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에 출발한 동의학원이 성장해 온 시기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변혁의 시대였다. 한국전쟁 이후 박정희 정부에서는 공업화 정책을 통한 수출 위주의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였기에 이에 필요한 인재들의 기술 교육이 가장 시급히 요청되던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동의학원은 1966년 동의중학교, 1967년 동의공업고등학교, 1972년 동의전문학교[1]를 설립하였다. 이것에 멈추지 않고 보다 전문적인 공업인재 양성을 위해 4년제 공업대학 설립을 목표로 더 넓은 대학 캠퍼스 부지를 물색하였고 부산시 부산진구 가야동 산 24번지 일대에 40여 만 제곱미터의 부지[2]를 확보하게 되었다.
1976년 경동공업전문학교 신축 (현재 가야캠퍼스 생활과학관)
이 부지는 참고로 계단식의 논과 밭, 잡목이 우거진 임야지였는데 옛날부터 감나무가 많아 시목곡(柿木谷)이라 하였고, 특히 초량으로 넘어가는 남쪽 고개는 시령(柿嶺)이라 불리는 곳이었다.[3]
동의학원 12주년 및 동의대학 승격 기념식 (1978.10.22)
1975년 이러한 가야캠퍼스 부지를 확보한 이후 우선 4년제 대학의 전초 단계로 경동공업전문학교를 설립하였고 1977년 3월 개교하였다. 그리고 개교 2년 만인 1979년 1월에 동의대학으로 승격 개편됨으로써 현재와 같은 동의학원의 면모로 발전해나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토대를 닦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으로 승격하면서 교명을 재단 내 다른 교육기관들처럼 법인명을 사용하여 동의대학으로 변경하였다.
제1회 동의대학 입학식 (1979.03.08)
1979년 1월 10일 동의대학으로의 승격은 대학으로서 큰 첫 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같은해 3월 8일 진행된 제1회 동의대학 입학식에는 6개 학과(경영학과, 무역학과, 회계학과, 기계설계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에 소속된 신입생 400명이 입학하였다. 이들이 만약 졸업을 했다면 동의대학 역사상 최초의 학사모 주인공들이었을지 모른다.
제1회 동의대학 학사학위 수여식 (1983.02.25)
대학으로 승격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육 시설을 확충하고 대학의 규모를 늘리고 내실을 다진 결과, 1983년 9월에는 대학 개교 5년만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기도 하였다.
[1] 현 동의과학대학교[2] 현재의 가야캠퍼스 부지[3] 설립 초기 경동공업전문학교는 가야캠퍼스의 옛 지명을 사용하며 학교의 교지 이름을 '시령'이라 정하였고 학교 축제도 ‘시령 축제’로 부르기도 했다.[4] 지금의 생활과학관은 당시 경동공업전문학교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