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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21:53:10

리처드 라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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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21212><colcolor=#fff> 리처드 라미레스
Richard Ramirez
파일:리처드 라미레스 머그샷.jpg
본명 리카르도 레이바 라미레스 무뇨스
Ricardo Leyva Ramirez Muñoz
별명 엘 마타도르,[1] 나이트 스토커[2]
출생 1960년 2월 29일
텍사스주 엘패소
사망 2013년 6월 7일 (향년 53세)
캘리포니아주 그린브레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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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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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신체 185cm
가족 아버지 훌리안 라미레스(Julián Ramirez)
어머니 메르세데스 무뇨스(Mercedes Muñoz)
배우자 도린 리오이(Doreen Lioy)
범죄 정보
혐의 살인, 살인미수, 성폭행, 강도
범행 1984년 ~ 1985년
체포 1985년 8월 31일
형량 사형 (가스형)
피해자 14명

1. 개요2. 생애3. 체포 후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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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212A133F57E1BEF01C.jpg
"별 일 아니야. 죽음은 도처에 있다구. 여러분 나중에 디즈니랜드에서 만나자구요."
- 법정을 나가면서
미국의 연쇄살인범, 연쇄강간범. 1984년부터 1985년에 걸쳐 로스앤젤레스 교외를 중심으로 무차별적으로 민가를 습격하여 폭행, 강간, 강도 등을 저지르고 13명을 살해했다.

2. 생애


텍사스주 엘패소의 가난한 멕시코계 가정에서 태어난 라미레스는 사춘기 전까지는 장난기 많지만 또래관계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전해지지만, 가정불화로 인해 어머니가 철도 노동자 아버지[3]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그런 아버지 밑에서 불안정한 사춘기를 보낸다. 심지어 아버지는 라미레스에게 혼을 낸답시고 아이를 하룻밤 동안 묘지에 묶어두고 오는 등 온전치 못한 가정환경이었다.

게다가 라미레스는 허약했다. 어머니는 라미레스와 형제자매들을 임신한 상태에서도 부츠 공장에서 일했는데, 때문에 그 집안의 가족들 대부분은 크고 작은 병치레를 했었다. 이 영향인지 치료를 받아 성장하면서 나아졌지만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종종 쓰러질 정도로 발작에 시달리고, 서랍장에서 놀다가 머리를 다쳐 정신을 잃기까지 했는데 이 시기에 전두엽을 다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실제로 강력범죄자들 중에서는 전두엽에 이상이 있는 탓에 충동적이고 공감력이 떨어졌던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춘기에 들어서며 일이 제대로 꼬이기 시작했다. 라미레스의 사촌형은 베트남 전쟁에서 대단히 활약했던 참전용사였는데, 12살의 라미레스를 자주 초대하여 대마초를 함께 피우고, 전쟁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민간인들의 살인을 신속하고 은밀하게 처리했던 방식을 알려주었다. 심지어 당시 본인이 살해했거나 강간했던 여성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여주는 등의 행동으로 사촌동생에게 죄의식이란 감정 자체를 결여시키는데 기여했다. 그 중에는 죽인 베트남 여성의 잘린 머리 옆에서 자랑스레 포즈를 취하며 찍은 사진도 있다고 하니 말 다했다. 훗날 그 사촌형은 결국 아내(라미레스의 형수)를 총으로 살해하기에 이르지만 문제는 그 현장에 라미레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촌은 전쟁 후유증과 정신이상을 이유로 정신병원에 2년 입원 후 무죄로 풀려났다.

이후 친누나의 집에 얹혀 살게 된 라미레스는 관음증이 있는 매형의 영향으로 동네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거주자들의 성생활이나 일상생활을 엿보는 것을 일삼았다.

