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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4 14:18:12

라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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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바울 1.webp
라바울의 위치
1. 개요2. 역사
2.1. 일본군의 대규모 기지
3. 연이은 화산 분화
3.1. 1994년 대분화
4. 관광5. 기타

1. 개요

라바울(Rabaul)은 파푸아뉴기니 동뉴브리튼 주에 속한 도시로, 가젤 반도 동쪽과 심슨 만에 접해 있는 도시이다. 1994년 화산 폭발로 파괴되어 코코포로 도시를 이동하였다. 코프라나 커피, 코코아의 산지로서 유명하다. 덧붙여 주위는 화산 지대로 알려져 있으며 심슨 만 자체도 실은 칼데라이다.

뉴브리튼 섬 동부 끝자락에 자리한 라바울의 심슨항은 제2차 대전 당시 남태평양 방면으로 진출한 일본 해군의 사령부가 있던 장소다. 태평양전쟁의 이른바 ‘남부 전선’이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지금도 라바울 일대에는 일제의 군대가 만들어 놓은 침략의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2. 역사

1910년에 독일 제국이 "Simpsonhafen"이라는 이름으로 독일령 뉴기니의 소재지로서 건설한 도시이다. 건립 직후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진 독일의 통치하에 있었으나, 1914년 9월에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에 의해 점령되어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의 중심지가 되었다. 2차 대전 개전 후 1942년 일본군이 점령하여 거대한 기지로 변모하였다.

2.1. 일본군의 대규모 기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라바울 본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파일:라바울 6.jpg

1944년 들어 라바울을 둘러싼 미군과 일본군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항공력이 소멸된 라바울은 연합군에게 지속적인 폭격을 당했으나, 비축해둔 식량과 지하 진지, 그리고 당시 일본군에서 보기 드문 명장이던 이마무라 히토시 대장의 지휘 덕에 일본군은 1년 이상 버텨낼 수 있었다. 1944년 말엽부터 라바울은 완전히 고립된 채로 있다가 1945년 9월 6일, 이마무라 대장이 약 8만 9천의 병력과 호주군에 항복하며 일본 지배에서 벗어났다.

전선을 바꾼 전투는 아니었지만, 라바울 전투는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특수한 사례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도 라바울에는 일본 지배기에 세워진 비행장 유구가 남아있고[1], 태평양 전쟁 박물관이 있다.

3. 연이은 화산 분화

파일:라바울.png
1994년 분화 후 라바울. 화산과 해안 사이의 구시가지가 전소된 것을 볼 수 있다.

라바울 시는 남북 14km, 동서 8km의 블렌체(Blanche)만(칼데라)을 둘러싸는 화산군의 북서단에 있다. 라바울 칼데라의 서기 536년 분화가 세계의 기상을 바꾸어 과거 2000년 역사상 최악의 기후를 가져왔다고 하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가설에는 535년의 크라카타우 산(인도네시아)의 폭발도 원인이라는 설이나 혜성 충돌설도 있다.

1878년의 폭발로 인해 불칸 화산(Vulcan, 일본명 니시부키산(西吹山))이 형성되었다. 1937년 호주 위임통치령 당시 2개의 산이 동시 분화해 507명이 사망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행정부를 라바울에 두고 있었지만 화산 폭발로 인해 라에로 이동시켰다. 1941년 말의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에 소분화를 반복하고 있던 타부르부르 화산(Tavurvur, 일본명 하나사키산(花吹山))은 1942년 6월에 분화가 끝났다.

3.1. 1994년 대분화

파일:라바울 화산.jpg

파일:라바울 2.jpg
화산재로 덮인 라바울 시내

1994년, 근교의 타부르부르 화산과 불칸 화산의 동시 분화에 의해서 5m 이상의 강회가 시가를 덮쳐 큰 타격을 받았다. 비록 사망자는 5명 뿐이었지만 약 5만에 달하는 이재민이 생겼다. 주민들은 근교의 산림에 피난했으며, 라바울 공항은 버려져 남동으로 20km 위치로 이전했다. 뒤이어 정부 기관과 주민들 역시 코코포 마을로 이전했다. 이로써 라바울의 인구는 1만 7천에서 4천으로 줄었고, 코코포의 인구는 3천에서 2만으로 늘었다. 라바울 부근에서는 각국의 원조로 재건이 진행되었지만, 구시가는 화산재에 파묻혀 방치된 채로 있다.

4. 관광

파일:코코포.png
코코포 전쟁 박물관

라바울 전투 당시의 유물과 벙커가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으로 특히 일본군 후손들이 자주 찾는다.

코코포 전쟁 박물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벙커, 지하병원 등이 주요 볼거리다.

5. 기타

1942-45년 라바울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위안부 여성들이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었다. 종전 후 한국에서는 라바울 마담이란 여성이 노량진의 적산 가옥을 불하받기도 하였다. 그만큼 1940년대에 라바울은 한국에 잘 알려진 남태평양 지명 중 하나였다. 물론 현재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라바울 전투를 배경으로 한 군가 <라바울 소패(ラバウル小唄)>가 있다.

일본의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가 발령받은 곳이 라바울 근처이다. 그는 경험을 토대로 전원 옥쇄하라!라는 반전 만화를 그렸다.

[1] 1994년 화산 폭발로 파괴되기 전까지 공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