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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20:13:44

리두찬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항일 빨치산 1세대 출신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

1916년 10월 24일에 태어났다. 1932년 9월부터 김일성과 함께 반일운동에 참가했다고 하며, 훈춘현 차흥동 반일회원으로 반일 삐라를 뿌리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1933년 3월, 항일 빨치산에 가담,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인민군 창건에 참여했으며 1949년 2월 7일, 강상호, 박금철, 전창철, 최종학, 허봉학, 김창봉, 서철, 안영, 전문섭과 함께 국기훈장 3급을 받았으며 6.25 전쟁에 참전했다. 하지만 눈에 띠는 중요한 직책을 맡지는 않았는지 북한에서 자세한 직책을 공개하진 않았다. 남한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1963년 11월, 평양사범대 학장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72년 12월, 5기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상설회의 의원에도 선출되었다. 1973년 7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1977년,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선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 1977년 2월, 지병학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81년 5월에 군사대학 총장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 1984년 4월, 오백룡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4년 6월 26일, 14시 10분에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최종계급은 중장이었다.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전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내놓으신 우리 당의 군사로선을 높이 받들고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동지는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일편단심 당과 수령께 끝없이 충직하였으며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라고 다소 상투적인 치사만을 하였다.

이후 시신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반신상에 제작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