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2-10-09 20:03:40

막시밀리안 율리시즈 폰 브라운

파일:Browne.jpg

1. 개요2. 일생
2.1. 초기 경력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2.3. 7년 전쟁

[clearfix]

1. 개요

Maximilian Ulysses von Browne

18세기에 활동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장성.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브라운은 1705년 10월 23일 바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율리시즈 남작 폰 브라운은 1690년 제임스 2세와 함께 영국에서 망명했다가 합스부르크 황실에 들어간 아일랜드계 귀족이었다. 1716년, 율리시즈 남작 폰 브라운은 카를 6세에 의해 제국의 백작이 되었고 어린 브라운의 삼촌인 게오르크 폰 브라운은 러시아군 원수가 되었다. 브라운은 이러한 가문의 막강한 영향에 힘입어 군부 내에서 빠르게 출세했다.

1732년 브라운은 27세의 나이에 삼촌이 이끄는 보병 연대의 대령이 되었고 1734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으며, 1735년 티롤에서 군사적 성공을 거둔 뒤 야전 사령관이 되었다. 1737년 브라운은 자신의 보병 연대인 제36 브라운 보병대를 맡았고 뒤이은 오스만 제국과의 전재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1739년, 브라운은 준장으로 진급하여 슐레지엔의 오스트리아군 사령부에 배속되었다.

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슐레지엔을 기습 침공하자, 브라운은 부족한 병력으로 적에 맞서 싸웠으나 끝내 슐레지엔을 잃고 모라비아로 후퇴했다. 그는 그곳에서 빌헬름 라인하르트 폰 나이페르크 장군의 군대와 합세한 뒤 1741년 4월 10일 몰비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 우익을 이끌었으나 아군의 패배를 막지 못했고 그 자신도 전투 중 중상을 입었다.

1742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참가한 브라운은 1745년 트라운 백작 휘하에서 복무하던 중 대장에 임명되었다. 1746년, 브라운은 이탈리아 전역에 파견되어 피아첸차 전투(6월 16일)과 로토프레도 전투(8월 12일)에 참가했다. 그리고 경기병대 선두 부대를 이끌고 아펜니노 산맥을 건너 제노아로 들어갔다. 이후 그는 연말에 남프랑스를 향한 침공을 개시했으나 실패하고 제노아를 잃게 되자 후퇴해야 했다. 이 철수 과정에서 그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 별다른 손실을 입지 않았다.

1747년, 브라운은 이탈리아의 모든 오스트리아군을 지휘하게 되었고 1748년 평화 협약이 체결된 뒤 이탈리아에서의 평화 조건이 이행되도록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후 1749년에는 트란실바니아 방면군 사령관이 되었고 1751년에는 보헤미아 사령관이 되었으며 1753년에는 육군 원수에 임명되었다.

2.3. 7년 전쟁

1756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작센 침공을 감행해오자, 브라운은 보헤미아에서 즉시 병력을 집결시킨 뒤 피르나에 포위된 작센군을 구원하고자 진군을 개시했다. 이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를 막기 위해 작센군을 포위한 일부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병력을 규합했고, 양측은 10월 1일 로보지츠 전투를 치른다. 브라운은 이 전투에서 우수한 지휘 능력을 발휘했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여러 차례의 기병 공격이 통하지 않자 "이들은 이전과 같은 오스트리아군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패배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대왕으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키스 공작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가 역습을 감행한 끝에 마침내 승기를 잡아냈고, 브라운은 어쩔 수 없이 후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철수 과정에서도 아군의 전력을 보전하는 데 힘을 들였고, 프로이센군은 감히 그들을 추격하지 못했다. 이후 브라운은 다시 피르나에 포위된 작센군을 구하기 위해 엘베 강의 반대편 둑에 있는 샨다우로 진군했으나 작센군이 항복해버렸다는 소식을 듣자 보헤미아로 철수했다.

1757년 로트링겐 공작 카를 알렉산더는 브라운을 밀어내고 육군 원수가 되어 오스트리아군의 최고 지휘권을 맡았다. 브라운은 이에 크게 좌절했지만 그래도 국가를 위해 그의 밑에 들어가는 걸 감수하기로 했다. 5월 6일, 결핵 말기였던, 브라운은 프라하 전투에서 아군의 우익을 지휘해 프로이센군을 상대로 대단히 잘 싸웠다. 그러던 중 프로이센군의 명장 쿠르트 크리스토프 폰 슈베린이 전사해 프로이센군이 동요하자, 브라운은 이 틈을 타 공세를 개시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 하나가 그의 다리를 날려버렸다. 그는 후방으로 후송되었고, 그가 중상을 입은 것을 목격한 오스트리아군은 격분한 나머지 적을 향해 무질서하게 돌격했다가 적군에게 측면을 찔러 무너지고 말았다. 브라운은 이 전투의 패배 책임을 떠안긴 채 향년 52세의 나이로 6월 26일 프라하 요새에서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