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d700><colcolor=#b70707> 제7대 스페인군 총사령관 마누엘 디에스알레그리아 Manuel Díez-Alegría | |
출생 | 1906년 7월 25일 |
스페인 왕국 아스투리아스 리아나스 | |
사망 | 1987년 2월 3일 (향년 80세) |
스페인 마드리드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과달라하라 공병사관학교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중장 |
경력 | 스페인군 총사령관 |
1970년 7월 23일 ~ 1974년 6월 14일 | |
주이집트 스페인 대사 | |
1976년 2월 20일 ~ 1978년 6월 5일 | |
참전 | 스페인 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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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군인으로, 제7대 스페인군 총참모장을 역임했다.2. 생애
17세의 나이로 과달라히라 공병사관학교에 입교했고, 1929년 임관해 마드리드의 무선전선 및 차량화 연대에 배속되었다.1936년 7월 전쟁대학교에서 1학년 과정을 마친 후 아스투리아스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7월 17일 모로코 주둔 스페인군이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스페인 내전으로 번지자 공화파 민병대의 추적을 피해 아스투리아스 바루 근처의 어느 집에서 418일간 숨어지냈다. 1937년 9월 7일 국민전선의 나바라 제1여단이 라네스에 입성한 후 국민전선에 합류했다. 이후 북부군 사령관 피델 다빌라 장군에 의해 제1여단 참모부에 배치되어 리바데셀라와 칸가스 데 오니스 점령에 참전했고, 11월 부대가 사단으로 개편된 후 대위로 진급했다.
1939년 11월 내전으로 중단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참모학교에 편입되었다.
1945년 참모학교의 교관이 되어 프랑스 주둔 미군이 철수도중 폐기한 무기와 차량들을 회수하기 위해 프랑스로 파견되었다. 다음해 1946년 1월 스페인 육군통신소에 배치되었고, 그해 9월 주브라질 스페인 대사관의 국방무관에 임명되었다.
1958년 부르고스 공병사관학교 교장에 부임했으며 1961년 1월부터 약 4개월간 미국에서 공부한뒤 준장으로 진급했다. 1964년 소장으로 진급 및 스페인 육군 고등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68년 미군 핵무기 기지 주둔 기간을 연장협상 위해 사절단장으로 워싱턴 D.C.에 방문했다. 미군 합동참모본부와 약 2년간 협상한 끝에 기지 주둔을 5년 연장하는 보상으로 무기구입료 1억 2천만달러를 대출받기로 합의했고, 귀국한 직후 제7대 스페인군 총사령관에 취임했다.
그러나 1974년 비밀리에 루마니아에 방문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과 면담한 것이 문제가 되어 6월 14일에 해임되었다. 일각에서는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이후 프랑코가 권좌에 위협을 느껴 해임시킨 것으로 보고있다.
프랑코 사후 1976년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에 의해 주이집트 스페인 대사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