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8년 2월 17일에 있었던 암살, 인질극, 하이재킹, 이집트와 키프로스의 교전(…) 등이 있었던 종합 테러리스트 사건이다. 키프로스에서 일어났으며, 이집트의 유명한 777부대가 개입하였다. 심각한 테러리즘이라 웃을 수 없는데 어이없는 일이 많이 일어난 황당한 사건이기도 하다. 웃프다는 말이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2. 사건 전개
2.1. 유세프 세바이 암살과 인질극
이 사건은 1978년 2월 17일에 2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포풀러 프런트 포 디 리버레이션 팔레스타인,PFLP)가 키프로스의 니코시아 힐튼 호텔에서 이집트의 언론인 유세프 엘 세바이(Youssef Sebai)[1]를 살해하고 호텔 투숙객 30명을 인질로 잡은 것으로 시작된다. 키프로스 정부는 인질을 상당수 풀어주는 대신에 이들을 안전하게 국외로 내보내주기로 협상을 하였다.
2.2. DC-8 하이재킹
그래서 이들은 과반수의 인질을 풀어준 다음 11명의 인질을 데리고 키프로스 항공의 DC-8 여객기를 빼앗아 타고 출발했다. 근데 이들을 받아주겠다는 중동 국가가 어디에도 없었다.(…) 상공을 떠돌다가 DC-8의 연료가 떨어지자 테러리스트들은 어쩔 수 없이 키프로스로 돌아와서 라르니카 공항에 착륙했다. 여객기가 돌아오자 키프로스 군경은 즉시 공항에 착륙한 여객기를 포위했다.
2.3. 이집트의 개입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네고시에이터를 보내겠다고 키프로스 정부에 타진하였다. 그리고 수송기를 타고 카이로에서 네고시에이터들이 1시간에 걸쳐서 키프로스로 날아왔는데, 사실 네고시에이터가 아니라 777부대를 보냈다(…).유세프 엘 세바이는 사다트와 개인적으로 친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뿐만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매우 저명한 문인이었기 때문에 이집트 입장에서는 격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키프로스 내에서 상당히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1982년에 레바논에서 쫓겨난 PLO 대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키프로스로 대피했다.# 1983년에는 키프로스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프로파간다 조직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키프로스의 후원국인 그리스는 1991년까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였다. 그리스는 아랍 국가의 석유 자원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4. 키프로스 군과 이집트 특수부대의 교전
공항에 도착한 777부대는 어떻게 된 일인지 그냥 사복을 입고 AK-47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키프로스 당국에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그 차림새 그대로 우르르 수송기에서 뛰어내려서 AK-47 들고 DC-8을 향해서 돌격! 해왔다. 물론, 여객기를 포위하고 있던 키프로스 군경이 보기에 777부대는 갑자기 나타난 테러리스트 지원군이었다!
777부대의 의도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네고시에이터로 위장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테러리스트로 위장한 꼴이 되버렸다(…).
키프로스 군경은 달려오는 777부대를 테러리스트로 착각하여 교전을 벌였고, 777부대도 이에 반격해서 공항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결국 이 전투는 이집트 군 777부대 15명 사망, 키프로스 군 5명 사망, 그 외 다수 부상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남겼다.
PLO 멤버가 이 전투에서 키프로스 측에서 참전하여 싸운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2.5. 결말
이렇게 이집트 군과 키프로스 군이 싸우는 동안, DC-8의 파일럿 크루가 테러리스트들을 설득했다. 결국 테러리스트들은 키프로스에 항복하고 인질을 풀어줬다(…).
3. 교훈
테러리즘 사건에서 양국 간에 의사소통의 중요함을 알리는 사건으로 남았다.
4. 여담
1978년 2월, 사다트 대통령의 친구를 암살한 2명의 테러리스트가 DC-8항공기와 30명의 인질을 잡고 나르나카 국제공항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즉시 테러범들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협상은 지리하게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 이집트 당국은 대테러부대 창설 열풍에 편승하여 만든 특수부대 사이카 부대 45명을 이곳에 파견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전에 키프로스 당국과 전혀 협의를 안 했다는 점.