라미레스는 아직 고등학교 재학중 모텔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마스터키를 가지고 손님들의 귀중품을 훔치는 짓을 저지르다가 한 번은 객실에 침입해 샤워를 끝마친 여성을 성폭행하려 했지만 발각됐고, 여자의 남편이 라미레스를 붙잡아 때려눕혔다. 하지만 부부는 타주에서 여행 중이었던 터라 이 일을 잊고 싶었는지 아니면 더이상 관여되고 싶지 않아서인지, 증언을 거부했고, 라미레스는 기소되지 않았다. 1982년 22살이 된, 라미레스는 로스앤젤레스로 갔고, 그곳에서 마약을 복용하고 운전을 하다가 걸려서 전과를 남기게 되었다.

그 후 한밤중 창문이 열리거나 밖에서 열 수 있는 가정집에[4] 침입해 방에서 잠을 자는 여자아이들을 납치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성폭행하는 범죄들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따로 폭행은 하지 않고 '경찰에게 신고하거나 네 가족에게 데려와달라고 해' 라고 말하며 주유소 근처 등에 내려주는 등 목숨은 살려줬으나, 이 범죄들이 걸리지 않자 점점 행위의 강도가 세지더니 마침내 강도 살인으로 변했다.

1985년 봄부터는 훔친 차를 몰고 로스앤젤레스 외곽의 주택가를 배회하며 강도짓을 벌일 만한 집이나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범인 수색을 강화하자 라미레스는 먹잇감을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라미레스는 대개 코카인에 취해 한껏 들뜬 상태로, 불 꺼진 주택에 몰래 침입했고, 부부가 잠들어 있는 경우 먼저 남편을 죽인 다음 아내를 강간하고 포악하게 다루었다. 한 번은 포줄을 간신히 끊어 탈출한 여성이[5] 총을 꺼내 쏘려는 것을 보고[6] 꼭지가 돌아버려 여성을 마구 난도질하고 여성의 눈알을 산채로 도려낸 후 그것을 기념품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1984년 6월부터 1년 뒤 라미레스가 체포될 때까지 LA 주민들은 마치 악마가 돌아다니기라도 한다는 듯 겁에 질려 살았다. 언론은 라미레스에게 '나이트 스토커(Night Stalker)'라는 별명을 붙였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림자 속에 가려진 미치광이는 범행 대상의 연령이나 성별, 인종을 가리지 않았다. 라미레스는 80대 여성을 강간했고,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젊은 엄마를 고문했다. 라미레스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들의 몸, 혹은 벽에 악마의 오망성 문양[7]을 남기기도 했다.

범행대상이 주로 번듯한 도시 중산층 가정집에 침입해 부부를 살해하는 등 워낙 범행수법이 잔인하고 충격적 악마적이어서 80년대에는 언론에서 매우 센세이셔널하게 대대적으로 다루어졌고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도 매우 크다. 일반 미국시민들이 미국이라는 사회가 범죄에 대해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고 느껴서 공포에 떨게 되었다. 이전에는 개방적이던 미국 사회가 1980년대 들어 밤에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길에 지나는 낯선 사람을 괜히 겁내고 집에 총기를 두는 등의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이 일상화되고 타인에 대한 불신이나 경각심이 크게 높아진 계기를 만들었다.

한번은 주거침입 후 16살 소녀를 살해하려 칼을 찾던 중 반항하는 소녀를 전화기 줄로 감아 목을 조르는데, 줄에서 불꽃이 순간적으로 촉발하는 것을 보고 예수가 강림하여 이 소녀를 살렸다고 믿어 살려둔 채로 나왔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멕시코계인이라 딴에는 대단히 종교적인 듯하다.[8]

