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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0:17:15

트리에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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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2.bp.blogspot.com/Hellenic_Navy_launched_trireme_Olympias_back_to_sea.jpg
HS 올림피아스(Olympias)
그리스 해군살라미스 해전 당시 사용된 아테네의 트리에레스를 복원하여 해사 생도 훈련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1985년 건조를 시작해 1987년 취역했으며, 길이는 36.9m, 폭 5.5m, 배수량 47톤, 승조원 200명이다.

1. 개요2. 명칭3. 역사4. 운용5. 발전6. 미니어처7.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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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리에레스(τριήρης, triērēs), 3단 갤리선 또는 삼단노선(三段櫓船)은 고대 유럽의 지중해 제국(諸國)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갤리선의 일종이었다.

2. 명칭

그리스어 명칭 라틴어 명칭 현대 영어 명칭 통용 한국어 번역명
모네레스(μονήρης, Monērēs) 유니레미스(Unirēmis) 모노림(Monoreme) 갤리선, 일단노선
디에레스(διήρης, Diērēs) 비레미스(Birēmis) 바이림(Bireme) 이단 갤리선, 이단노선
트리에레스(τριήρης, Triērēs) 트리레미스(Trirēmis) 트라이림(Trireme) 삼단 갤리선, 삼단노선
테트레레스(τετρήρης, Tetrērēs) 쿼드리레미스(Quadrirēmis) 쿼드러림(Quadrireme) 사단 갤리선, 사단노선
펜테레스(πεντήρης, Pentērēs) 퀸퀘레미스(Quīnquerēmis) 퀀커림(Quinquereme) 오단 갤리선, 오단노선

그리스어로는 '트리에레스'(τριήρης), 라틴어로는 '트리레미스'(trirēmis)라 불렸으며, 영어로는 '트라이림'(trireme)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세 겹의 층으로 된 배'이다. 비슷하게 '디에레스'(διήρης)는 '바이림'(Bireme), 뜻은 '두 겹의 층으로 된 배'라는 의미이고, '펜테레스'(πεντήρης)는 '퀸커림'(Quinquereme), 뜻은 '다섯 겹의 층으로 된 배'라는 의미이긴 하나 실제로는 '5명이 한 조가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서적에 따라 '3단 갤리선'으로 풀어 쓰거나 일본식 한자어인 '삼단노선'(三段櫓船) 또는 '삼단도선'(三段櫂船)으로도 칭한다. 다만 '삼단노' 또는 '노선', '도선' 등은 모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비표준어이며, '디에레스', '테트레레스', '펜테레스'의 경우에는 '이단노선', '사단노선', '오단노선'으로 쓰이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애초에 '일단노선'은 그냥 갤리선이라고 부르면 되어 쓰이는 예가 없다. 가끔 이런 노선들을 통칭해 '다단노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냥 갤리선이라고 부른다.

3. 역사

기원전 5세기,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과 아테네 일대에서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 젓는 자리를 복층으로 만들어 기동력을 높이는 방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흔히 사용되었으며, 유럽과 오리엔트를 연결하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그리스 일대로 전해졌다.

최초의 복층형 범선은 오리엔트의 것을 그대로 따와 만들어진 디에레스, 곧 이단노선이었다. 보다 복잡한 조선기술이 요구되는 트리에레스의 경우에도 시도는 있었으나 하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페니키아에서 자라는 삼나무는 목재의 특성상 물에 쉽게 불었기 때문에 설계에서 큰 난항을 겪었다. 이후 아테네에서는 전나무를 사용하여 3층의 배를 건조했고, 역사상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보낸 해군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다. 페르시아 전쟁의 여파로, 지중해 각지에 트리에레스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중세를 지나면서 트리에레스가 잊혀진 후, 근대에는 고전 역사서에 나오는 3단노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대의 리부르니안드로몬 같은 2단 노선은 노 하나에 2명이 붙은 형태라서, 3단 노선도 노 하나에 3명이 붙은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경우, 인간의 키에 한계가 있어서 3명 중 1명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거나 엉거주춤한 상태에 놓여서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고, 세 명이 모두 노에 힘을 줄 수 있도록 좁은 간격에 모아놓았다가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만큼 좁아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역사서에 분명 몇 번이나 3단 노선과 5단 노선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에, 전부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현대에 들어와 여러 연구를 종합해서 내놓은 해결책이 복원된 트라이림이었다.

4. 운용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Trireme_cut-fr.svg.png
일반적인 트리에레스의 노 배치 단면도.