갑자기 나타난 수송기에서 무장한 특공대가 내리자 이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한 키프로스 군경은 기관총과 로켓포를 난사했고 사이카 특공대도 '용맹하게' 응전했다.
잠시 후, 시체가 된 15명을 제외한 특공대 전원과 테러리스트는 키프로스 정부에 항복했다. 인질? 전원 사살되었다.
1978년 2월 「키프로스」에서 이집트 대통령(당시)「사다트」의 절친한 친구 한명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30명의 인질을 잡고 키프로스 정부로부터 DC-8 여객기 한대를 뜯어낸 암살범 두명은 인질 18명과 함께 다른 나라로 도망가려 했지만 근처 어느나라도 이들의 비행기를 착륙하게 놔두지 않았다.
결국 지중해를 빙빙 돌다 키프로스의 「니코시아」로 되돌아간 범인들은 키프로스 정부와 지루한 협상을 시작했다.
지루한 협상이 슬슬 타협점을 찾아가던 그날 밤, 한대의 C-130수송기가 니코시아 국제공항 활주로에 날아들었다.
45명의 이집트군 특공대 「사이카:번개」부대를 태운 이집트 공군 수송기였다.
투철한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 사이카대원들은 인질을 구출하고 범인들을 처치하기 위해 DC-8기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프로스당국과 전혀 협의가 없었고 이집트군이 탑승한 수송기의 착륙조차 허락을 받지 않았다.
당장 키프로스군과 경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키프로스군과 경찰로서는 아무말도 없이 남의 나라 땅에 뛰어든 이 험악한 친구들은 아무리 봐도 테러리스트들의 일당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원래는 부대 이름마냥 '번개처럼' 끝났어야 할 구출작전은 RPG-7과 중기관총이 난무하는 '전면전'으로 변해버렸다.
이집트군의 C-130이 RPG-7에 맞아 불타올랐고, 곳곳에서 비명과 신음소리가 울려퍼지는 생지옥이 펼쳐졌다.
간신히 전투가 끝난 뒤 15명의 이집트군 특공대원의 시체가 활주로에 뒹굴고 있었고, DC-8기내에도 인질 모두의 시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범인 두 명은 키프로스 정부에 항복했고 나머지 이집트 특공대원도 전부 키프로스군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집트판 엔테베의 기적'을 바라던 이집트군의 야망은 아주 보기좋게 짓밟혔지만 이걸 보는 세계 각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집트 정부는 간신히 석방되어 돌아온 대원들을 영웅으로 대접하는 한편 키프로스정부를 피도 눈물도 국제협력도 모르는 악당으로 몰아붙이면서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 했지만 누가 봐도 이집트가 잘못한 건 확실했다 .
여기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막 미국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이집트를 자극하기 싫었고 결국 명백히 실패인 이 작전을 '테러리스트와 타협하지 않은 용기있는 행동'정도로 평가해 이집트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 애썼다.
키프로스 정부는 즉시 테러범들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협상은 지리하게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 이집트 당국은 대테러부대 창설 열풍에 편승하여 만든 특수부대 사이카 부대 45명을 이곳에 파견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전에 키프로스 당국과 전혀 협의를 안 했다는 점.
갑자기 나타난 수송기에서 무장한 특공대가 내리자 이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한 키프로스 군경은 기관총과 로켓포를 난사했고 사이카 특공대도 '용맹하게' 응전했다.
잠시 후, 시체가 된 15명을 제외한 특공대 전원과 테러리스트는 키프로스 정부에 항복했다. 인질? 전원 사살되었다.
1978년 2월 「키프로스」에서 이집트 대통령(당시)「사다트」의 절친한 친구 한명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30명의 인질을 잡고 키프로스 정부로부터 DC-8 여객기 한대를 뜯어낸 암살범 두명은 인질 18명과 함께 다른 나라로 도망가려 했지만 근처 어느나라도 이들의 비행기를 착륙하게 놔두지 않았다.
