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st of Dorne
1. 개요
157-161AC에 일어난 제5차(추측) 도르네 전쟁으로 비록 일시적이지만 칠왕국이 용도 없이 도르네 공국을 마침내 정복하는데 성공한 전쟁이다.어린나이에 도르네를 정복한 다에론 1세는 '도르네의 정복'이라는 책을 직접 저술했으며 그 책은 단순명료한 문체로 유명하다.
2. 배경
아에곤 1세의 제1차 도르네 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도르네와 칠왕국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157AC에 14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아에곤 3세를 이어서 왕이 된 다에론 1세는 조상들의 숙원이었던 도르네 정복을 원했다.이에 숙부이자 수관이었던 비세리스 타르가르옌을 포함한 자문가들이 드래곤도 없이 어떻게 정복할 수 있냐고 반대하자 "지금 숙부님 눈 앞에 드래곤이 (=내가) 있지 않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용들의 춤으로 용을 전부 잃어버린 타르가르옌 가문 입장에서는 그것을 만회할 만한 업적이 필요했다. 어쨌든 다에론은 칠왕국 최고의 명장 알린 벨라리온 제독이 내놓은 작전을 통해 신하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3. 정복
다에론은 직접 친정하여 리치의 병력이 중심이 된[1] 칠왕국 군대 6만을 이끌고 남쪽 붉은 산맥으로 진격하여 도르네군을 차례차례 격파했다. 이때 칠왕국 군대는 1차 원정에서 패한 오리스 바라테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염소들이 다니는 오솔길을 이용해 도르네의 방어 진지들을 우회했다고 한다.또한 국왕 함대를 지휘한 알린 벨라리온 제독은 그린블러드 강 하구의 플랭키 타운을 함락시키고 그린블러드 강을 제압했다. 이는 도르네의 동서를 갈라 버리면서 주로 서쪽의 대공의 길에 몰려 있던 도르네 주력군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스타니스 바라테온은 존 스노우와의 대화에서 도르네를 진정으로 제압한 것은 다에론 1세의 오솔길 기동이 아니라 알린의 해군이라고 언급한다.
계속된 패전으로 승산이 없어진 도르네는 칠왕국에 항복하기로 결정하고 대공과 도르네 대귀족 40명이 선스피어에서 다에론 1세를 맞이하고 그에게 무릎꿇으면서 다에론 1세의 승리로 돌아갔다. 다에론 1세는 도르네 귀족들의 권리를 그대로 보장하면서 라이오넬 티렐에게 도르네의 통치를 맡긴뒤 마르텔 가문과 도르네 귀족 가문들의 인사 14명을 인질로 하며 킹스랜딩으로 돌아갔다.
4. 반란 및 철수
하지만 도르네 민중들은 독립을 열망하여 다에론 1세가 돌아간 뒤에도 게릴라전으로 저항을 계속하였고 라이오넬은 이를 진압한다고 고생했다. 결국 다에론 1세의 도르네 정복은 2주 후 그가 총독으로 남겨 놓은 티렐 가문의 영주 라이오넬 티렐이 몸 위로 붉은 독전갈이 쏟아져서 암살당하고, 도르네 전역으로 번진 대반란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다.
다에론은 병력을 이끌고 다시 남진했고, 알린 벨라리온 또한 다시 그린블러드 강을 공격했다. 도르네인들은 맞서 싸웠으나 참패한다. 이에 도르네인들은 다에론에게 평화의 깃발을 내걸고 협상 제안을 하였고 다에론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이는 도르네인들의 함정이었다. 특히 다에론은 협상만 믿고는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도 하지 않다보니 결국 도르네군의 기습으로 다에론과 북부군 사령관 릭콘 스타크, 킹스가드 3명도 사망하였고[2] 킹스가드 1명은 항복하였으며 '용기사' 아에몬 왕자는 끝까지 싸우다가 포로로 잡혔다. 다에론이 도르네를 점령하려는 과정에서 병력 1만 명을 잃었고, 점령한 도르네를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5만 명을 잃었다고 벤젠 스타크가 평한 바 있다.[3]
5. 화평
당연히 이 막장짓에 칠왕국, 특히 리치의 여러 귀족들은 분노했고 잡아놓은 도르네 인질들 14명을 당장 처형해야 한다며 갈갈히 날뛰었다. 하지만 다에론이 전사한 후 왕이 된 그의 남동생 바엘로르 1세는 왕보다 셉톤이 더 어울린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독실한 칠신교 신자로써 용서와 화해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바엘로르는 수관이었던 비세리스 2세와 신하들이 강력히 말리는데도 무시하고는 인질들을 이끌고 도르네의 '뼈의 길'을 맨발로 걸어가 마르텔 가문과 만나 인질 14명을 돌려보내고 화평을 맺었으며, 그 과정에서 윌 가문으로부터 그의 사촌인 '용기사' 아에몬을 구출했다. 또한 그는 도르네의 독사 구덩이에서 살아났다고 하는데, 이 뱀들의 독 때문에 그의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설도 있다. 이때 화평을 위해 다에론 왕자와 마리야 마르텔 공녀가 결혼했다.
도르네는 설령 외부 세력이 자신을 정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평화 깃발을 들고 칠왕국의 왕을 죽임으로서 도르네인은 자유를 위해 윤리적으로 터부시되는 일을 다시 저질렀다.[4] 1차 원정에 이어 2차 원정에서도 칠왕국은 6만의 병력만 잃고 완전한 도르네 정복에 실패했다. 정복을 주도한 티렐 가문은 여기서도 영주를 잃었으며, 많은 리치 영주들과 기사들, 병사들이 도르네에서 사망했다. 또한 바엘로르 1세는 숙부와 신하들의 만류도 무시하고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강행하여 귀족들의 반감을 크게 샀다. 하지만 승리한 도르네 역시 1차 전쟁만큼 피해가 굉장히 커서 승리하고도 바엘로르의 평화 제의를 수용하고 칠왕국과 다시 평화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도르네는 도르네 변경을 집적거린 거 외에는 칠왕국과 전쟁을 하지 않았다.
[1] 칠왕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것도 있지만 리치는 도르네와 가까워서 분쟁이 잦았기에 도르네를 매우 싫어하여 도르네 토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리치 외에도 스타크 가문의 북부와 다른 지역들도 모두 참전했다.[2] 킹스가드 중 오크하트 가문의 일원인 올리바르 오크하트가 사망했다.[3] 도르네의 게릴라 전법으로 병력이 계속 갉아먹혔고, 사막에서 길을 잃어 부대째로 사막에서 행방불명된 경우가 다반사였다. 과거에는 심지어 티렐 가문의 가주이자 리치의 대영주조차도 행방불명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곳이 도르네의 사막이다.[4] 다만 무력을 앞세워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도르네 지역을 합병하려한 다에론 1세를 죽이는건 도르네 입장에선 딱히 문제 없을 수 있다. 도르네 입장에선 갑자기 군대로 자기들을 습격한 다음 지배하려했으니 거짓말을 해서라도 침략자인 다에론 1세를 죽이는게 과연 윤리적인 문제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넓은 의미로 접대의 관습을 어겼다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