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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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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따마의 발생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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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간체자로 大妈, 정체자로 大媽, 큰엄마라는 뜻의 중국어로 중국의 1950~6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 기혼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즉 중국의 아줌마 계층과 정확히 부합하는 단어이지만 2020년대 기준으로는 노년층에 해당된다.

읽어보면 전투종족으로 유명한 K-아줌마의 상위호환이다.

2. 상세

현재 전세계에 중국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집대성한 그 자체가 된 세대로, 중국 안에서건 중국 밖에서건 특유의 아줌마 근성과 파워로 전세계를 휘젓는 중국 내 가장 강력한 세대집단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개혁개방 초창기에는 저임금직 노동에 종사하면서 중국의 경제를 일으킨 세대이기도 하고, 이후로도 건설붐과 지방정부 세수확충에 기여시켜서 중국의 경제대국화에 기여한 준 세대이다.

大爷라고 따마의 남성판도 존재한다. 역시나 아저씨, 꼰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집대성한 세대집단으로 하는 행동은 따마와 별반 차이가 없다.

현실에서의 용법과 온라인상에서의 어감이 다른 단어이다. 다만 중국의 젊은이들한테 함부로 따마 따마하면 욕 처먹기 좋으니 이점은 유의해야 된다. 한국에서 젊은층한테 아저씨, 아줌마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줌마에 긁히는 건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 물론 중국 젊은이를 지칭하는 멸칭으로서 분청, 우마오당 쪽이 더 인지도가 있긴 하다.

3. 따마의 발생 이유

이들의 출생시기인 1950~60년대가 이들의 정서와 성향을 결정지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 때 10대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홍위병의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격변의 시기를 거친 홍위병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해당 문서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따마들은 그래서 10대시절에는 홍위병을 하느라 제대로 된 교육, 사회화를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마오쩌둥상산하향 운동을 통해 대부분이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살았고 결혼을 하기도 했다가, 79년 덩샤오핑 주도로 개혁개방이 시행되고 중국이 수출주도화 전략을 선택하자 이들 중 상당수는 도시로 올라와 주로 봉제와 섬유를 비롯한 단순노동직에 종사하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식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이들 대부분은 과거 부모들이 공산주의 초창기 토지개혁을 통해 받은 땅이 있었고, 개혁개방 이후로도 주택배급제를 한 동안 유지했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는 공기업이나 지방정부에서 임대주택을 신청자들에게 배분하였으나, 주룽지 총리 시절인 1998년에 지방정부 세수확충 및 경제활성화 목적으로 주택배급제를 폐지하고 기존의 임대 주택들을 싼값에 민간에 불하했으며,[1] 이후로 20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부동산 값이 급상승하게 되었다.[2] 이 과정에서 따마들은 나이 들어서 산업현장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가졌던 땅과 집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건설붐으로 땅과 집의 가치가 급속도로 올랐고 주요 대도시와 중도시 지역에서는 집과 땅을 팔아도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중국 당국에서 지방정부의 세수 상당수가 부동산 토지사용료 수입에서 오는 걸 감안해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묵인했다. 그래서 따마들은 부동산으로 엄청난 부를 취득했고 어차피 다시 일하러 못 나가니 부동산을 굴려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부동산 투자, 자산투자에 올인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3][4] 그 재력과 여전히 남은 부동산의 힘으로 현재 따마들은 중국에서 공산당원들 못지 않은 부자들이 많다.

그러나 에티켓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아서 욕을 듣기도 한다.[5] 중국인 관광객들이 에티켓이나 예절이 없기로 악명 높은데 그 중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못 배우고 사나운데 돈은 많은 그런 사람들이 바로 따마인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손님에게 친절하다든가 하는 경우는 많다. 이런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중국 안이나 중국 밖에서나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다녀서 같은 중국인들조차도 싫어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홍위병이라면 치를 떠는 시진핑도 이들을 함부로 다루기 어렵다. 돈 많고 못 배우고 사나운 것도 모자라, 이들은 원래부터 홍위병 집단 생활을 통해 떼로 몰려다니면서 일을 저지르는 데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단결력도 매우 강하고 목소리도 크다. 이들이 작정하고 뭉치면 제 아무리 중국 공산당이 강해도 나라가 뒤집힐 수 있다.

그 때문에 따마는 중국 내에서도 심각한 세대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국의 심각한 청년실업 원인은 제도, 환경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따마들이 과점해 엄청나게 올려놓은 부동산 가격과 자산가격 폭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면서도 따마들이 사회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가족과 개인만 챙기려는 태도가 중국의 심각한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다만 따마들의 수익률은 부동산을 빼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중국의 인터넷 보급이 2000년대에는 주로 청년층, 끽해봐야 중년층에 집중되었었고, 노년층에까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것은 2010년대 후반에 와서였기 때문에 구세대적인 매체들이나 입소문을 통해서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마의 특징으로는 광장무가 있다. 전세계 어디건 중국인들이 있는 곳이면 주변 적당한 광장에 모여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단체로 춤을 추는 것이다. 상술한 대로 이들은 원래 단체행동에 익숙한 데다 배운 것도 없기도 하고, 1980~90년대의 중국에서는 당장의 문화생활 증진보다는 경제발전에 우선시하다 보니 TV 시청, 라디오 청취나 따오판, 도서관에서 책보기 같은 것 외에는 대체로 값이 비싸기도 했고,[6] 1990년대 중후반에 주 5일제 시행으로 국내외 여행으로 여가를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지만 여행도 자주 가려면 돈이 든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똑같이 할 수 있는 춤 정도 밖에 없는 것. 그래서 중국 공산당도 이들이 사회불만 세력으로 돌변하지 않도록 주요 도시마다 광장무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관리한다.


[1] 러시아를 비롯한 옛 동구권 국가들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서 이런 식으로 임대주택을 값싸게 불하했기 때문에 주택 자가보유율이 높은 편이다. 사실 이 정책은 1980년대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가 세수확충 목적으로 시행한 임대아파트 민간판매제도를 따라한 것이지만, 영국의 경우에는 후세대들의 주택자가 보유율을 떨어트리는 등 부익부 빈익빈이 두드러졌던 데 반해서 이들 국가에서는 도시 인구의 절대다수가 임대주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가보유율도 따라서 높아진 것이다.[2] 사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전후한 시기에 중국의 부동산이 침체된 시기가 있었지만, 후진타오 정권에서 부동산 부양을 했다. 이 때문에 중국 주요 대도시는 물론 중견급 대도시까지 지하철이 건설되고 마천루도 잇따라 깔렸지만, 부동산 폭등이 몇 년간 지속되면서 출산율 저하 등 중국사회에 좋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3] 다만 이 과정에서 주식에 손을 댔다가 패망한 사례들도 종종 있기는 하다. 중국에서 부동산이 자산투자의 주류가 된 것도 2008년 주식시장 붕괴의 여파로 그 이후로 이 당시의 주가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4] 2017년 중국발 비트코인광풍도, 돈 되는 것이면 뭐든 투기해 가격을 올려 놓는 따마들이 뛰어든 영향이 크다.[5] 사실 개혁개방 초창기 때 중국기업들이 고객서비스의 중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한국에서 만만디가 널리 알려진 이유였다.) 철도든 버스든 간에 서비스 정신은 개나 먹어라 수준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냥 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6] 오죽하면 1990년대~2000년대의 따오판 범람 원인 중 하나가 비싼 영화표 값을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