결국 지중해를 빙빙 돌다 키프로스의 「니코시아」로 되돌아간 범인들은 키프로스 정부와 지루한 협상을 시작했다.
지루한 협상이 슬슬 타협점을 찾아가던 그날 밤, 한대의 C-130수송기가 니코시아 국제공항 활주로에 날아들었다.
45명의 이집트군 특공대 「사이카:번개」부대를 태운 이집트 공군 수송기였다.
투철한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 사이카대원들은 인질을 구출하고 범인들을 처치하기 위해 DC-8기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프로스당국과 전혀 협의가 없었고 이집트군이 탑승한 수송기의 착륙조차 허락을 받지 않았다.
당장 키프로스군과 경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키프로스군과 경찰로서는 아무말도 없이 남의 나라 땅에 뛰어든 이 험악한 친구들은 아무리 봐도 테러리스트들의 일당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원래는 부대 이름마냥 '번개처럼' 끝났어야 할 구출작전은 RPG-7과 중기관총이 난무하는 '전면전'으로 변해버렸다.
이집트군의 C-130이 RPG-7에 맞아 불타올랐고, 곳곳에서 비명과 신음소리가 울려퍼지는 생지옥이 펼쳐졌다.
간신히 전투가 끝난 뒤 15명의 이집트군 특공대원의 시체가 활주로에 뒹굴고 있었고, DC-8기내에도 인질 모두의 시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범인 두 명은 키프로스 정부에 항복했고 나머지 이집트 특공대원도 전부 키프로스군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집트판 엔테베의 기적'을 바라던 이집트군의 야망은 아주 보기좋게 짓밟혔지만 이걸 보는 세계 각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집트 정부는 간신히 석방되어 돌아온 대원들을 영웅으로 대접하는 한편 키프로스정부를 피도 눈물도 국제협력도 모르는 악당으로 몰아붙이면서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 했지만 누가 봐도 이집트가 잘못한 건 확실했다 .
여기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막 미국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이집트를 자극하기 싫었고 결국 명백히 실패인 이 작전을 '테러리스트와 타협하지 않은 용기있는 행동'정도로 평가해 이집트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 애썼다.
이 사건을 다룬 인터넷의 꾸준글.
아무튼 이 사건은 777부대 전설의 한 페이지를 자랑한다. 한국 인터넷에 널리 퍼진 인터넷 꾸준글과 'Encyclopedia of Terrorism'의 사건이 상세가 상당히 다르다. 인터넷 글은 오히려 이집트 군의 치부를 많이 가려준 편(…)으로 'Encyclopedia of Terrorism'의 묘사는 더욱 처참하다.
- 수송기의 종류는 인터넷 꾸준글에서는 "C-130"으로 나와 있는데, 'Encyclopedia of Terrorism'에서는 "안토노프 사의 수송기"라고 언급되어 있어 전혀 다르다. 이집트는 C-130과, 이것과 비슷한 An-12를 모두 운용하는 나라이므로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C-130H라고 언급하고 있는 웹사이트도 있다.#
- 전혀 통보가 없었다는 인터넷 꾸준글과는 달리 'Encyclopedia of Terrorism'에서는 사다트 대통령이 "네고시에이터를 보내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특수부대를 보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키프로스 군이 이집트 군을 공격한 이유를 인터넷 꾸준글에서는 단순히 통보를 하지 않아서 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Encyclopedia of Terrorism'에서는 이집트 군이 당시 "사복 차림에 AK-47을 들고 있었다."고 언급해서 키프로스 군이 테러리스트로 오해하기 쉬웠다는 정황을 알려주고 있다. 뭐 어느 쪽이든 결국 이집트가 무단으로 특수부대를 보낸건 사실이라 키프로스 군경은 공격하게 되었을 것이다.
- 꾸준글에서는 인질들이 모두 죽었다고 언급하는데, 'Encyclopedia of Terrorism'에서는 이 사건에서 인질들은 모두 살아났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키프로스 군의 사상자는 꾸준글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