1985년 8월, 라미레스는 한 남녀를 습격했다. 남자의 머리에 총을 세 차례 쏘고[9] 여자를 강간한 후 금은품을 뺏고 구타하며 "나는 사탄을 사랑한다."라고 말하게끔 협박하였으며 더 이상 귀중품이 없다는 사실을 "사탄에게 맹세하라"며 폭행, 그녀에게 "나이트 스토커가 왔다 갔다고 전하라"[10]며 그들의 차를 훔쳐 달아났다. 이후 경찰은 도난당한 차량을 발견해 지문을 채취했으며, 그것이 전과자 라미레스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라미레스의 얼굴 사진은 TV 방송을 타고 즉시 전파되었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라미레스는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등 대범히도 본인의 신원을 감추는 데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며칠 후 애리조나에 사는 형의 집에 찾아가지만 형을 만나는데 실패하고,[11] 제발로 로스앤젤레스에 돌아왔다. 아직 로스앤젤레스를 뜨지 못했을 것을 대비하여 버스 터미널에는 라미레스를 붙잡기 위한 경찰이 즐비했고, 수 차례 경찰들을 지나치기도 했지만 어쩐 연유인지 경찰은 라미레스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라미레스를 알아본 시민들이 버스 터미널에서부터 그를 추격하였으며 라미레스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으나 결국 붙잡혀 집단구타를 당했다. 제때에 경찰이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라미레스는 성난 군중들 수백 명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

3. 체포 후

파일:R7ㄴㄴ20x0.jpg

14개월에 걸쳐 진행된 재판은 방송 덕분에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졌다. 라미레스의 외모나 사진이 퍼지자 그에게 매료된 여성들이나 우상으로 삼은 이들이 방청을 하러 몰려들어 자리가 없어 밖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많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도 이런 점을 이용해 주목을 받고 싶어 선글라스를 쓰고 오거나 방청석을 향해 손짓을 하거나 미소를 짓는 등 전혀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기자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심지어 본인의 기소를 담당한 경찰을 쏴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녀 재판 당일 온 감옥과 재판장에서 대대로 엄격한 탐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재판날 배심원중 한명이 나타나지 않아 재판이 몇 시간 연기되었는데, 그날밤 그 여성이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며 배심원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된 희대의 살인사건에 개입되고 싶은 자들을 옥중에서 조종하며 살인의 배후에 라미레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로 타당해보이는 상황에 온 미국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수사결과 해당 배심원은 무관한 이유로 전 남자친구에게 총기로 죽임당한 것이며, 후에 그 전 남자친구는 호텔에서 총기로 자살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학대하기는 했지만 삐뚤어진 사랑인지 일부러 아들에게 유리한 알리바이 증언을 하거나, 마약이 아들을 망쳤다고 남 탓으로 돌리거나, 사형만은 막아달라고 변호인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과도하게 체벌을 하는 등 굉장히 학대적인 부모였긴 했어도 라미레스도 체포되기 직전 용의선상이 좁혀지며 궁지에 몰리자 가족들에게 돌아가려 했었다. 그래서인지 체포된 후 가족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 유일하게 한번 눈물을 흘렸다.

많은 살인마(혹은 용의자)들에게 그렇듯 라미레스를 지지하는 열광적인 팬들이 법정에 몰려와 팬레터와 애정이 담긴 문구들을 보여주었다.[12] 악명 높은 미치광이 살인범에게 매료된 이유를 묻자 한 젊은 여성은 “처음 라미레스를 보았을 때 무척 잘생긴 걸 알았는데, 지금까지 그를 제대로 이끌어준 사람이 없어서 삶을 망친 걸로 안다”고 말했다. 나중에 라미레스는 자신을 추종하던 한 여성과 결혼식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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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레스와 결혼식을 올린 도린 리오이

