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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16:58:18

마틴 키언

영국방송공사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파일:Martin Keown.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마틴 키언
Martin Keown
본명 마틴 레이먼드 키언
Martin Raymond Keown
출생 1966년 7월 24일 ([age(1966-07-24)]세)
잉글랜드 옥스퍼드셔 옥스퍼드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6cm
직업 축구선수 (센터백 / 은퇴)
해설자
경력 선수 아스날 FC (1980~1984 / 유스)
아스날 FC (1984~1986)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1985 / 임대)
아스톤 빌라 (1986~1989)
에버튼 FC (1989~1993)
아스날 FC (1993~2004)
레스터 시티 FC (2004~2005)
레딩 FC (2005)
웸블리 FC (2012)
방송인 영국방송공사 (축구해설가)
국가대표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3경기 2골 (잉글랜드 / 1992~2002)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스날 FC 1기2.2. 아스톤 빌라 FC 시절2.3. 에버튼 FC 시절2.4. 아스날 FC 2기2.5. 말년2.6. 국가대표 경력
3. 은퇴 이후의 삶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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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틴 레이먼드 키언은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다. 선수 시절 다부진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에게 거친 몸싸움을 가해 공을 뺏는 파이터형 센터백이었다. 그의 투지력은 실로 대단해서 경기 도중에 피를 흘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나 전혀 움추러들지 않고 탁월한 수비력을 과시해 아스날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선수 인생을 은퇴한 뒤에는 BBC 축구 패널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스날에 대한 칼럼을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아스날 FC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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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으로 표시된 선수가 1984년 아스날 프로팀에 올라온 마틴 키언이다.

키언은 1966년 7월 24일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옥스퍼드의 게일릭 풋볼 팀에 입단해 축구 기술을 익히다가 1980년 14살의 나이로 아스날 축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이후 유스팀에서 4년간 활동한 그는 1984년 프로팀에 올라왔고 1985년 브라이튼으로 임대되어 반 시즌 동안 23경기에 출전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후 1985년 11월 23일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아스날 선수로서 첫 데뷔전을 치렀다. 키언은 1986년까지 22경기에 출전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1986년 5월 14일 아스날에 부임한 조지 그레이엄 감독은 키언이 자신의 계획과 맞는 유형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해 6월 9일 아스톤 빌라로 2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이적시켰다.

2.2. 아스톤 빌라 FC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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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키언이 이적할 당시, 아스톤 빌라는 1982년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할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2부리그 강등을 간신히 모면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키언이 이적한 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986-87 시즌 초반, 아스톤 빌라는 강등권에 뜰어지고 말았고 그레이엄 터너 감독은 결국 9월 14일 경질되고 말았다. 키언은 이런 상황에서도 리그 36경기를 출전하며 분전했지만 아스톤 빌라가 2부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후 아스톤 빌라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그레이엄 테일러는 팀을 리빌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때 키언은 테일러의 중용을 받았고 테일러는 2부리그에서 단 2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를 출전해 팀이 2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해 1부리그로 승격하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키언은 다음 시즌에도 아스톤 빌라가 1부리그에서 잔류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던 1989년 8월 7일, 키언은 7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에버튼 FC로 이적했다.

2.3. 에버튼 FC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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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90 시즌, 에버튼은 크리스마스 무렵 리그 선두를 질주하며 리그 우승을 향한 꿈에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후 후반기에서 성적이 떨어져 결국 6위에 그치고 말았다. 키언은 이 시즌에서 20경기를 출전했다. 이후 그는 다음 시즌에 24경기에 출전했고 1991-92 시즌에는 단 3경기만 결장하고 나머지 리그 경기를 모두 출전했다. 그후 1992-93 시즌 13경기를 출전하고 있던 키언은 1993년 2월 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친정팀 아스날로 이적했다.

2.4. 아스날 FC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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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FA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리고 있는 토니 아담스와 마틴 키언



1993년 2월 아스날로 복귀한 키언은 에버튼 때 FA컵과 리그컵에 출전했기 때문에 아스날에서는 두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고 팀이 FA컵과 리그 컵 우승을 달성하는 것을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그는 리그 16경기에 출전해 스티브 볼드와 좋은 경쟁자가 되어줬다. 그후 그는 토니 아담스와 함께 1990년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갖춘 선수로 각광받게 된다. 그는 조지 그레이엄 감독의 지휘하에 1993-94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달성하는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 (다만 파르마와의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선 결장했다.) 이후 조지 그레이엄이 에이전트에게 뇌물을 받고 선수를 영입한 사실이 드러나 경질되는 바람에 팀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그는 아스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고 아르센 벵거가 부임한 후에도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7-98 시즌 아스날이 리그와 FA컵 우승을 달성해 더블을 기록했지만 그는 고작 18경기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1999년 FA컵 맨유와의 준결승전 때 라이언 긱스가 화려한 드리블 돌파로 선수들을 제치며 감각적인 골을 기록했을 때[1] 잘못된 수비 위치 선정과 허술한 태클 시도로 인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에 키언은 리 딕슨이 긱스의 슈팅을 허용한 것이라며 동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여 비판받았다. 그렇지만 1999년 경쟁자였던 스티브 볼드가 선덜랜드로 이적하면서, 그는 비로소 핵심 선수가 될 수 있었다.

