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시인 정호승이 1982년 발표한 시.2. 시 전문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3. 해석
이 시는 사랑[1]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고통과 그리워하는 데서 오는 희열을 동시에 노래하면서 기다림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3.1. 행별 해석
이 시는 모두 11행으로 이루어진 단연시로서 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상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행~2행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보낸 하루에 대한 감회를 표출하고 있고, 3행~6행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겪게 되는 시적 자아의 내면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인 7행~11행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과 기다림의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 시의 제목인 '또 기다리는 편지'는 같은 시집에 실려 있으며 이 작품에 앞서 발표된 「기다리는 편지」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으로서 이 작품의 연작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며 그(녀)에게 띄우는 편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시의 첫 번째 부분인 1행~2행에서 시적 자아는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면서 지나온 하루를 반성해본다. 그런데 시적 자아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다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그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보낸 정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루 종일 시적 자아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그대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시의 두 번째 부분인 3행~6행에서는 사랑하는 그대와 떨어져 그리워하면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슬픔이 표출되고 있다. 별들도 보이지 않는 '날저문 하늘'이나 '잠든 세상 밖'에 있는 '빈 길' 등의 이미지들이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하지 못하고 혼자 외롭게 떨어져 있는 시적 자아의 쓸쓸하고 황폐한 내면의 풍경을 대변해준다. '저무는 섬'이라는 이미지 또한 시적 자아의 외로움과 단절감의 내면 심리를 대변해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하지만 시적 자아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라고 표현하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희열과 헤어져 있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고통의 공존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공존은 다음 부분에서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작용한다.
시의 세 번째 부분인 7행~11행에서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면서 새롭게 다짐하는 그대에 대한 시적 자아의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 해마다 첫눈으로 내린'다고 표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또한 '첫눈'처럼 기대와 설렘의 희망 또한 지닐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새벽이 오는 '섬기슭'에 앉아서 오늘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 기다리는 일'에서 행복과 보람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4. 상세
기다리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기대와 설렘이 있기에 고통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 있으며, 그처럼 기다리고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의 원천일 수 있다. 시적 자아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즐거운 고통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이 시는 11행으로 된 단연시인데, 반어와 역설적 표현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있는 고통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기쁨이라는 양가감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1행~2행에서 시적 자아는 하루를 온통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하며, 3행~6행에서는 그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있는 상황이 외로움과 단절감의 고통을 야기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마지막 7행~11행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있는 외로운 사람들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를 지닐 수 있음을 상기하면서, 오늘 하루도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하루를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고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면서 기다리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은 달콤한 고통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러한 고통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일은 언젠가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는 일은 즐거운 고통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기다리는 일이 행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 사랑이란 애원해서도 요구해서도 안된다. 사랑은 자기 자신 속에서 내적 확신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사랑이란 이끌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끄는 것이다.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