아테네 해군 트리에레스의 표준적인 승조원은 함장 1명, 조타장 1명, 갑판장 1명, 행정장 1명, 항해장 1명, 군악장 1명[1], 돛 조종 수병 10명, 호플리테스 전투병 10명, 궁병 4명, 노잡이 170명[2]이었다. 함장은 함을 건조하는 건조비를 부담한 부유한 시민이 맡았으며, 때로는 2명의 시민이 함께 건조비를 부담하고 공동함장으로 취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실제 항해 중에는 조타장이 항해의 총책임을 맡았다.

파일:external/www.abc.se/olympram.jpg
함수에는 청동제 충각이 설치되어, 적함의 측면에 충돌하여 파손시킨 후 함선을 후진시켜 충각이 뚫은 파공에 해수가 들어가 침몰하도록 하는 페리플루스(periplous) 전술을 사용했고, 적함이 바로 침몰하지 않을 경우 함선에 승조한 궁병이 활로 공격한 뒤 호플리테스가 적함에 올라타 제압하는 전술이 사용되었다. 또 승조원의 숙련도가 높은 경우 적함을 스쳐지나가며 적함의 노를 충돌해 꺾어버려 무력화시키는 디에크플루스(diekplous) 전술이 사용되었다.


1990년에 복원한 올림피아스함의 항해실험. 나레이션에서 소개되지만 참여자들 모두 사전에 훈련을 하고, 통제에 따랐다. 하지만 이날 처음으로 갤리선의 노를 저어본 것이었다.

기록 및 복원한 올림피아스함을 통한 실험을 통해 판단하기로는 평상시 순항속도는 시속 5~6노트, 전투속도는 시속 7~8노트, 충각으로 충돌할 때의 충돌속도는 시속 9~10노트로 추정된다. Km로 환산하면 시속 9~11km, 12~14km, 16~18km이다.

통상 항해시에는 위에 나온 올림피아스함의 사진처럼 측면이 뚫려 있었지만 전투 직전에는 불이 붙거나 해서 방해물이 될 수 있는 돛과 돛대를 철거한 후 인근 육상에 올려놓았고, 측면에 보병용 방패(호플론)나 두꺼운 가죽 커튼을 쳐서 방어했다. 이후 함선의 구조가 점차 발전하면서 측면 돌출부를 만들어 상시 방어가 가능하도록 했다.

5. 발전

파일:external/www.cs.drexel.edu/quinquereme_2.jpg
각국이 해군력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커진 디아도코이 전쟁 때부터는 트리에레스를 확대한 펜테레스[3]가 이집트, 카르타고, 로마 등 지중해 국가 해군의 주력함이 되었다. 한편 국왕 전용의 기함으로는 10단 노선, 20단 노선, 그리고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1척을 건조한 '40단 노선'[4]이 있었다.[5]40단 노선에 대한 자료

그러나 로마가 지중해를 통일한 후에는 해전의 필요성이 사라져, 2단의 리부르니안 갤리선으로 함선이 축소되었다.[6]

6. 미니어처

러시아의 즈베이다에서 프라모델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파일:zvezda galley-vert.jpg

분명 인기는 많지만 그 빼곡한 노로 인해 제작 난이도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또한 그 때문에 가격이 범선 모델을 가볍게 돌파한다. 물론 미니어쳐 게임에서는 저런 모델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어척만을 붙여 놓고 백병전만을 재현하는 한정 상황의 게임을 하거나, 제작이 용이한 훨씬 작은 크기의 주석 배[7]들을 다수 이용하여 함대전을 즐긴다. 보다 간편하게는 페이퍼 크래프트로 만든 게임도 존재한다.

7. 미디어

파일:Ghuql2715n.jpg
파일:AST5820NDL2O16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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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로만갤리.png


[1] 피리를 이용하여 명령을 전달하거나 시간을 알려줬다.[2] 1층 갑판(탈라미오이) 54명, 2층 갑판(지기타이) 54명, 3층 갑판(트라니타이) 62명[3]5단 노선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용골이 없어 높이와 길이를 늘이는데 제한이 많았던 그리스 갤리선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노갑판은 여전히 3층이었고, 한 열의 노 3개 중 3층과 2층 노를 2명이 젓도록 해, 총 5명이 한 조가 되었다고 해서 5단 노선이라고 불렀다.[4] 20단 노선 2척을 이어붙인 쌍동선이었다.[5] 역시 실제 층수는 3층이었고, 한 조의 노잡이 수를 10명, 20명으로 한 것이었다.[6] 이후 로마 제국에 위협적인 해상 세력이 나타난 것이 4~5세기때로, 실제 해전의 필요성은 반달 왕국의 등장 이전까지 멀어져 있었다.[7] 1:600 정도의 크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