2000-01 시즌, 키언은 챔피언스리그 샤흐타르 도네스크와의 경기에서 아스날이 2: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2골을 기록해 극적인 3:2 역전승을 기록하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해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또한 그는 2001-02 시즌에 아스날이 리그와 FA컵 우승을 달성해 더블을 기록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2002-03 시즌엔 아스날의 9번째 FA컵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후 2003-04 시즌, 키언은 백업 선수로서 아스날이 무패 우승을 달성하는 데 한 몫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 시즌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와의 리그 경기에서 뤼트 판니스텔로이의 페널티킥 실축 이후 돌아서는 그를 가격하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는데 마침 다른 아스날 선수들도 반니에게 물리적인 행동과 조롱을 하여 양 팀간의 패싸움 직전까지 가면서 과열되었다.# 2004년 여름 레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2.5.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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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언은 레스터 시티로 이적한 후 6개월동안 뛰다가 2005년 1월 레딩으로 이적했다. 그후 그는 2005년 여름까지 뛴 후 선수 인생을 은퇴했다. 그후 7년이 지난 2012년 6월, 그는 아마추어 축구 팀인 웸블리 FC에 임시로 입단해 레이 팔러, 대니 디치오, 제이미 모레노, 그레이엄 르 소, 클라우디오 카니히아, 브라이언 맥브라이드, 그리고 데이비드 시먼과 함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FA 기념 경기에 출전해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던 팬들에게 뜻깊은 시간을 안겨줬다. (당시 웸블리 FC의 임시 감독으로 테리 베너블스가 부임해 이 기념경기를 지휘했다.)

2.6.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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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언은 잉글랜드 U-16 대표팀과 U-18 대표팀에서 종종 발탁되어 경기를 치렀고 U-21 대표팀에선 주전 선수로서 8경기를 출장했다. 그후 1992년, 그는 프랑스와의 친선경기 때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유로 1992 대회에서 대표팀 주전 선수 마크 라이트가 부상을 당하자 그의 공백을 메꾸는 역할을 담당해3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대표팀 새 감독으로 부임한 테리 베너블스는 그가 너무 카드를 자주 받고 제 위치에서 줄곧 벗어나 위험을 초래하기 일쑤라는 이유로 대표팀에 기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7년 베너블스가 물러난 후 새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글렌 호들은 그를 대표팀에 복귀시켰고 키언은 1998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었지만 경기에 뛰지는 못했다.

이후 키언은 케빈 키건 감독의 중용을 받았고 유로 2000 대회 때 2경기를 뛰었다. 이후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부임했을 때도 월드컵 지역 예선 전에서 종종 기용되었고 2002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었지만 역시나 월드컵 본선엔 단 한 차례도 기용되지 못했다. 잉글랜드가 월드컵 8강전에서 브라질에게 패해 탈락한 뒤, 키언은 대표팀 선수를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43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3. 은퇴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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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언은 현재 BBC 축구 패널로서 'Match of the Day'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고 TV3 채널에서 아일랜드 방송국 해설위원으로서 챔피언스리그 중계를 맡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아스날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의 칼럼은 2011-12 시즌 벵거를 경질하라는 여론이 팽배했을 때 끝까지 벵거를 지지했을 정도로 친 벵거 성향이 짙다. 하지만 최근엔 벵거가 떠날 때가 되었다며 아스날이 새 감독을 찾아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 경력 내내 메수트 외질을 죽어라 깠다. 한동안 까일만한 적이야 있었지만, 문제는 잘 하는 중에도 그랬던 것. 특히 유로파 리그 4강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패했을때 그나마 밥값 해준게 외질인데, 게을러 터졌다고 깠다. 당연히 해외 및 국내 구너들은 어이털리고 어리둥절해 하는 중 외질 또한 키언이 본인을 집요하게 비난하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간접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결국 외질의 에이전트가 키언의 커리어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여 더 이상 그냥 두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의 BBC 중계를 하고 있기도 하다. 우루과이와 이집트의 경기를 중계하는 와중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입은 부상으로 선발출전하지 못한 모하메드 살라를 자기 현역 시절 상대였으면 30초만에 담궈버렸을 거라고 어록을 남기셨다.

2020년엔 손흥민이 푸스카스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단 발언을 하며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

4. 수상



[1] 일명 ‘사과나무 골’로 알려진 긱스의 가장 유명한 득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