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 생애
1917년 12월 20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9년에 도일하여 공부하면서 반일 학생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해방 후 도쿄 도츠카 국어강습소 전임교원으로 조선어 보급 운동을 하였으며, 조련 결성 이후 중앙 문화부 차장, 중앙고등학원 학감 등으로 사업했으며, 1948년 9월, 재일조선교원 동맹 위원장, 1950년 10월부터 1955년 4월까지 조총련 학습을 위해 세워진 출판사인 학우서방 교과서편집원 및 도쿄의 조선중고급학교 강사, 중앙조선사범전문학교 교장 등으로 일하며 교육 문제를 맡았다.1955년 5월 25일, 조총련 결성 이후 교육부장에 선출, 1961년 5월, 조총련 제6차 전체대회에서 해임되어 조선대학교 부학장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조선대학교 학장으로 승진, 1972년 12월까지 재임하였다. 1967년 12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된 이래로 5,6,7,8,9기까지 재선되었다. 1972년 12월 28일, 조총련 부의장 김병식이 한덕수 의장을 몰아내고 자신이 조총련을 장악하려다가 숙청되자 후임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78년 9월 4일,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또 받아 이중수훈자가 되었다. 1983년 5월, 제1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84년엔 그가 한덕수를 숙청하고 새 의장이 되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
1990년 8월 15일, 조국통일상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으며, 1995년 9월 21일 10시 20분에 7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중앙인민위원회와 조국전선은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리진규동지의 생애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충성과 효성으로 수놓아온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투쟁의 한생이었다."라고 칭송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후임 제1부의장으로 1998년 5월, 조총련 18차 전체대회에서 서만술이 선출되었다.
3. 수훈
- 이중 김일성훈장.
- 6중 국기훈장 제1급.
- 김일성상.
- 로력영웅.
- 조국통일상.
4.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