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3-15 15:22:00

론다(스페인)


론다
Ronda
파일:Bandera_oficiosa_de_Ronda.svg.png
국가 스페인
지역 안달루시아
면적 481.31㎢
인구 33,978명
시간대 UTC+1 (서머타임: UTC+2)
론다 (스페인)

1. 개요2. 역사3. 관광4. 자매도시

1. 개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주의 도시이다. 해발 750m의 산악 지대 위에 위치한 과달레빈 강이 만든 깊은 협곡 바위산 위에 펼쳐진 도시로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의 영화감독 오슨 웰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즐겨 찼던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투우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론다의 로메로 가문은 현대 스페인 투우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페드로 로메로는 투우를 단순히 황소를 도살하기 위한 광대같은 공연이 아니라 투우 그 자체로 예술과 기술을 가진 종합 연극으로 변모시켰다.

2. 역사

론다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결과로 건립된 도시이다. 로마의 장군이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스페인에서 카르타고를 몰아내려면 거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론다 일대에 성을 쌓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성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로마의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론다를 도시의 지위로 올렸고,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4세기 경 서로마 제국이 명망하고 론다는 레칠라가 지휘하는 수에비족에게 점령당했다. 하지만 711년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였고 론다는 코르도바 칼리파국의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코르도바 칼리파국이 망하면서 론다는 아부 누르 힐랄 벤 아비 쿠라가 통치하는 독립 왕국이 되었으며 이 시절 론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념비적 유산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 암살당하면서 론다는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이베리아일대를 다스리던 무라비트 왕조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1485년 5월 22일 스페인의 국왕인 페르디난트 2세가 장기간의 포위 공격 끝에 론다를 점령하였고 이 이후 영원히 스페인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1572년 론다에 스페인의 전쟁을 위한 훈련 목족으로 론다 왕립 기병대가 세워졌고 이 때 오늘 날의 론다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론다는 극심한 피해를 받았다. 론다의 상징인 라우렐 성은 프랑스군에게 파괴당하고, 많은 제분소와 농작물이 망가져서 지역 경제는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이로 인해 15,600명이던 인구가 3년 만에 5,000명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론다 일대에는 산적이 들끓게 되었고 이들은 강도와 지브롤터 지역에서 물건을 밀수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리처드 포드, 귀스타브 도레, 워싱턴 어빙에 의해 폭넓게 이용되었는데, 론다의 산적을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하였다.

스페인 내전 당시 왕당파에 의해 공화파 500명이 절벽 아래로 내던져졌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신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이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어쨌든 스페인 내전의 영향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도시를 떠났다.

3. 관광

파일:BC6E62FC-49D2-49A5-A3BA-DB7BD526CE77.jpg
파일:5AB7E3CC-83D0-4B66-A98B-7711328346C8.jpg
파일:론다.jpg

4. 자매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