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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삼니움 전쟁 시기인 기원전 308년, 로마군이 자신들을 공격한 움브리아인들을 격퇴한 전투.2. 상세
기원전 308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가 삼니움 편에 가담한 에트루리아 원정을 감행했다. 그는 해안 도시 트라퀼리니와 40년 휴전 협정을 맺은 뒤 티베르 계곡에서 볼시니의 여러 요충지를 점령하고 파괴했다. 이에 전의를 상실한 에트루리아인들은 평화 협약을 맺어달라고 호소했다. 데키우스는 자기 선에서 평화 협약을 맺기를 거부하면서도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군에 1년 급여를 지급하고 모든 군인에게 튜닉 2벌을 제공하는 대가로 1년 휴전에 동의했다.에트루리아와 로마 사이의 이웃인 움브리아인들은 로마의 위세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은 에트루리아를 굴복시킨 로마가 자신들 마저 복속시키려 들 거라 여겼다. 이에 일부 에트루리아인들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병력을 편성한 뒤 에트루리아에서 로마로 돌아가던 데키우스를 저지했다. 그동안 다른 병력으로 로마를 급습해 타격을 입히려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원로원은 삼니움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를 긴급 소환해 움브리아인을 저지하게 했다.
룰리아누스는 며칠간 강행군한 끝에 페루시아 남동쪽의 움브리아 시인 메바니아에서 움브리아군과 마주쳤다. 움브리아인들은 로마군이 숙영지를 짓는 동안 급습했다.[1] 그러나 이어진 전투에서 로마군이 완승을 거뒀고, 움브리아인들은 죽은 자보다 사로잡힌 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로마군이 삼니움족과의 전쟁에 전념한 덕분에 대부분의 움브리아 도시들은 당분간 로마의 공세에서 벗어났지만, 움브리아 남쪽 끝의 오트리쿨룸 만은 이 시기에 로마와 동맹을 맺고 움브리아, 사비나, 아게르 팔리스쿠스 사이의 국경 도시로서 전략적 기능을 수행했다.
[1]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또다른 기록에는 룰리아누스가 병사들에게 연설하고 있을 때 움브리아인들이 달려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