이 도린 리오이(Doreen Lioy)[13]라는 여성은 가족들에게서 의절을 당하면서도, 살해위협을 당하면서도 "나는 라미레스의 결백을 믿는다"며, 한편으로는 본인의 행동이 타인들에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을 인지한다는 발언도 했다. 본인의 친구가 살인마의 뉴스를 접하고 난 후 귀엽다고 코멘트하며 구애편지를 쓰는 등의 행동을 일삼는다면 "쟤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이 들 것이라고. 하지만 본인은 아이를 항상 간절히 원했고 평범한 삶을 일구는 꿈을 꾸었다며 그것이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지금은 그보다도 소중한 다른 꿈으로 대체했다고 말하는데, 기자가 그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건 바로 리처드와 함께 하는 것이죠"라고 했다. 또한 라미레스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지만 결국 라미레스가 병으로 죽기 불과 몇달 전 헤어졌다. 법적으로는 라미레스가 죽은 시점까지 서류상으로 아내였다.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2013년 림프종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도 꽤 오랫동안 살았는데 이유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사형 집행을 꺼리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주의 주민들은 사형의 유지와 집행에 적극 찬성하지만 정부에서는 폐지하고 싶어도 어쩌지 못하니 일단 선고는 하되 집행은 안 하고 사형수 독방에 사실상 종신형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사실 건장한 신체에다 공포스런 활동적인 이미지와는 별개로 라미레스는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었다. 그의 어머니는 부츠 공장에서 일했는데,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유독 가스에 노출된 영향으로 라미레스의 형제자매들은 호흡곤란에서부터 뼈 기형까지 모두 선천적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수업 중에 쓰러져 간질 진단을 받았고, 게다가 고등학생 때는 마리화나, LSD 등에 빠져 탈선까지 해 관리를 했어야 할 젊은 나이에 몸을 막 쓰다가 감옥에서 여생을 보냈으니 신체가 안 망가질 리가 없다.

4. 기타



[1] El matador, 스페인어로 살인자라는 뜻이며 실제로는 싸구려 타블로이드지에서 붙여준 '나이트 스토커'라는 별명보다 이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체포 직전 시민들에게 발견, 붙잡혀 구타당할 때도 시민들이 'el matador'라고 불렀다고 한다.[2] The Night Stalker. 타블로이드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원래 LA 시민들이 부르던 별명이 아니었던 듯하다. 야밤에 무차별적으로 침입해 가족을 전부 살해하는 범행 방식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리처드 라미레스가 좋아했던 곡인 AC/DC의 'Night Prowler'에서도 영향을 받은 듯하다.[3]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는 멕시코에서 경찰 출신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경찰 출신 연쇄살인범들은 많다. 미하일 포프코프, 제라드 셰이퍼, 연속살인범이긴 하지만 우범곤 등. 공권력의 권위와 통제력에서 그 원인이 추측된다.[4] 요즘 미국에서는 상상도 안 가겠지만 당시에는 빈곤층 거주 구역이라면 모를까 이웃집들이 서로 밀집해 있는 중산층 주택가에 태연하게 침입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거기에 더운 기후의 지역이었던 지라 애초에 창문에 잠금 장치를 하지 않거나 대놓고 열어두는 사례가 빈번했다.[5] 이번에도 역시 여성의 남편은 이미 라미레스가 쏴 죽인 상태였다.[6] 불행히도 장전이 되어 있지 않았다.[7] 라미레스의 중요한, 대표적인 시그니처이다.[8] 실제로 멕시코인들은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다.[9] 장시간의 수술 끝에 총알 두 개를 제거한 뒤 놀랍게도 살았다고 한다. 안구를 심하게 훼손당한 후 포박당한 여자친구가 그 와중에 정신을 차려 줄을 끊고 이웃집으로 간신히 몸을 끌고 가 약혼자가 죽을 위기라며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10] 한때 가장 유명한 살인마가 될 것이라는 등 발언했던 것을 보아, 유명세를 상당히 즐긴 것으로 보인다. O. J. 심슨의 재판 이전까지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희대의 재판이란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본인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11] 아마 이미 캘리포니아 및 서부 지역의 헤드라인 뉴스의 주인공이 된 동생을 일부러 피했을 가능성이 있다.[12] 이렇게 범죄자에게 강력한 애정을 갖는 증상을 히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 또는 보니와 클라이드 증후군이라고 하며, 이는 외모지상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현대에 와서 갑자기 나타난 증후군도 아니다.[13] 라미레스보다 열 살 정도 연상이었으며, 출판사 혹은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던 고학력 상류층 여성이었다.[14] 실제로 김대두는 경기도 등지에서 외딴집만 골라 강도살인을 했다.[15] 정두영은 라미레스처럼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으나, 범행 방식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잔인했다.[16] 다만 이건 헤어스타일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해서 이기도 하다.[17] 파일:nightstalke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