름을 접했다. 1906년 22세 되던 해에 파리로 떠났고 콜라로시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다. 이때,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자 미국 국적을 가진 조각가 야곱 엡스타인(1880–1959)과 친구가 되었는데 당시 이름없던 조각가이던 엡스타인과 친하게 지냈다. 엡스타인은 모딜리아니가 죽은 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영국에서 경 작위를 받았고, 가난한 젊은 시절, 모딜리아니에 대해 회고하기도 했다.

23세 되던 해에 후원자인 폴 알렉산드르 박사의 권유로 앙데팡당 회원으로 가입했고 모리스 위트릴로와 친교를 맺었다. 24세 되던 나이에 『앙데팡당전』에 유화 여섯점을 출품했고 한동안 조각에 전념했다. 29세 되던 해에 프랑스에 온 러시아 화가 카임 수틴(Chaïm Soutine, 1893.1.13.–1943.8.9.)과 친구가 되었다.

30세에 몽파르나스로 거처를 옮겨 영국 시인 베아트릭스 헤이스팅스(1879–1943)와 사귀었고, 1916년까지 동거했다. 33세 되던 해 그의 전속화상이던 친구 즈보르프스키의 집에서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다. 이 때 19세의 미술학도인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1898.4.6–1920.1.26)을 만난다. 1917년 3월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지중해 연안의 코트다쥐르에서 동거를 시작했다.[1] 베르트 바이유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출품한 누드화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찰이 압수했고 전시기간도 단축되었다.

그림은 싸구려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고 가난에 허덕이며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모딜리아니는 술과 마약으로 버티는 신세가 되었고 당연히 건강은 더더욱 악화되었다. 1918년 건강이 약화되어 니스로 갔고 11월 29일 그곳에서 딸 잔이 태어났고 폴 기욤이 주최한 『젊은 작가전』에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함께 작품을 전시했다. 1919년 파리로 돌아왔고 잔이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다. 1919년 7월 7일, 잔과 공식적으로 결혼했지만 생활고로 인해 잔은 친정으로 가게 되었다. 잔의 부모는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통제했다. 1920년 1월 22일 결핵성 수막염 및 알콜 및 마약 중독으로 인해 파리 자선병원에 입원했고 1월 24일 35세에 사망해 페르 라세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잔은 장례식에서 그야말로 울다 미칠 정도로 슬퍼했다. 잔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는 그녀가 죽기 얼마 전에 다 그린 유작 <자살>에 나오는 그림 속 칼로 자살하는 여인이 그녀 자신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자살할까봐 오빠인 앙드레가 곁에서 지켜봤지만, 앙드레가 잠을 자던 1월 26일 새벽, 잠을 깬 잔은 뱃속에 든 둘째아이와 함께 4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만 21세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라간다.

2.2. 사후

살아 생전, 음식값으로 식당에 그림을 대신 줬다가 욕설과 함께 그림이 거리에 내던지는 굴욕을 당했던 모딜리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죽고 아내도 비극적으로 죽은 뒤 15년도 안돼 엄청난 재평가로 그림값이 1,000배가 넘게 올랐기에 지인들이나 친척들은 무척 안타까워했다. 아내 잔의 부모는 "남편따라 자살하지 말고 그대로 둘째 아이 낳고 살았더라면..."라고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

모딜리아니가 잔과의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인 잔 모딜리아니(1918–1984)[2]는 아메데오의 누나인 마르가리타가 양육했다. 화가가 되어 고생만 하다 죽은 남동생의 인생이 싫었던 마르가리타는 조카딸에게 부모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유대인이라서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에게 시달림을 받던 잔은 프랑스로 피신하기도 했다. 나중에 부모에 대해 알게 된 잔은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서 아버지 모딜리아니에 대한 자료를 모아 평전 『모딜리아니:인간과 신화』(1959)을 펴냈다.

모딜리아니에게는 잔과 만나기 전에 사귄 여성들로부터 적어도 최소 3명의 사생아들이 있었다고 생각되며[3] 그중 확실하게 그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건 잔과 처음 만난 연도인 1917년에 그가 만나던 여자들 중 하나인 시몬 티루(Simone Thiroux)에게서 태어난 제라르 티루(Gérard Thiroux)라고 하는 아들이다. 이 아이는 2004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앙리 마티스와 모네의 작품을 제치고 1916년작 소파에 앉은 누드라는 작품도 6900만 달러로 최고가로 팔렸고 2018년 경매에서도 1917년작 나부라는 작품도 1억 5천 720만 달러로 역대 최고가로 팔리면서 가치를 증명했고 1917년 나부는 중국 미술품 수집가 류이첸에게 팔렸고 모딜리아니의 다른 누드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3. 작품세계

그는 대부분 인물화를 그렸다. 그의 화풍은 1914년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초기의 작품은 다소 조화롭고 고전적인 느낌을 가진다면 후기의 작품들은 인물의 표현이 다소 비정상적이며 형태도 단순화되었다.[4] 그 이유로는 그가 회화를 잠깐 접고 조각을 했을 때 고대 에투르스크 조각과 아프리카 원시조각의 형태를 접했고 거기에 흥미를 느껴 인물을 세밀하게 그리기보단 내면적인 특징을 그리는데 힘썼기 때문이다.

주요작품으로 《첼로 연주자 The Cellist》(1909), 《여인의 두상 Head of a Woman》(1911), 《섕 수틴의 초상 Portrait of Chaim Soutine》(1916), 《붉은 누드 Red Nude》(1917), 《잔 에뷔테른의 초상 Portrait of Jeanne Hébuterne》(1918)등이 있다.

4. 기타

막스 오퓔스가 전기 영화 몽파르나스의 연인를 준비하다가 타계했고, 자크 베케르가 이어받아 완성했다.

그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 <모딜리아니>(Modigliani, 2004) 에서 배우 앤디 가르시아가 모딜리아니 역을 맡았다.

영화 007 스카이폴에 범죄집단이 그림을 불법거래하는 장면에서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 이 등장한다.

그것(영화)에 등장하는 스탠리가 무서워하는 그림이 모딜리아니의 화풍으로 그려진 피리부는 여인이다.

2011년 7월 3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도 나왔다.

그의 일생를 다룬 뮤지컬 <모딜리아니>가 나왔다.


[1] 한동안은 술도 줄이고 마약도 끊었다곤 하나 간혹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임신한 그녀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상대를 배려해주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2] 어머니 잔 에뷔테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어 이름인 조반나 에뷔테른이라 불렸다.[3] 그 아이들 중 하나의 어머니는 바이올라 헤이스팅스 이전에 사귄 모드 아브랑트(Maude Abrantes)인데 이 아이의 아버지는 확실하지 않다.[4] 가령 목을 길게 그린다든지,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다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